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아래 활보노조)은 7월 6일 아직도 끝나지 않는 국가재난 메르스 정국에서, 장애인활동지원인력과 중증장애인의 지원을 위한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는 보건복지부에 질의서를 보내 활동지원인력과 중증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물었다.
활보노조는, 메르스 확산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가 활동지원인력과 중증장애인에 대한 대책을 아직도 마련하고 있지 않은 데에 대해 유감을 전하였다. “감염의심자가 중증장애인일 경우 해당 장애인은 가족에게 의존하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는 고립되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과 “활동지원인력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감염되어 생명을 잃기까지” 하였음을 복지부도 알고 있을 것인데 이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사실을 우려하며, 끝나지 않는 메르스 정국과 이후에 감염성 질환이 다시 퍼질 경우를 대비한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질의서를 전달하게 된 것이다.
질의서에서 활보노조는 △장애인활동지원인력이 활동지원 과정에서 감염되었으나, 장애인과 동행 했음을 파악하지 못해 장기간 방치되었다가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 있는데, 이와 같은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감염의 두려움으로 인해 이용자가 서비스를 거부하여 일시적으로라도 생계가 끊기는 활동보조인들을 위한 생계지원 대책은 무엇인지 △중증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 연계가 끊겼을 경우 지원방안은 무엇인지 물었다. 또 이것이 개인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등을 포함하여 활동보조인과 같은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서비스가 필요한 이용자들을 기피한다는 사회적 비난에 노출되어 있는 어려움을 전하기도 하였다.
3중의 갈등 : 감염의 두려움, 생계의 두려움, 그리고 ‘나의 이용자’
전염성 질환과 같은 재난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것은 어느 처지에 있건 다 이유를 가지고 있다. 백신이 없기 때문에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대해야 하는 의사들이 가장 불안에 떨어야 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구급차 대원들은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대형마트의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위압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마스크도 착용할 수 없어 더욱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활동보조인 등 대인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있다.
활동보조인들이 겪는 첫 번째 갈등은 감염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확진 판정 이틀 만에 사망한 활동보조인도 이용자와 병원에 동행하였다가 감염이 된 것이다. 그러나 확정되지도 않은 위험 때문에 서비스를 거부하기에는 ‘나의 이용자’에 대한 책임의식이 크다. 내가 없으면 식사도 화장실도 가지 못할 이용자에 대한 염려는 감염의 두려움을 넘어서게 만든다. 또 다른 갈등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용자가 서비스 받기를 거부할 경우 생계의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택은 메르스의 진원지이다. 메르스가 백신도 없고 감염 경로도 너무 광범위해서 통제하기도 힘들어지자 평택의 장애아동 부모들은 활동보조인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이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서비스를 거부하였다. 활동보조인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하며 이 정국이 하루빨리 지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 와중에 대인서비스의 수혜자와 제공자들은 이 난국을 함께 건너야 하는 동지적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가는 우리를 위해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런데 열흘 전 『에이블뉴스』에 올라온 칼럼(서인환, 「장애인들 비상, 메르스 불안감 확산」, 2015.06.26)은 몹시 우려스러운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서비스 제공하다 감염되어 사망한 활동보조인, 희생자인가 전파자인가?
이 칼럼은 장애인이 감염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사회적 관계망들(시각장애인이동지원차량 → 이 차량을 이용한 투석환자 → 감염병동이 된 투석병원 → 이 차량을 투석환자가 이용했음을 알게 된 시각장애인들의 이용기피로 인한 장콜노동자들의 임금 감소 등)을 잘 좇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렇게 생생한 전달의 과정에 치우치다 보니 이 과정에서 감염으로 사망한 활동보조인을 희생자라는 관점으로 본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감염시켰을지도 모를 ‘전파자’라는 관점에 너무 치중한 것이다.
같이 병원을 간 장애인은 즉시 파악되었으나 활동보조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록에 잡히지 않아 방치되었다는 사실은 활동보조인들의 위치를 보여주는 슬픈 사례이다. 평소에도 활동보조인은 그 ‘보조인’이라는 직업명과 그 이름에 걸맞는 ‘그림자’ 대우 때문에 슬픈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에 그 그림자 노동자의 현실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 활동보조인은 자신이 감염되었을지도 모를 위험을 통보받지도 못한 채 그냥 감기이겠거니 하고 병원을 다니고 약국을 다녔을 것이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를 병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칼럼에서는 이 활동보조인의 동선을 지나치게 열심히 쫓다 보니 마치 의도적으로 2135명을 접촉한 것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다. 죽은 자는 항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망자에 대해서는 그 표현 하나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예의이다.
이 활동보조인은 메르스 전파자가 아니라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이다. 다행히 이 분이 소속되었던 활동지원기관에서 산재처리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감염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고인의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겠으나 그나마 돌아가신 분의 명예는 회복시켜 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유럽에서 1300년대 페스트가 발병하였다. 페스트는 공기나 접촉을 통한 전염이라는 점에서 메르스와 비슷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의료발달의 차이는 있지만) 1300년대 유럽은 이 페스트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1이 희생될 정도로 심각했고 유럽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의 가치관을 바꿀 정도로 대단하였다고 한다. 당시 흑사병이 생기는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걸인,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닌다고 하여 집단폭력을 당하거나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향해 공격이 화살이 돌려지는 이유는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질병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정확히 제시한다면 국민들은 서로를 믿고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품위 있고 슬기롭게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하면 남은 것은 우왕좌왕하는 군중들이다.
우리는 메르스 전파에 대하여, ‘왜 그는 자신이 중동의 낙타농장을 방문하였다고 신고하지 않았을까, 왜 000번 환자는 자신도 폐렴으로 악화될 동안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왜 정부는 그가 낙타농장을 방문하였을 가능성이 있음을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왜 정부는 스스로 알아서 자가격리 하라는 어이없는 조치를 내릴까’라고 비판하여야 한다.
일상적인 모니터링 체계, 비상시엔 안전 체계로 활용하는 지혜를
보건복지부는 이 비상시국에 책임의 최전선에 서 있다. 메르스의 종료를 선언하려면 지금의 감염과 진행 정도로도 8월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 때까지 우리는 불안에 떨고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대책없는 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존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는 부정수급을 단속하기 위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인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서비스 제공계획을 일일이 뒤진다. 모니터링은 이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위험에 노출된 시기에는 그 시스템을 부정수급의 단속이 아니라 안전망 구축을 위해 사용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메르스의 위험과 또 앞으로 언제 발생할지 모를 이런 국가적 재난으로부터 활동보조서비스노동자와 중증장애인의 생명과 생존을 지킬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하루빨리 제시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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