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조선업종구조조정 저지 현대미포조선 원하청공동투쟁위원회 현장선전전 |
길이 끝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한다고 믿는다.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부터 시작한 민주노조운동의 영광과, 지금은 산산이 흩어져버린 동지들의 빈자리만 남은 모습까지 한 시대를 내 젊음과 함께 했다. 그 가운데서 투쟁의 온갖 고초를 몸에 새겨오며 더 힘든 일은 앞으로는 없을 거라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언제나 위기는 더 거대해진다.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 앞에서 이제까지 의지해왔던 어떤 수단과 방법도 듣지 않는다는 걸 직감할 때마다 말없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버티기만이라도 하자고, 버티다보면 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이번에도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을 많은 동지들과 함께 가고 싶다.
최근 미포조선에서는 사내하청업체인 KTK선박의 ‘먹튀’ 폐업이 발생했다. 이에 맞서 KTK선박 노동자들은 원청 부서 사무실을 점거하고, 원청 사장실이 있는 본관 건물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며 “원청 사장이 진짜사장”이라고 “고용승계와 체불임금을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민주파 정규직 활동가들과 사내하청 활동가들이 결성한 ‘원하청 공동투쟁위원회’도 함께 철야농성과 현장선전전, 출입문 출퇴투를 하면서 연대투쟁을 벌였다.
노동자에 대한 총공격이 시작된 지금, 미포 ‘공투위’ 동지들은 이번 자본가정권의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조선업종 구조조정을 막아내지 못하면,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 노예의 삶으로 되돌아간다는 위기감을 안고 있다. 때문에 어떠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구조조정을 저지해야 한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원하청 노동자들을 만나고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측은 공투위 동지들이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위반했다며 인사위원회에 회부한다고 압박하지만, 공투위 동지들은 현장의 분노와 하나 되어 투쟁에 대한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현장의 원하청 노동자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며 술렁이고 있다. 현장사무실 앞에서 점심 선전전이 끝날 무렵이면, 주위에서 선전전을 지켜보고 있는 원하청노동자들 모두가 함성과 박수로 ‘공투위’ 동지들에게 힘내라고 외친다. 이런 모습을 통해 다시금 현장의 분노를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려도 많다. 자본가정권의 행보와 현중그룹 차원에서의 강력한 구조조정이 계속 추진중에 있는데, 노조집행부도 아닌 소수의 원하청 현장 활동가로 구성된 ‘공투위’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구조조정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느냐며 불안감에 싸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는 5월 30일,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등 9개 조선소 노동조합이 모여 조선업종연대회의를 구성하여 노동자의 총고용 보장을 내걸고 조선노동자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미포 사내 현장사무실 주변에도 조선업종노동자대회 참여를 독려하는 현수막이 화려한 구호로 내걸려있다. 하지만 미포조선 노조집행부는 이번 사내하청 ‘먹튀’ 폐업 투쟁에 연대한 공투위를 순진한 KTK노동자들을 이용하는 배후세력으로 지목했고, 조선업종연대회의 자체도 이번 투쟁을 방관하고 방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대회에서는 화려한 말잔치가 벌어지고 있지만 실제로 투쟁의 동력을 모아 싸워야 할 현장에서는 현장정서와 내부동력을 운운하며 말과 행동 모두를 사리고 있는 판국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성 있는 행동이다. 비록 소수이지만 현장에서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노동계급의 대의를 위해 투쟁하는 민주파 현장조직과 하청 활동가들이 중심에 서서 원하청공동투쟁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미포조선 원하청 공투위를 시작으로 나아가 조선업종 전체의 원하청공투위로 발전시켜 각 사업장별 원하청공투위가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조선업종 구조조정 저지투쟁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기, 원하청공투위의 힘이 절실하다. 그 길에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