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이 촉탁계약직인 생탁 노동자들은 2014년 1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일주일에 하루는 쉬자, 연차휴가를 달라”며 파업을 했다. 노조를 만들고 예전처럼 고구마로 식사를 주는 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노동자의 힘, 노조의 힘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40명이 넘는 사장들로 구성된 사장단들은 복수노조라는 칼을 들었다. 억울했다. 연 매출액 200억 중 70억을 사장이 배당금으로 가져가는데, 노동자 50명이 받는 임금은 1년에 9억이다. 휴가도, 점심도 안 줄 정도로 악랄함에 치가 떨리는데 복수노조까지 가세하니 어쩔 줄 몰랐으리라. 그래서 4월 16일 광고탑에 올랐지만 파업으로 몸과 마음을 고생한 동료가 심장마비로 5월 7일 세상을 떠났다. 빈소에도 갈 수 없는 마음, 계속 죽어가는 동료의 삶이...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래도 고공농성을 유지했던 건 함께 한 한남교통의 송복남이 같이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도 얼마 전 함께 싸우던 동료노동자가 노동청 싸움을 한 다음 날 운명했으니 그야말로 동병상련이었다.
▲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동양시멘트농성장을 갔다. 연락을 하지 않고 가서 연대의 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투쟁의 구호는 외치고 왔다.(앞쪽 오른 쪽부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전지역 조직국장 송민영, 부산지회장 변재승, 해동교통분회장 박무열, 한남교통분회 조직부장 송윤남, 그리고 부산지회 30번째 조합원 옆지기 최정옥) |
생탁과 택시, 어떻게 만났나?
그래도 생탁과 택시, 송복남과 심정보, 공통점이 언뜻 보이지 않았다. 가입노조도 생탁은 일반노조이고 택시는 공공운수노조다. 어떻게 공동투쟁이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마침 8월 28일 민주노총의 ‘노동시장구조개악저지 집중행동’ 대회에 참여한 택시노동자들에게 그 사연을 물었다.
머리가 거의 허옇게 바랜 변재승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장은 말한다.
“생탁은 노동청에서 집회를 하고 택시(한남교통)는 시청에서 집회를 했어요. 집회할 때 서로 같이 가다가 이리 됐어요. 생탁 집회를 하던 어느 날 밤 11시에 노동자들이 연행된 적이 있어요. 이 때 심정보, 송복남도 같이 연행되면서 의기투합을 한 거 같아요. 두 노조 모두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때문에 교섭도, 노동조건 개선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변 지회장은 택시노동을 한 지 16년째로 올해 63세. 정년 해고를 당한 적도 있다. 그전에도 노조활동을 하고 사납금을 내지 않는다고 해고당한 적도 있다. 사납금 제도는 택시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박무열 해동교통분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납금 제도는 60년대부터 있던 전근대적인 제도예요. 택시노동자가 14시간, 18시간 노동을 해도 인정되는 시간은 4시간 20분에 해당하는 돈이에요.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거죠. 일을 하기도 전에 사납금이 정해졌으니 회사는 손해 볼 일이 없는 제도지요. 87년 대투쟁을 통해서 사납금이 없어졌고, 전액관리제라는 운송사업법 제21조 1항에 제정됐어요. 하지만 법률을 집행하지 않는 게 지방정부예요. 전액관리제, 월급제를 시행하라고 정부가 지원금, 부가세 감면, 법인세 감면, 세무조사 면제 등을 했지만 정작 사업장 관리감독을 정부는 전혀 안 해요. 개선을 요구하면 어용노조와 사용자가 협약을 맺은 거니 관여할 수 없다고 해요.”
부산시나 노동청이 사업주의 편을 들고 불법을 눈감고 있는 사이 택시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말이 아니었다. 대법원은 작년 “근로조건은 노사 자율적 협의로 결정할 수 있으나, 전액관리제의 시행 여부 자체까지 노사간의 협의에 의해 정할 수는 없다. 노사 간의 협의에 의해 사남금제를 채택하였다고 하더라도 전액관리제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전액관리제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고 지방정부별로 전액관리제 시행과 택시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은 차이가 난다. 여기에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인가, 민주노조가 많은 지역인가에 따라 택시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차이가 달랐다.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요구하다
송윤남 한남교통분회 조직부장은 민주노총 활동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16년간 택시 일을 하면서 결근을 10번밖에 안한 그는 그야말로 사장이 보기에 ‘착한 노동자’였다. 한남교통은 화장실에 비누조차 갖다 놓지 않아 그가 사비로 비누를 사다놓았다. 사무실 전구도 갈아주지 않았다. 그런 회사니 투쟁의 계기였던 노조사무실을 주지 않은 뻔뻔한 일도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한남교통에 민주노총 가입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됐었다. 택시노동자들의 나이가 평균 55세이다 보니 서로 의견이 달라 힘들 때 도 많지만 천막 두 번 뜯기면서도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있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민주노조 활동 1년을 하니 달라진 게 뭐냐고 물었다.
“눈치 안 보고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게 된 거. 결근계 내려면 마치 초등학교 때처럼 일일이 검사받아요. 왜 결근계 내냐, 하루만 내면 안 되냐며 괴롭혔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그래서 그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심정보에게 ‘조금만 힘내자,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만큼 달라진 게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은 현재 27명이지만 힘을 내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힘이 모자라는 데도 싸움을 이어갈 수 있게 지역에서 연대해주는 시민들이 고맙다. 특히 함께 사는 그의 아내 최정옥이 고맙다. 그는 아내를 ‘30번째 조합원 최정옥 동지’라고 불렀다. 어느 조합원 못지않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농성하는 동료들이 그녀에게 붙인 호칭이다.
연신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녀는 남편이 이왕 싸우기로 했으니 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도 힘들지 않냐고, 1년 넘게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버티냐고 했다. 그들에겐 대학생 자녀가 2명이나 있다. 그래도 자신은 나은 편이라며 거의 매일 나와 농성자들 빨래도 하고 필요한 물품들도 챙긴다.
“힘들죠. 싸움을 하면 생계가 너무 힘들죠, 5개월 되어가니 다들 카드돌려막기를 하고 있어요, 택시노동자들은 투쟁을 하면서도 사납금을 회사에 넣어줘야 하니까 쉬운 일이 아니죠. 시청에 투쟁을 나오면 몇 시간씩 있으니까 매일 5만원씩 깨진다고 봐요. 사납금이 미납이 되고 미납이 되면 징계하거나 퇴직금에서 까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걱정이 되겠죠. 그러니까 다른 데보다 사람들이 지치기가 쉽죠.”
노동자 갈라치기에 맞선 비주류의 싸움
그렇지 않아도 일하는 방식이 혼자라 함께 힘을 모으기 어려운데 최근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분할할고 있다. 일종의 비정규직, 특수고용직도 늘고 있다. 택시 일을 한 지 4년, 노조활동을 한지 2년이 된 대전지역 송민영 조직국장은 말한다.
“최근에 많은 택시사업장이 노동자들을 세분화해요. 정식 근로자가가 아닌 스페어 기사를 만들죠. 일종의 비정규 형태죠. 고정배차는 받지만 가스비 등을 지원받지 않는 대신 사납금이 적은 형태죠. 스페어는 상당수 노동자에게 강제돼요. 정식으로 채용하면 고정비용 늘어나니까. 저도 수습 3개월을 끝나고 정식으로 타는 걸 회사가 꺼리는 눈치였어요. 정년 지난 사람들은 촉탁으로 고용해요, 물론 회사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해고시키고요.”
그는 택시노동자들이 조직이 안 되는 것은 복수노조 같은 노동통제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내가 참 택시일에 대해 모르는구나 싶어 미안해졌다. 박무열 분회장이 말한 택시노동자에 대한 노동통제도 잘 몰랐으니까. 박 분회장에 따르면 택시미터기로 노동자들의 위치를 추적할 뿐 아니라 손님을 태웠는지 아닌지도 감시한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아 나는 택시를 탈 일이 많다. 그들의 노동에 빚지고 살면서도 의식도 못했구나 싶어 더 미안했다. 그래서 택시 일을 하면서 서러웠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처음 택시 일을 했을 때. 제 일에 대한 확신도 긍지도 없이 단지 입에 풀칠하려고 일할 때였는데 그걸 다른 사람한테 들었던 적이 있어요. 다른 느낌이죠. 도로에서 어떤 사람이 끼어들기하다 시비가 붙었는데 그 사람이 저보고 그래요, ‘넌 평생 택시나 하고 살아’, 잘못한 거는 그쪽인데 그런 말을 들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요. 택시노동이라는 것이 폄하되는 식의 세상은 아니지 않나. 내가 못난 인생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건 아니잖아요. 지금 노조활동을 하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남길지 모르지만 내 스스로에게 ‘비겁했다’라는 생각이 남지 않기를 바라죠.”
우리 사회에 택시 노동자들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폄하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다. 옛날에 공돌이 공순이라는 말로 제조업 노동자들을 비난했듯이 서비스노동자에 대해 비하한다.
그에게 912 희망버스는 어떤 의미냐고, 왜 노동자는 하나냐는 낡은 구호를 외치냐고 물었다. 그는 산업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지만 복수노조, 비정규 노동 등으로 자본가들은 똑같이 탄압하는데 노동자들이 하나로 맞서 싸워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사실 생탁이나 택시는 어찌 보면 큰 사업장도 아니고 금속이나 큰 공공기관도 아닌, 어쩌면 노동운동의 비주류의 싸움 아니냐고 했다. 이러한 싸움에 연대를 해야 힘이 모아지지 않겠냐고.
그 말을 들으니 난 더 부끄러워졌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줄곧 비판해온 나조차도 비주류의 투쟁인 생탁과 택시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지 못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냐 싶었다. 100인 미만 중소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 중에 80%가 넘고 비공식노동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다시 고공농성을 하는 대우조선 사내하청노동자 강병재도 비주류인 비정규직이다. 진짜 이번 희망버스는 비주류들의 싸움이구나 싶다. 중심에 벗어난 이들이 벌이는 투쟁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중심에 선 재벌과 박근혜정부와 맞짱을 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절망의 깊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그들을 만났는데 빛을 조금 본 것 같았다. 싸움을 이제 시작한 이들의 건강한 빛을.
* 사진 설명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동양시멘트농성장을 갔다. 연락을 하지 않고 가서 연대의 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투쟁의 구호는 외치고 왔다.(앞쪽 오른 쪽부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전지역 조직국장 송민영, 부산지회장 변재승, 해동교통분회장 박무열, 한남교통분회 조직부장 송윤남, 그리고 부산지회 30번째 조합원 옆지기 최정옥)
9.12 희망버스, ‘특별한 가을 여행’ 일정
기아차 비정규직 최정명, 한규협 국가인권위 광고탑 고공농성, 94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강병재 고공농성, 157일
부산시청 생탁-택시 송복남, 심정보 고공농성, 150일
* 9월 12일(토) / 서울 기준(전국 각지 출발)
09:00 서울 한남 오거리 집결
(사전행사) 08:00 한남오거리(정몽구회장 집 앞) - 조깅하다 만나는 ‘몽구’
09:30 서울 버스 출발
15:30 거제 대우조선해양 고공농성장 - 연대마당
16:30 대우조선해양 4만 비정규직 만남 마당 - ‘희망의 배’ 나누기
19:30 부산시청 생탁-택시 고공농성장 실천행동
20:30 희망버스 연대한마당
22:00 비생탁 막걸리 축제
23:00 고공농성 150일, 잠들지 못하는 밤
* 9월 13일(일)
09:00 김무성 새누리당대표 영도 의원사무실 규탄마당
- 노동시장 구조개악 중단!
- 생탁, 택시, 버스, 풍산, 만덕공동체 등 부산지역 민생 현안 외면 규탄!
- 콜트콜텍 노동자 허위발언 및 명예훼손 고발, 수사 촉구!
참가비 : 4만원(서울 출발 기준)
문의 : 010-9633-0314
메일 : hopelabor@jinbo.net
희망버스 후원 : (국민)518401-01-286598(912희망버스,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