기간제법이 만들어낸 출구 없는 비정규직 노동
‘재계약을 절대 하지 않음, 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이라는 계약에 도장을 찍고 입사한다. 그리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일하던 회사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원래 1년 계약이었어요”, “우리 회사는 원래 재계약 없대요”라는 노동자들의 말이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기간제법 시행 7년을 넘어서는 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인식 또한 상당히 변화되었다. 계속 고용을 위해 싸우는 일은 나의 일이 아니고, 고용안정이 되면 좋겠지만 내가 맺은 근로계약은 애초에 기간이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계속 고용을 주장할 수 없는 다른 경우라고 생각한다. 앞이 막혀있는 길에 들어선 노동자들이 희망고문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스스로 체념하는 일.
이것이 기간제법이 만들어낸 현실이다. 기간제법의 첫 번째 효과, 그것은 기간제 노동을 기본 고용형태로 자리 잡게 함으로써 기간제 노동을 ‘교체 사용’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면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는 기간제법의 구조. 이는 2년이 지나면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간제 노동자 중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는 노동자는 10명 중 1명꼴이고, 일하던 곳에서 무기계약이 되는 비율은 그 절반이다. 기간제한과 무기계약 전환을 기본 구조로 하고 예외적으로 기간제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정하고 있어서 마치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처럼 보이지만, 이 허울을 걷어내면 법형식의 예외와는 뒤집혀 있는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기간제로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고, ‘예외적으로’ 무기계약으로 전환된다는 것, 대다수는 다시 벗어날 수 없는 교체 사용의 덫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교체사용’이 의미하는 것은 지속적인 해고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는 기간제 노동을 마치 정규직 고용을 위해 노동자를 평가하는 정당한 기간처럼 만들어 버렸다.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는데,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 수많은 스펙을 갖추고 입사시험에 임하더라도 노동과정에서 다시 쓸모 있는지 없는지가 평가되고 그 뒤에야 정식 채용이 된다는, 기업이 노동자를 뽑는 경로에 당연하게 놓여 진 단계가 기간제 노동이 되었다. 기간제법의 두 번째 효과, 장기간의 ‘시용노동’을 만들어 냈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시험대에 올라 평가된다. 10명 중 1명이 되기 위해. 나머지 9명의 노동자들의 인생은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리셋된다.
자본의 유연한 인력활용의 밑바탕을 이루는 기간제 노동
기간제법이 무기계약 전환을 강제하고 있어서 간접고용으로 도피하는 규모가 크다고 한다. 실제로 간접고용은 규제되지 않고 파견법이 만들어낸 간접고용 제도화의 효과와 기간제법상 기간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의 무기계약 전환, 또 한편에서의 간접고용으로의 도피가 일어난다면 기간제 노동의 규모는 줄어들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기간제 노동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줄어들지 않고 있고, 그 규모가 14~15% 수준에서 고착화되고 있는 상태이다.[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4.8) 결과, 2014년 11월, 김유선(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러한 통계가 의미하는 것은 기간제 고용이 그만큼 밑바탕 노동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무기계약 전환도 진행되고, 외주화도 벌어지지만 그 바닥에는 기간제 노동의 교체사용 구조가 자리 잡고 있고, 이는 기업의 인력 활용의 주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기간제 노동이 자본의 인력 활용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고용형태라는 점은 기간제 노동이 모든 비정규직 유형에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는데, 기간제와 시간제, 간접고용 등 다른 비정규직 유형들은 분리되지 않는다. 시간제 노동자도 기간제로 채용되고, 간접고용 노동자도 기간제로 고용된다. 원청과 하청의 계약이 2년 또는 3년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노동자의 근로계약기간은 더 잘게 나누어진다. 그러니 하청업체 정규직, 파견회사 정규직이라는 말이 마치 고용을 더 보장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불법파견의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2012년 8월부터 불법파견의 경우 즉시 직접고용 하도록 파견법의 일부가 개정 시행 된 후, 제조업 및 대규모 단체급식업체 등에서 불법파견을 적발되어 시정조치를 받았을 때, 이들 자본이 행한 방식은 직접고용 기간제로 노동자들을 채용하거나 자회사를 만들어 외주화하는 것이었다. 가운데 기간제로 채용된 노동자들은 해당 계약기간이 끝난 후 모두 해고되었다. 현대자동차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2010년 첫 대법원 판결 이후 지금은 3천 명에 달하는 규모의 단기 계약직을 교체 사용하는 구조를 갖추었다. 일시적으로 불법을 치유하였으나, 기간제법과 파견법의 양축으로 비정규직 활용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 하에서는 불법의 치유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은 결코 아니다.
현재 논의되는 기간제법의 개악 내용의 심각성
그런데 기간제법의 규제를 완화한다고 한다. 소위 현 정부가 말하는 ‘규제의 합리화’인데, 먼저 2년의 기간제한을 확대한다고 한다. 2년이라는 기간이 노동자의 해고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인력 활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일하고 싶은 노동자에게 더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보장하겠다는 고용노동부의 해명은 현실에서 허망한 이야기일 뿐이다. 기간제 노동자의 한 회사 근속기간은 2년이 아니다. 근속기간이 1년에 못 미치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절반이다. 2년이라는 기간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 기간이 아니라 자본의 인력활용에 유연성을 더하는 요소라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 기간을 확대한다는 것은 자본에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여유를 더 보장한다는 것이고, 저임금으로 비정규직 인력을 더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완화된 기간만큼 비정규직 해고는 분산되어 나타나고 상황의 심각성은 가려지게 된다.
이러한 기간연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일자 이를 특정 연령대에 한해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도 한다. 현재 기간제법은 55세 이상인 고령자의 경우 2년을 초과하여 계속하여 기간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정 연령대에 한해’라는 것은 50세 이상의 준고령자로 기간제한 예외를 확대하거나, 청년층을 타켓으로 한 것일 수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신설기업에 대해 2년이 넘어도 기간제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시도했던 바를 돌이켜 본다면 더 심각한 수준으로 기간제한 예외를 확장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고, 정책이 확정되어 발표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정책을 하나씩 흘리면서 노동자의 대응을 시험하고 있는 상황이니, 우리도 여러 가능성과 문제점을 추정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먼저 특정 연령대가 어떤 것이 되든 해당 연령대의 노동자들의 노동을 저평가하는 기제가 될 것인데,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저임금과 낮은 가치평가를 이끌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저평가는 다시 해당 노동 자체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년층에 대해 기간제 노동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청년 노동은 당연히 저임금의 비정규직인 것으로 인식이 고착될 것이며, 안정된 고용으로의 진입은 점점 더 불가능해 질 것이다. 또 준고령자로 확대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기업들의 조기퇴직 강제와 비정규직으로의 교체바람이 급격히 형성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자본은 상시 노동력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제를 얻게 된다.
기간제법이 존재하는 한 계속 거듭될 개악, 악법 폐지만이 해답이다.
기간제법의 개악은 기간제한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일본의 유기계약법을 예로 들어보자. 이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기간제법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본의 유기계약법에는 휴지기에 대한 조항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최장 5년까지 기간제 노동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기본 구조에 더해 일정 기간 휴지기를 가지면 이 기간이 리셋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평생 비정규직으로 일하라는 것이며 기업에게는 계속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규정이다. 이는 상시 노동의 완전한 비정규직으로의 대체를 의미한다. 물론 지금의 한국 정부라면 이를 ‘다양한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 들 것이다. 이처럼 기간제 사용 기간을 늘린다는 것은 그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여러 제도적 조치들의 변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진짜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겠다면 기간제에서 무기계약으로의 ‘전환’이라는 접근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기간제 사용을 완전히 열어놓고 전환하는 구조를 강제하는 것으로는 터진 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간제법을 설사 아무리 좋게 만든다고 해도 악법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다.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기간제 고용이 허용되는 예외적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다시 기간제한을 추가해 상시고용을 대체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이 내용은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 근로기준법에 당연히 담겨야 할 내용이며, 기간제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기간제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법이 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힘을 갖지 못하는가. 이유는 명백하다. 법 자체가 ‘기간제 노동’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하고 있고, 정부와 자본은 이를 계속 확장하여 안정된 노동을 침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기간제법이 존재하는 한, 이 상태는 계속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98년 제정된 파견법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 2006년 날치기 통과된 기간제법은 최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법은 개악되어 왔다. 존재하는 한, 악법은 끊임없이 변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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