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말]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노동시장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겠다는 것입니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에서는 이 대책이 현실화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현재 정부는 어떻게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지 연속기고를 합니다. 다섯 번째로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정책의 실상에 대한 분석 글을 싣습니다.
비정규직 확산을 위한 정부의 공세가 심상치 않다. 정부는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위해 정규직.대기업 노동자가 양보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제를 내세워 더 낮은 임금, 더 쉬운 해고,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사정 합의가 결렬되었으니 안심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노사정 합의 결렬에 상관없이 공청회라는 형식적인 절차와 ‘비정규직 가이드라인’, ‘단체협약 시정지침’, ‘임금피크제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등의 행정지침을 통해 예정된 시나리오, 소위 Plan B를 차근차근 실행해 가고 있다. 시나리오의 내용은 정부가 작년 12월 29일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과 대동소이하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발표 이후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기는 하였으나 전문가 그룹의 의견은 정부안을 지지하는 것이었고, 노동계에서 제출한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이후 바뀐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양이 많다. 많은 양의 정책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보니 중점 정책과 비중점 정책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방향과 해법이 모순된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남용 방지 및 불합리한 차별 해소”를 중요한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신규 채용의 경우 정규직 형태로 하도록 하고, 현재 채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며, 비정규직을 유지하는 경우에도 차별 시정 제도를 개선해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방향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방향 설정과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이 일치하지 않다 보니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난감하다. 셋째, 정책 중에는 정말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좋겠다 싶은 것도 있고,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안 좋은 것도 있다. 예컨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시정명령의 효력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명령 제도의 도입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이고, 상생협력을 위한 노사정 파트너십 강화는 겉보기에만 좋은 정책이다. 이 중에는 진짜 사탕도 있을 것이고 사탕발림에 불과한 것도 있을 텐데, 이를 구분하기가 만만치 않다. 따라서 개별 정책 하나하나를 따지기보다는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 방향이 옳은지, 구체적인 정책이 방향에 부합하는 것인지 전체적인 틀에서 비정규직 정책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왜냐하면 정부는 현재의 비정규직 신분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하청업체, 용역업체 등에 속한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는 대기업, 원청업체, 위탁업체의 사용자 책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간접고용 노동자는 대기업, 원청업체, 위탁업체로부터 노동조건과 업무를 통제받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정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대.중소 및 원.하청 상생”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통해 대기업, 원청업체, 위탁업체가 져야 할 사용자 책임을 외면한다. 일련의 판결을 통해 제조업 사내하도급은 불법이며,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사용자라는 점이 확인되었지만, 정부는 사내하도급을 합법화하면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해 원청업체는 사용자가 아니다. 다만 이들과 상생해야 한다’고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면 될 것을 굳이 직종별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이 말은 특수고용노동자는 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근로계약을 체결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정부의 입장을 드러낸다.
둘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확산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55세 이상 고령자, 전문직에게까지 파견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파견이 금지된 업종에서의 파견 허용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정규직 노동자를 파견 노동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고용서비스업체의 육성도 맥을 같이 한다. 단어는 그럴싸하지만 고용서비스업체는 바로 파견업체, 알선업체 등의 인력공급업체를 말한다. 이들 업체를 키우겠다는 것은 결국 이들 업체를 통한 인력공급, 즉 간접고용을 확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저성과자 해고 제도까지 더해지면 기업은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고, 해고한 노동자를 비정규직 신분으로 다시 채용할 수 있게 된다.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고 한다. 기간제 노동자에게 사용기간 연장은 그만큼 불안정 노동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이고,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사용기간 연장의 폐해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학교에 고용된 비정규직으로, 대부분 1년 계약직이고 최대 4년까지 계약연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매년 재계약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4년 동안 고용 불안에 시달렸으며, 결국 4년 후 해고를 당했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따르면, 2년 근무 후에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기간제 노동자들이 영어회화 전문강사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셋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담겨 있지 않다. 정부는 상시.지속적 업무에 있어서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 기간제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의 격차를 완화하겠다고 하지만, 어떻게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며 격차를 없앨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 특히 정부는 정년만 보장되었지 임금과 노동조건은 여전히 차별받는 무기계약직군의 현실을 도외시한다. 간접고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과 사용자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상생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만을 부여한다. 즉, 사용자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노력을 다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노력을 안했을 때 이를 강제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최근 발생한 경찰청의 영양사 해고 사례는 상시지속적 업무에 있어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떠들었던 정부 정책이 얼마나 허구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찰청은 의경부대의 급식을 담당하던 영양사 37명에게 전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사직서 작성을 종용했다. 그리고는 새로이 영양사를 계약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한다.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온갖 미사여구와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 때문에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면 의외로 답은 쉽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의 탈을 쓴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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