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사이에 평등한 우리가 있다

[기고] 쌍용차해고자 원직복직·정리해고 법제도 폐지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2014년 2월 고등법원에서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지난 6년 동안 법이 단 한 차례도 해고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터라 해고자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회계조작으로 만들어 낸 정리해고를, 그것도 자본과 권력이 합작한 쌍용차 정리해고를 국가와 자본이 그대로 두고 볼 것인지 내심 불안했습니다. 사측의 변호인단이 대법관과 고등법원장 출신의 변호사로 대폭 바뀌었다는 점 또한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그리고 9개월 후 전태일 열사 기일이었던 11월 13일,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 선고기일이 잡혔습니다. 2년, 3년이 걸렸던 여타의 노동사건 대법원 판결과는 다른, 매우 빠른 선고였습니다. 해고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공정한 판결을 호소하는 2000배를 대법원 앞에서 매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해고는 정당하다며, 2년간의 심리 끝에 내려진 고등법원의 무효판결을 단칼에 뒤집었습니다.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오로지 자본만을 위한 법임을 공표했습니다.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고된 동료들에게 또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를 무력감과 좌절감의 나날이었습니다.

해고자들은 무력감과 좌절감을 딛고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절박함에 집단단식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장 밖에서 쌍용차 해고자라는 사회적 낙인에 찍혀 죽으나, 공장 앞에서 굶어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누구를 앞세우는 싸움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함께 싸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26명의 희생자를 앞세웠던 우리는, 41일 동안 곡기를 끊고, 171일간 사람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 우리는, 또 누군가를 앞세워서 살아갈 숨구멍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2월 13일 새벽, 굴뚝에 사람이 올라갔습니다. 그것도 공장 안 굴뚝이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또 누군가를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하루겠지만 해고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또 숨 막히는 나날입니다.

평택에 눈이 내리던 날, 부산에 홀로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손주들이 언제 내려오는지 궁금한 엄마에게 올해도 내려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엄마는 늘 비슷한 목소리로 건강한지, 밥은 먹었는지, 서울인지 평택인지, 애들은 잘 크는지, 그리고 옆지기와는 잘 지내는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해고자 아들이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는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건지 늘 물으셨습니다. 지난 6년 동안 나눴던, 질문과 답이 정해진 반복된 이야기를 이어가다 굴뚝에 올라가 있는 형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올 겨울에 내려가지 못하는 핑계를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조심스레 ‘이 추운 날, 넌 그런 곳에 올라가면 큰일 난다.’, ‘애들 생각도 해야 하지 않겠냐.’, ‘가족들 생각해서 그러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주문처럼 쏟아냈습니다. 굴뚝에 올라간 아들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다른 엄마들도 있다며 그런 이야기 마시라는 볼멘소리에도 엄마는 담담하게 끝까지 ‘넌 그러지 마’라는 당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나 사이에 생각의 간극은 여전하지만 엄마를 원래 그런 존재로 이해하는 것으로 늘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는 사람들은 비단 엄마뿐이 아닙니다. 쌍용차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다 연행이 되면 경찰들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마음은 알겠는데 살살하시지 그래요? 이런다고 뭐가 바뀝니까? 검찰에서도 그럽니다. 피고인은 집시법위반과 일반교통방해 등 동종전과가 많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또한 처벌이 가벼우면 계속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 말입니다. 얼마 전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만났던 판사도 물었습니다. 가족들 걱정은 안 하냐고, 생계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는 거냐며 우리가 이 싸움을 그만두기를 종용합니다. 회사는 여태껏 대화 한번 안하다가 복직을 하고 싶으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리라고만 이야기 합니다. 언론에서도 왜 싸워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우리를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로 포장하기 일쑤입니다. 정치인들은 이어지는 죽음에 엄숙한 얼굴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는 할 일 다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2009년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공장점거 파업 이후 노동자들의 고립된 처지와 목소리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본질적으로는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전기가 끊기고 물이 끊기고 음식이 끊기고 법과 정치와 언론에서 외면했던 2009년 투쟁과 굴뚝에 올라간 지 스무날이 넘은 지금은 과연 얼마만큼 달라진 것일까요? 언제까지 이 정리해고 싸움을 당사자들에게 맡겨놓는 싸움으로 놔둘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누구도 굶으라고, 누구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등 떠민 적 없다고 외면 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 정리해고 싸움에서 당신은 언제까지 뒤에 계실 생각이신건지 묻고 싶습니다.

굴뚝에 올라간 자식을 보러 오신 이창근 형의 어머님이, 굴뚝을 바라보며 전화 너머의 아들에게 "남의 자식 올라가서 고생하는 거 보다 내 자식이 올라간 게 낫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자식인 저는 창근형의 어머님 말씀에 한참을 울었습니다. 달팽이관이 닳아 언제 몸이 기우뚱거릴지 모르는 이가, 허리가 아파 30분 이상 앉아 있지 못하는 이가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보온병이 얼고, 비가 내리면 속옷까지 젖는 곳에서 쌍용차 문제 해결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밥줄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고, 생계를 내팽개치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눈 감은 채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살아남은 해고자들은 26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이 죽음들을 멈추기 위한 방법들을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의 진실을 밝혀 달라며 단식과 고공투쟁을 이어갔고, 공정한 판결을 호소하며 2000배의 절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목숨을 건 굴뚝투쟁이 쌍용차 문제 해결의 마지막 싸움이 될 수 있도록, 얼어붙은 공장 굴뚝에서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우리는 또 다른 싸움에 나섭니다.

우리는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쌍용자동차 구로정비공장 앞에서 출발해 국회와 대법원, 마힌드라 서울본사와 인도대사관을 거쳐 청와대까지 <쌍용차 해고자 전원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에 나섭니다. 서울 곳곳에서 엎드리며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그 죽음의 원인이 정리해고임을 알릴 것입니다. 1차 행진에 나서주었던 기륭전자와 비정규행진단 여러분들, 스타케미칼과 콜트-콜텍 등 정리해고 당사자들이 앞장에 섭니다. 이 오체투지는 어떤 종교에서 행하는 청원이나 호소를 위한 ‘절’이 아닙니다. 만연한 정리해고와 960만 비정규직 시대라는 이 처참한 삶의 바닥에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몸부림입니다. 한국사회 노동자민중들의 삶의 바닥이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이 바닥에서부터 다시 출발해나가겠다는 다짐입니다. 960만 비정규직들이, 늘 해고의 위험 앞에 놓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욱 굳건히 연대해야 한다는 간절한 연대의 손길이기도 합니다. 또 다시 길 위에 선 우리의 싸움이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의 문제를 넘어 또 다른 정리해고를 막는 싸움의 전선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나서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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