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은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은 원내 5석을 확보했고, 진보신당은 1석도 건지지 못했다. 두 정당 의석수를 합해도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석권한 10석의 절반이다.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는 보수 텃밭에서 한나라당 권력실세를 꺾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고, 권영길 후보는 진보정당 후보 최초로 지역구 재선에 성공했다. 진보신당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도전장을 내 각각 3%p와 8%p차로 석패한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도 선전을 치렀다.
그러나 이는 정당의 공적이라기보다는 후보들의 ‘개인기’에 의존한 결실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 비례대표 8석을 안겼던 13%의 정당득표율에 비해, 민주노동당 5.7%, 진보신당 2.9%의 형편없는 성적이 이를 반증한다. 분당 악재, 대중적 인지도 부족 탓만으로 ‘잃어버린 반쪽’의 얼굴을 그릴 수 있을까.
‘종북주의’에서 ‘종북주의’로
진보정당 혁신은 대선 참패 이후 4개월 만에 돌아오는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문제는 혁신 논쟁의 발단도 ‘종북주의’였고 결말도 ‘종북주의’였다는 데 있다.
당내 평등파가 제기했던 ‘종북주의’ 문제의 핵심은 자주파 내 일부가 종북적 가치관에 따라 당내 다수 지위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심상정 비대위가 이를 ‘일심회 관련자 제명조치’와 ‘비례대표 전략공천’으로 정리하면서, 일심회 사건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찬성이냐 아니냐, 전략공천이 당원 피선거권에 위배되냐 아니냐로 논점이 흐려졌다.
심상정 비대위가 제출한 혁신안은 편향적 친북행위 규정 삭제 등 후퇴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내 금기시됐던 ‘종북주의’ 문제를 공론화시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주파가 혁신안을 거부하면서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에 갇히게 됐다. 두 개의 정당으로 갈라선 이후에도 ‘종북주의’를 둘러싼 날선 공방을 계속하면서 민주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진보신당도 ‘종북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배타적지지 문제 등 산적한 쟁점들은 부차화됐다. “당 위기의 본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라며 민주노동당으로도, 진보신당으로도 가지 않은 단병호 의원의 선택은 울림을 남겼다.
혁신은 없었다
민주노동당과는 다른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하겠다며 앞서 독자창당 깃발을 꽂은 신당파는 2월 3일 당대회를 기점으로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이 탈당하자 황급히 조직을 해산하고 외부 세력과의 창당 논의를 정리했다. 총선 전 창당이냐, 총선 후 창당이냐를 놓고 줄다리기 할 필요 없이 ‘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뒤늦게 조승수 전 의원이 “한국사회당과 초록당에 미안하다”고 멋쩍게 인사했다.
“진보신당이 왜 진보‘신’당인지 보여주는 증거(노회찬 공동대표)”라며 야심차게 밀었던 공약인 ‘사회연대전략’은 과거 민주노동당 내 평등파를 주축으로 추진됐던 사회연대전략의 확대복사판이다. 진보신당 측도 “진보신당은 진보의 혁신,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진보정당운동 1기의 미완의 과제인 사회연대전략을 본격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명시했다. “노동자 책임론이자 양보론” “노동자들끼리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라는 외부 비판에는 귀를 닫은 결과였다.
천영세 비대위를 출범시킨 민주노동당은 패권주의 해소 방안으로 ‘개방형 경선제’를 재추진할 예정이다.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에게도 피선거권을 허용해 “당원들이 똘똘 뭉쳐 당의 모든 결정권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제도적으로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파 양성화 정책 등 당내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제도 마련 없이, 당내 의사결정에서 비당원 비율을 높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총선 전략의 자승자박
지지율 반등의 별다른 모멘텀을 만들지 못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각각 ‘대중조직’과 ‘노회찬, 심상정 간판스타’를 내세워 선거운동을 해나갔다. 총선 결과만을 놓고 보면 ‘조직’의 민주노동당은 ‘인물’의 진보신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나 총선 전략이 양당 모두에게 되레 장애물이 됐다.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당’ ‘전농당’을 어떻게 벗어날지, 진보정당은 총선 후 실질적 창당 과정에서 ‘노심정당’을 어떻게 극복할 지가 과제로 남은 셈이다.
진보정당에게는 지난해 대선과 올해 총선, 두 번의 겨울이 찾아왔다. 이 겨울이 2년 뒤까지 이어질 지, 혹은 4년 뒤까지 이어질 지 알 수 없다. 다만 겨울이 길고 고될수록 다가오는 봄은 뜻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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