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7시 민주노총 교육원에선 ‘해고자투쟁과 장기투쟁사업장 문제의 원인 진단과 지원 대책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해고노동자들과 노동탄압에 맞서 싸워온 활동가들은 긴급하게 토론회를 한 이유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보다 해고자들과 장기투쟁 사업장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참세상>은 해고노동자 투쟁과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를 풀기 위한 이호동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전해투) 위원장의 해고자투쟁의 현실과 지원체계에 대한 절실함을 담은 발제문 전문을 싣는다. 이날 토론회는 장그래운동본부장을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가 장기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발표 했고, 해고-장기 투쟁 지원과 연대활동을 내걸고 활동 하는 정기호 울산지역연대기금 대표와 김은주 진보마켓 대표가 토론자로 참가했다. [편집자 주]
문제의식의 출발
자본주의 체제 성립과 해고의 문제는 시기적으로 동일 출발선상에 놓이게 된다. 고용관계의 성립과 종료는 자본주의 체제의 노자관계에서 필연적 문제이니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법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부당해고를 당한 개별노동자의 대응에서 집단적 대응으로 진전되며 집단적 노사관계 형성이후에는 당해 노사관계의 핵심쟁점이 된다. 초기 한국노동운동사에서 보이는 개별적 저항, 노조의 맹아적 형태인 집단적 저항, 일제 강점기와 독재시대의 해고투쟁은 노조 설립 또는 노조민주화투쟁과 더불어 불법 내지 불온시되는 행위였다. 따라서 자본의 해고는 무차별적이고 무제한적 자유를 누렸다. 반면에 노동자들의 저항은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로 제한적 대응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와 전평시기의 조직적 운동은 분단과 독재체제의 형성과 맞물리면서 노동자계급운동의 구조적 우위를 안착화하지는 못하고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노동법의 제정 이후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통한 제도적 대응도 개인적 대응과 일부 복직, 포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7,80년대의 주요한 몇 사업장을 제외하고 80년대 중반까지 해고자 투쟁은 암흑기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고자투쟁이 전국화한 것은 전평시기를 제외하고는 87년 전후 해투위, 해복투 등으로 집단화하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오랜 기다림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평시기에 ‘해고실업반대투쟁위원회’의 ‘피해고실업자대회’가 개최되는 등 주목할만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91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국 해고노동자 모임' 명의로 유인물을 발행 및 배포되었다. 이어서 92년 5월 '전국 해고자 수련회'를 개최하여 전국 해고자조직을 결성할 것을 결의하게 된다. 그 해 전국노동자대회에 "전국 구속·수배·해고노동자 원상회복 투쟁위원회"의 투쟁을 알리고, 93년부터 본격적인 투쟁을 전개해서 해고자투쟁이 전국화하게 된다. 이 시기까지 민주노조의 경험을 한 몇 사업장의 경우 완강한 투쟁을 벌이지만 장기해고자의 경우 현장복귀가 요원해지면서 다양한 역할과 진로를 모색하게 된다.
해고자투쟁이 당해 부당해고의 철회를 위한 고립분산적 투쟁을 넘어서 노동운동, 변혁운동의 선봉에 서게 되면서 전국적 해고자투쟁은 ‘해고자운동’이라는 별칭을 부여받기도 한다. 해고자투쟁의 전국화와 전국조직의 건설을 통한 다양한 투쟁의 성과도 있었지만 미해결 장기투쟁사업장의 경우 개별 자본과의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투쟁으로 버티는 방법이외에 대안이 없었다. 민주노조운동의 다양한 개별적 지원과 조직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장기투쟁으로 인한 심신의 피폐와 재정적 한계는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해고자들을 조직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대규모 노조의 경우와 달리 중소, 영세사업장의 경우 끝없이 이어지던 투쟁기금 모금과 재정사업도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조직 비정규 장투사업장의 경우 전해투와 각종 대책위 등이 조직적 지원의 부재와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끝없이 양산되는 해고자와 장투사업장의 투쟁 지원에 있어서 한계적이었다. 이에 대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체계적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방기해서는 안 될 주요한 역할임을 강조하는 것이 본고의 주요목적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와 노조탄압으로 양산되는 해고자 문제
자본의 입장에서는 어용노조 민주화 또는 민주노조 사수의 중핵을 현장에서 영원히 격리시키고 공포를 확산시키는 목적을 달성한 바 이의 철회는 자본의 패배를 의미하므로 필사적으로 원직복직을 저지하게 된다. 해고자의 노동조합 출입 및 조합원 접촉 봉쇄를 위한 출입금지 가처분 남발에 이어서 조합원 자격유지, 획득에 대해서까지 개입한다. 규약시정명령, 설립신고증 미교부로 탄압을 가중시키는 방식도 확대된다. 반면 해고자의 민주노조운동 내 위상은 노동조합운동의 우경화에 따른 해고자 자격논란, 역할 축소 및 배제 등이 만연하면서 이중의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본의 비정규직 확대 전략이 강화되면서 비정규 해고노동자 투쟁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 해고자 복직투쟁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전략에 보조적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조직적, 운동적 한계를 안고 있고 이의 극복을 위해 향후 비정규운동과 유기적 협조체제 형성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할 것이다.
쌍용자동차 투쟁으로 대표되는 정리해고 분쇄 투쟁은 2011년 정리해고자가 10만명을 돌파해서 외환위기 직후 1998년 12만6,555명을 기록한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법제도를 악용한 정리해고의 확대는 법제도 철폐투쟁에도 역량을 집중해야하는 과제를 운동진영에 무겁게 부여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경우 공무원해고자 135명, 공공운수부문 400여명, 전교조 20여명 등에 대한 복직이 조직적 과제이며 추가 해고가 지속되고 있어 원직복직 투쟁이 장기간 다양하게 지속되고 있다.
최근 해고의 양상은 산업과 업종을 불문하고 일상적이고 주기적인 비정규직 해고, 자본의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행위에 대한 정리해고와 징계해고, 제도를 악용한 무차별적 노조탄압과 함께 3종 세트로 남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장기화하는 해고자, 비정규직 투쟁의 현실과 조직적 지원체계 문제
해고자운동의 활동가인 해고자는 자본에 의해 비자발적 고용관계의 종료를 강제당한 후 원직복직 의사를 가지고 부당해고 철회투쟁을 전개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민주노조 건설과정에서 선진활동가들은 자본에 의해 필연적으로 해고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해고를 예방하고 해고자를 원직복직시키는 과정은 민주노조 운동의 주요 과제이자 강화과정으로 기능하게 된다. 해고자는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이며 자존심이라는 규정은 이에서 연유한다.
굴욕적 타협에 의한 복직, 금전보상에 따른 복직 의사 철회에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활동가로서 원직복직의 그 날까지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활동하는 것이 불변의 해고자투쟁 정신이다. 개별적 활동이나 단위노조와 산별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체 해고자의 문제, 전체 운동에 복무하는 것을 기본으로 그동안 해고자활동가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역량을 발휘해왔다. 대규모 사업장 해고자들의 경우에 일정한 조직적 지원을 바탕으로 원직복직투쟁과 민주노조운동에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비정규직 해고자, 중소 영세사업장의 장기해고자들의 경우에 가중되는 생활고와 투쟁기금의 고갈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산별노조와 총연맹의 차원의 지원은 근본적 대책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 제한적 재정지원으로 인해 투쟁이 장기화할 경우 투쟁의 지속을 위한 재정대책은 오롯이 투쟁주체의 몫이 된다. 특판사업과 후원주점 등의 일시적 재정대책을 활용하기도 하고, 후원모금계좌를 통한 모금도 10년 투쟁이 즐비한 장기투쟁의 경우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각종 투쟁기금 모금을 통해 전국적, 지역적으로 해고자투쟁을 후원하거나, 장기투쟁사업장에 기금을 지원하는 단위들이 늘고 있지만 절대부족 상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적 대책수립이 절실하지만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민주노총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는 원직복직 투쟁단위의 수평, 수직적 관계를 강화하며, 조직 내외적 문제로 활동의 부침이 있었으나 중앙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유지 발전시켜오고 있다. 전해투의 경우 투쟁의 전술적 지원 등은 가능하나 재정을 책임지는 기능은 불가능하다. 전해투가 총회 등을 통해 현재의 제한적 지원체계의 한계극복을 위한 호소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지만 운동진영의 실천과정은 여전히 모색 단계에 머물고 있다. 전해투 사업비의 안정적 유지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한계에 비추어 볼 때 특단의 결정이 없이는 요원한 장기 미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장기 투쟁사업장 주체들의 재정문제 못지않게 신체적, 정신적 건강유지와 회복의 문제는 중차대한 과제다.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 또한 최근 들어서 늘고 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몸살림, 트라우마 치유, 쉼터, 의료단체 등이 곳곳에서 장기투쟁사업장 투쟁주체들의 정신적, 육체적 기능의 회복을 위해 역할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체계적 운영과 지원을 위한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지원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투쟁의 역사에 대한 교육과 개별해고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 각종 연대 단체나 개별 연대자들과 투쟁 현장의 관계맺기도 조직적 전범을 마련하고 숙련할 필요가 있다.
결론을 대신하는 호소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계급적 역관계에서의 힘은 숫적 우위에 비해 절대적 열위 상태이다. 양대노총을 통틀어서 노동조합 조직률 10%내외의 조직상황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존재는 참으로 귀한 존재들이다. 3.5%내외의 염분 농도로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성과 연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이들의 투쟁을 엄호하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건강성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사안별, 단기적 투쟁을 통해 해고된 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쟁취하고, 장기적으로는 '해고없는 세상'을 향해 부당해고제도의 철폐를 위한 투쟁의 전개를 위해서도 투쟁주체들을 현장에서 사수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해고자들이 원직복직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지병으로 사망하거나, 스스로 자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쌍차투쟁의 경우 26명이 정리해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고, 절망의 벽 앞에서 고통을 호소하던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자본의 철옹성에 부딪치며 절망하는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투쟁의 나날을 버틸 수 있도록 재정적, 정신적, 육체적 힘을 유지시키는 데 지혜와 여력을 남기지 말아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절망적 상황을 조직적, 운동적으로 돌파하려는 집중적 노력만큼 무너진 현장의 복원과 노동계급 운동의 전망도 강화될 것이다. 이에 대한 동의의 저변을 강화하고 실천을 심화하는 개인과 조직이 요원의 불길처럼 확대되기를 기대하며 동참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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