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25일) 새벽 5시 현장동지회 이동기, 김영찬 동지가 우리를 깨운다. 두 동지는 아마도 우리를 깨우기 위해 밤새 술을 드신 것 같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출근선전전을 위해 부랴부랴 숙소를 나섰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어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선전전은 순회투쟁단 외에도 군산공장 비정규직, 현장동지회, 군산지역 택시동지들, 계급정당추진위, 노건투 동지들이 함께해 주셨다.
군산 선전전을 마치고 호남고속 동지들 출근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호남고속 동지들의 사연이 참 눈물겹다. 호남고속 동지들은 전북고속 동지들과 함께 지난해부터 진행한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회사가 버스 요금에서 2,400원이 부족하다고(잔돈이 없어서 그냥 타는 손님들이 있는 등 여러 사정이 있었나 보다) 2명의 동지를 해고하고 56명의 조합원들에게 징계를 예고했다. “아니 그까짓 2,400원 사장 놈에게 집어던지고 말지...”라고 혀를 끌끌 찼더니 한 동지가 “우리는 740원 때문에 대법원까지 갔어요”라고 말한다. 사연은 이렇다. 천막농성 할 때, 전기를 끌어 썼다고 사장이 전기 요금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정말 황당 시추에이션이다.
60~70년대 사장들이 버스 안내양의 몸을 더듬고 뒤져서 동전을 찾아냈다고 하던데, 2015년 대한민국에서 자본가들은 단돈 2,400원 때문에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치졸하고 악랄한 사측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센 호남고속 형님들은 선전전 내내 동료들과 수다를 떤다. 멀리서 와서 고생한다며 콩나물 국밥을 사주셔서 시원하게 해장하고 시청 앞 전북 택시 동지들의 농성장으로 향했다.
농성장에서 간담회를 진행하는데 택시 동지가 대뜸 이렇게 말씀하신다.
"대법 판결 나도 정몽구가 꿈쩍하지 않죠? 우리도 똑같습니다."
사납금제도는 택시 업계의 현대판 노예제도다. 이미 대법원에서 사납금은 불법으로 판결났다. 심지어 택시 사장들의 위헌청구도 기각되었다. 하지만 현재도 사납금제도는 관행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매일 10만 9천원의 사납금을 회사에 바치면 하루 15시~16시간 택시를 몰아야 겨우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기본급을 산정하는 소정 근로시간이 제각각이다. 어떤 회사는 하루 6시간 40분, 어떤 회사는 5시간이라고 한다. 심지어 영주의 한 분회는 단협으로 소정근로시간을 2.5시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한 달 내내 뺑이쳐도 임금이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다(사납금의 부족분은 고스란히 가불로 처리된다고 한다). 물가는 오르는데 사납금만 오를 뿐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락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택시 업계에 젊은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고 한다.
택시 회사가 불법을 저지르면 담당 지자체(시청)에서는 과태료, 감차, 면허취소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런데 시청에서 사납금제도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법대로 하라”는 정말이지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조차 묵살하는 것이다. 불법파견을 저지르면 고용노동부는 파견법 [제 19조]에 따라 하청업체를 폐쇄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정몽구의 눈치를 보며 실질적인 시정조치를 외면하고 있다. 택시업계나 현대차나 불법을 수수방관하는 정부 관료들의 행태는 어쩜 그리 닮았을까?
점심시간에 맞추어 한국지엠 군산 비정규직 동지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군산공장에서는 이미 지난해 350명이 은폐된 정리해고인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났다. 최근 한국지엠 군산 지회는 1교대 전환과 사기진작비 10만원을 받는 대신 비정규직에 대한 사실상의 정리해고에 합의했다. 단돈 10만원에 지역의 후배, 동생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를 용인하는 정말이지 부끄러운 합의를 했다. 1교대로 전환하면서 4월말까지 정규직은 부평, 창원 등으로 전환배치를 완료하고, 650명의 비정규직에게는 희망퇴직할 경우 근속에 따라 200만원에서 최고 1,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 움직임이 있을 때, 위로금 액수가 한 때 5,000만원까지 치솟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아무튼 투쟁하지 않고 쟁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가 새삼 떠오른다.
비정규직 해고가 계속되자 군산공장에서도 최근 비정규직노조 결성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계획이 실패하면서 노조건설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 동지가 용기를 내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참여하고 노조건설을 위한 공개적인 활동에 나섰다.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일했는데 돈 천만원 받고 이대로 나갈 수는 없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고가 임박한 상황에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송을 하고 싶어도 생계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을 했다. 게다가 정규직 노조가 과연 도와주겠느냐는 걱정도 크다. 울산·아산 해고자들이 많은 조언을 했지만, 처음부터 쉬운 투쟁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분노와 의지가 모이면 군산공장에서도 비정규직지회의 깃발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마지막 일정으로 오후 2시 반부터 현대차 전주공장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전주위원회 의장 및 상집동지들을 비롯해 많은 정규직 동지가 함께 피켓을 들고 선전물을 배포했다. 선전전을 마치고 전주위원회 동지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전주위원회 강만석 의장은 현재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을 깨끗하게 써달라고 전주비지회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신규채용으로 다 가버리면 앞으로 촉탁계약직이 써야 하지 않겠냐”면서....그러고 보니 현재 현대차 생산부문의 촉탁계약직 인원이 3,2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현대차는 채용할 땐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희망고문을 하지만, 2년이 되기 전에 어김없이 계약직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최근 한 촉탁계약직 노동자가 “너무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나겠다”면서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파리 목숨인 촉탁계약직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에 정규직-비정규직 동지들이 함께 손 맞잡고 싸울 날을 기대해본다.
전주지역 일정 중 현대차 전주위원회, 계급정당 전북추진위, 공공운수노조 전북 택시지부, 발전노조 이재백 동지 등 많은 동지가 투쟁기금을 후원해주셨다. 택시 동지들의 사정이 어려운 것 같아서 순회투쟁단도 투쟁기금을 드리려고 준비를 했는데 결국 서로 주고받았다. 조금 쑥쓰러웠지만 노동자들의 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힘들게 투쟁하는 동지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