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없으면 저 공장은 고철이라 믿는 사람들

[불법사장 찾아 3만리](5) 순회투쟁 5일차

5일차 1주차 순회투쟁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스타케미칼 300일 문화제에 개별적으로 결합하기로 했다. 저녁에 순회지역 동지들과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는 것이 힘든 건지 아니면 진짜 열심히 달려와서 힘든 건지 알 수 없지만 지치고 힘든 몸을 쉴 수 있으니 의욕이 생긴다. 이름을 알고, 인사를 한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언제나 든든하고 감사한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양동운 지회장 동지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어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스티로폼 깔고 함께 주무셨다.

포스코사내하청지회는 2009년 11월 26일 출범했지만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9년 3월 포스코 사내하청업체인 삼화산업에서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광양지역 최초로 전노협에 가입했다. 그리고 2003년 또 다른 사내하청업체였던 태금산업노조와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고, 공동투쟁을 진행한다. 밀짚모자와 상복을 입고 다녔던 동지들은 2003년 아산사내하청지회 집회에 참석해서 아산공장을 뚫고 들어가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어제 저녁 뒤풀이가 어느 지역보다 화기애애할 수 있었다. 투쟁의 공간에서 공동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하여간 2003년 공투 이후 포스코 하청노동자들로 구성된 삼화산업지회, 태금산업지회, 영국산업지회가 하나로 통합을 하여 광양지역지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9년 포스코에게 사용자로써의 책임을 명확히 요구하기 위해 포스코사내하청지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노동조합 역사가 26년에 달한다. 이 긴 시간 동안 아직도 48명의 조합원이 민주노조를 지키고 사수하고 있다. 협력업체 평균나이 48.4세와 조합원 평균나이가 비슷하다. 선배들의 내공이 느껴진다.

포스코 철강 생산구조를 단순화하면 “고로->제강->열연->냉연->입고”로 볼 수 있다. 각각의 제조공정을 넘어가기 위해 크레인을 사용한다. 고로에서 제강으로 넘기는 크레인 작업은 대부분 정규직이 한다. 그 다음인 제강에서 열연, 냉연, 입고까지 크레인 작업은 90년 초부터 크레인 작업을 사내하청업체로 넘기더니 이제는 대부분 사내하청노동자들이 한다. 결국 하청노동자들이 작업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철강도 생산할 수 없다. 또한 고로부터 입고/출고까지 모두 한 작업으로 이뤄지는 자동흐름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코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 확실하다. 비록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 선고가 3번이나 연기된 현실을 감안할 때 2심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많다. 3월 25일 재판부변경으로 변론재개를 하며, 한두번 심리를 한다 해도 6월말에는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매주 화/목 양일간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출근투쟁을 하는데 오늘은 순회단이 와서 하루 더 하신다고 한다. 한 차례 출근투쟁에 와봤는데 한명도 보이지 않던 여성조합원들이 계셨다. 그런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아니었다. 올 2월 25일 노동조합을 건설한 광양농협지부 조합원들이었다. 아침부터 그것도 제조업 사업장 출근투쟁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많지 않은데 참 반갑고, 신기했다. 아니 이렇게 함께 만들어 가는 광양이 부러웠다. 또 매주 1회 출근투쟁 참여를 위해 광주에서 새벽같이 오신 금속노조 광전지부 심종섭 지부장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할지회를 담당하는 임원이 우리 출투에 아니 집회에 참여한 적이 얼마일까? 교섭하는 날도 교섭이 안 될 거라며, 다른 일정을 잡고 내려오니. 아예 우리 투쟁은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만 보다가 이렇게 마음을 다해 몸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더 감동스러웠는지 모른다.


오늘 출투에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광주전남지역본부 주훈석 본부장도 광양분회 교육차 오셨다가 참석했다. 해남에 있는 화원농협에 다닌다고 하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선산이 있고, 내 어린 시절 기억이 있는 해남. 동향사람을 만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광양농협분회 간부들과 짧은 간담회를 요청하셔서 일정에 없는 광양농협으로 향했다.

간부동지들이 큰 공간에 계신다. 농협직원들이 상냥하게 인사도 해주신다. 조끼입고 이렇게 반가운 인사를 받으며 안내를 받은지 참 오랜만인 듯하다. 2월 25일 56명으로 출범한 광양농협분회는 몇일 지나지 않은 현재 조직대상 89명중 70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조직대상 전원을 가입시킬 날이 멀지 않았다. 25일 분회결성, 26일 교섭요구, 일주일 만에 본점에 들어와 기본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분회장님을 비롯한 간부들은 분회결성을 앞둔 1주일의 긴장감을 얘기하면서 부족하지만 잘해보려 노력한다며 겸손해 하신다. 하지만 한 사람도 회유당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 속에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묻어난다.

전국적으로 조합장 선거로 시끄러운데 광양농협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광양농협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독후보면 투표없이 그냥 당선이라고 하다. 참 희한하다. 공직선거라는 거. 노동조합은 단독후보라도 조합원의 선택을 묻는데 조합장이나, 다른 공직선거는 그냥 무투표 당선이라니. 그러니 서로를 매수하고, 금권이 오가는 일들이 많아지지. 몇 사람만 포섭하면 되니까.

하지만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 우리는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집단적으로 결정한다. 교섭위원 동지들이 교섭요구를 만들기 위해 조합원 설문조사를 했고, 그 결과로 요구안을 확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참 많이도 쓰셨다. 얼마나 긴 시간 억울하셨을까? 밝은 얼굴에서 승리의 기운을 느낀다.


교섭위원은 총 7명인데 오늘은 분회장, 수석부분회장, 사무국장, 회계감사, 교섭위원 1명 총 5명만 참석했다. 두 분은 업무가 바빠(한분은 부지점장이어서, 지점장인 본점에 들어오자 책임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광양농협은 지점 7개와 마트 2개, LPG주유소 등을 갖고 있는 큰 조합이었다. 이런 큰 농협에 노동조합을 건설한 동지들도 임금을 더 받자고 노조를 만든 것은 아니다. 부당전출과 같은 일을 하는데도 기간제 계약직, 시간제 계약직, 용역업체 직원 등의 권리보장을 요구할 것이다. 왠지 믿음직스럽다. 이미 승리의 키가 무엇인지 아는 동지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동지들이 전국순회하면서 밥 굶지 말라며 투쟁기금과 광양농협이 자랑하는 광양 쌀을 선물로 주신다. 이번 순회투쟁하며 여러 가지로 호강한다.


작년 총파업 투쟁으로 4조3교대를 쟁취한 현대제철순천비정규직지회 임상집 동지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작년 유성희망버스 이후 처음으로 구희수 지회장 동지를 봤다. 오늘이 요구안을 확정하는 임시대의원대회라서 분주하다. 금속노조에서 총파업 교육을 위해 서쌍용 부위원장도 있다. 같이 간담회를 진행하다 중간에 나가서 아쉽기는 했다.


현대제철순천비정규직지회 상황을 최현태 부지회장 동지가 설명해 주신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2010년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를 했는데 광주지법 순천지원으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무려 햇수로 6년 동안 진행하는 이 소송도 올 8~9월에는 마무리될 것 같단다. 당시 조합원 163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332명으로 조합원이 확대됐다. 이는 현대제철순천비정규직지회가 소송에 기대지 않고 꾸준히 투쟁을 진행해 왔다는 증거다. 아니 스스로의 힘을 만들어온 기록이다. 올해가 현대제철순천비정규직지회(첫 이름은 하이스코비정규직지회였다. 현대제철이 하이스코를 인수한 시점부터 변경되었다.) 설립 10년, 단협 체결 8년째다. 하이스코 하청업체로 남아있는 업체에 조합원이 있어 2개 원청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제철에 집중해서 하이스코에 적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10년 투쟁의 힘, 현장의 힘으로 2015년은 ‘정규직화 로드맵’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원청과 제대로 싸우기 위한 준비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노조 게시판에 부착된 선전물도 투쟁의 방향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총파업에 대해서는 각급 회의 때마다 교육을 배치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임시 대의원대회에 서쌍용부위원장을 부른 이유도 총파업 교육을 위해서라고 한다. 매주 수요일마다 총파업 현장선전전을 진행 중이고, 25일~27일까지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섭도 중앙교섭, 지부교섭 이후 지회요구안을 발송할 예정이며, 4월 말부터 교섭이 진행될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6월 10일경 금속노조 중앙교섭 조정 시기에 함께 신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6월 26일~27 사내하청노조 1박2일 투쟁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대제철순천 동지들은 사내하청공동파업이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이후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계획과 경로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맞다. 혼자 힘으로 거대 자본을 상대할 수 없다. 조합원이 작년에 늘어서 올해 파업을 하면 생산라인에 지장을 줄 순 있지만 그렇다고 정규직 쟁취를 바로 할 수 없다. 우리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내하청노동자 공동의 힘을 기르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제철순천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의 2015년 투쟁 방향은 모범적인 모습이다.

4조 3교대를 17년보다 빨리 진행하기 위해 시범실시도 하면서 근무형태도 통일시키는 등 많은 부분 정규직전환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일단 현대기아차가 공동투쟁을 조직해보겠다. 이 공동투쟁이 1차적으로 진행되면, 현대제철, 위아가 함께 정몽구 회장 타격투쟁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현대그룹사 압박 투쟁을 하자고 요구했다. 현대제철순천지회 동지들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를 현실로 성사시키는 우리의 힘이 필요한 시기다.

오늘의 마지막이고, 이 주의 마지막이다.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이다. 도착 이전부터 금호타이어비정규직지회 신현균 지회장 동지가 필요물품이 무엇인지 챙겨주신다. 광주에서 곡성까지 오셔서 순회투쟁단을 맞아주는 마음이 고맙고 감사하다. 곡성공장에 비정규직지회 사무실이 있어 간단하게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출입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화내는 사람들과 어찌 할지 모르는 지회장 동지 사이에 끼여서 나도 어리둥절하다. 신현균 지회장 동지가 조합원들도 계시고 요즘 금호타이어 상황이 조금 어수선해서 그렇다며 순회단 동지들에게 연신 죄송하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데 정규직노동조합이 와서 출입 문제를 해결하니... 노동조합은 힘이 있어야 한다. 경비노동자도 자신의 지회장이 책임지겠다는 말은 안 된다고 하고, 정규직 상집에게는 알았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또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인 경비노동자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현균 지회장 마음은 어땠을까. 괜히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여곡절 끝에 비정규직지회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고 김재기 열사 분향소였다.

"제가 죽는다 해서 노동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우리 금타만은 바뀌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금호타이어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도급화 결사저지 조합원 서명지와 노동세상을 염원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신 고 김재기 열사에게 인사드렸다. 살아남은 자가 제대로 투쟁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이윤확대에 노동자 죽음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자본에 대한 분노가 엉켜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에서는 계속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비정규지회 홍태석 노안부장과 조합원 동지들이 함께 유인물도 배포하고, 선전전도 같이 하면서 우리 투쟁을 알렸다.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금호타이어는 복수노조 사업장이다. 정규직도 1노조와 2노조가 있고, 비정규직도 각 업장마다 노동조합이 다르다. 정규직은 금속노조가 다수노조다. 자본이 복수노조로 가장 재미를 못본 곳이 금호타이어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은 금속노조 조합원이 300여 명, 한국노총 조합원이 700여 명 된다. 어떤 방식이든 1000명의 비정규직노동자가 조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후 투쟁 가능성은 열려있다. 비정규직노조가 양대노총으로 나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2004년 금호타이어비정규직지회는 원하청공동투쟁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쟁취한다. 400여 명이 정규직으로 채용된 이후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한 6명만 조합원으로 남았다. 다시 노동조합을 확대하기 위해 경비, 식당, 미화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생산도 조직했다. 그 결과 지금은 생산보다 비생산 조합원들이 조금 더 많다. 불법파견 투쟁을 하면서도 현대차비정규직지회와 같이 정규직전환 투쟁에 올인할 수 없는 이유다. 다가오는 4월 17일 광주고법에서 항소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는데 선고이후 임투와 연동해서 본격적인 투쟁을 계획할 예정이라 말씀하신다. 작년 통상임금 문제도 해결되었지만 금년에도 투쟁의 꼭지점을 잡고 조직 확대 투쟁을 만들려고 계획 중이다. 보다 자세한 얘기는 월요일 광주공장에서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로 했다. 울산으로 향한다. 내일은 스타케미칼 300일 투쟁이다. 어제 밤 26년차 늙은 노동자 양동운 지회장의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조합을 탈퇴하는 노동자와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 모두를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할 때, 우리가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는 약합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으로 단결해서 싸우자고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노동자가 없으면 포스코는 고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진짜 고철이 맞는지 퇴직전에는 반드시 확인하고 싶습니다. 내년이 퇴직인데 조만간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 믿습니다. 한번도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길 겁니다."

나는 정말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가? 또 묻고 물어본다. 그래, 꼭 이긴다고 생각하자!
덧붙이는 말

순회투쟁 후원계좌 : 농협 302-0800-6304-91 / 김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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