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원 AS기사는 ‘죄인’입니다

[감시 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8) :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삼성전자서비스센터 AS기사들이 악덕 소비자, 이른바 ‘블랙컨슈머’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며 의외로 밝게 웃는다.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고객만족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지언정, 한편의 코미디 같은 사연은 동료와의 수다에서 인기소재다. 업무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윗니가 내려앉은 AS기사들의 몇 안 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할머니 고객 집에 냉장고 수리를 2번 갔는데, 도둑놈으로 몰렸어요. 할머니가 본사 콜센터에 전화해서 냉동실에 있는 고춧가루, 냉장고 옆에 있던 음료수와 사탕, 할머니 속옷과 세제를 기사가 가져갔다고 항의한 거예요(웃음). 할머니가 며칠 있다 콜센터에 또 전화해서 ‘옷은 찾았으니 나머지는 가져다놓으라’고 했어요. 웃으며 넘겼지만 증명할 방법도 없고, 도둑놈 취급 받아 기분이 상했죠”

“취미가 인터넷 고스톱이었던 고객 집에 수리하러 갔는데, 고객이 고스톱 아바타 옷을 사달라고 하더군요. 다음날에 또 전화해 아바타 옷이 벗겨졌다고 했어요(웃음). 아바타 옷 사 입히고, 장갑도 사주고 7~8번은 방문한 것 같아요. 나중에 ‘저는 고객의 단독 AS기사가 아니다’고 말했죠. 고객이 독거노인 같아 마음이 짠했죠. 하지만 고객 항의가 기사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하죠”


그렇게 웃다가도 AS기사들은 자신이 아바타보다도 못한 것 같다며 고개를 숙인다. 친구들이 ‘넥타이 맨 거지’라고 불러도 술값 계산 한 번 시원하게 못하는 자신에게 속상하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두툼한 월급봉투 건네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객의 소리(VOC)’에 불만이 접수돼 회사가 추궁해도 사표 던지고 나오지 못하는 구질한 삶에 절망한다. 업무능력 차이가 아니라 단지 하청업체(협력업체) AS직원이라는 이유로 본사 직원과 비교하면 어디 가서 ‘삼성 다닌다’고 말도 못한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직원’으로 살며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없는 이들, 감정노동자 AS기사 김배성, 김용구, 이학빈, 정우형 씨는 자신을 ‘죄인’이라 부른다.

코털이 삐져나왔다고 불만족, 손톱이 길다고 불만족
“고객과 회사에 심하게 치이면 한달 씩 마음을 추스른다”
한도 끝도 없는 사연...“33살 최종범은 어땠겠습니까”


청소기 수리하러 갔다 30분 동안 멱살 잡혀 나오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닌’ 사연, 고객에게 맞아 코피가 난 사연, 고객 말에 토 단다고 쌍욕과 고성이 날아온 사연, 술 취한 고객의 부부싸움에 끼여 와이셔츠 단추 다 뜯기고 제품수리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술 깬 고객이 ‘제품도 고치지 않고 그냥 갔다’며 욕설을 퍼부은 사연, 한도 끝도 없다.

여름철 성수기엔 서러움이 밀려온다. 일부 고객은 땀에 흠뻑 젖은 AS기사에게 ‘냄새나는 직원 보내 불편했다’며 ‘불만족’을 준다. AS기사들은 하다못해 코털이 삐져나왔다고 불만족, 눈곱이 꼈다며 불만족, 손톱이 길다고 불만족, 못 생긴 기사가 왔다고 불만족, ‘소도둑놈처럼 생긴 사람이 수리하러 와서 위압감을 받았다’며 불만족을 준 사례도 있다고 토로했다.

“여기저기 이동하며 정신없이 제품 수리하는데, 씻고 다닐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회사가 샤워실과 휴게실을 마련해 놓은 것도 아니잖아요. 특히 제품 수리하러 갔는데, 하필 다른 부위가 고장 나 있는 경우가 있어요. 고객은 ‘당신이 만져서 고장 냈다’고 항의하죠. 전혀 관계 없는 부속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수리하다 고장 내고, 거짓말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VOC처리되기 때문이죠. 고객과 회사에 심하게 치이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한 달씩 마음을 추스르지 못합니다. 일하기 싫어지죠. 우리는 무조건 죄인이에요. VOC 들어오면 고객에게 재방문하거나 사유서를 쓰죠. 재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를 남겨야합니다”

AS기사들이 ‘오지’라 부르는 ‘5지역(충남 천안 병천, 수신, 성남면)’은 서민들이 사는 동네다. 이 지역 담당 기사는 고객에서 수리비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다. 기사들은 부촌에서 수리할 때와 다르게, 서민들이 사는 곳에 가면 마음이 약해진단다. 고객 수리비를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에 입금하지 못하면 기사 월급에서 공제된다.

기사 들은 또한 “선생님, 교수님 고객 자택에 방문하는 일이 예상외로 힘들다”며 웃는다. 제품 고장 원인을 차근차근 설명해 줘야 하는데, 일부 고객은 ‘리포트를 써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기사들은 기술적인 고장 원인을 고객이 100%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며 “우리가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참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동료 중에 나이가 많은 형님이 있어요. 고객이 그 형에게 전화로 항의하고 욕하다가, 막상 대면하면 나이가 많으니까 움찔하면서 조심한데요. 형은 가끔 우리에게 ‘내가 이 나이에도 XX 욕먹고 돌아다녀야 하냐’고 툭 던지죠. 그런데 33살 최종범은 어땠겠습니까. 누구 하나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A/S기사 최종범 열사는 협력업체인 삼성티에스피 이제근 사장으로부터 지난 9월 심한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 VOC에 불만사항이 접수됐다고 인격모독을 당했다. 고객은 냉장고를 수리할 때 손을 허리에 올리거나, 제품을 설명 할 때 ‘짝다리’를 짚었다며 최 씨에게 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협력사 사장은 4분여에 이르는 전화통화에서 ‘임마’, ‘새끼야’라고 최 씨에게 퍼부었다. 불만을 접수한 고객에 대해서도 ‘고객을 잡으려면 개 같이 잡아버리던지’, ‘칼로 찔러서 죽여 버리던지’ 등 막말을 했다. 인간의 존엄함은 한 순간에 파괴됐다.


회사 평가 때마다 ‘기분 더럽다’...‘주체할 수 없는’ 평가항목
회사의 일관되지 않은 평가제도로 블랙컨슈머가 대접받는 모순


‘친절’ 이미지와 태도는 AS기사에게 생존권이다. 회사는 각종 평가 제도로 AS기사에게 친절을 강요한다. 삼성전자서비스 고객응대 매뉴얼(MOT)은 일종의 AS기사 행동 강령이다. 외근기사의 경우 명함전달, 복장, 공손한 자세, 원인결과설명, 철저한 시간 준수, 눈 마주치며 인사 등 12~18가지다. 기사들은 매뉴얼을 숙지하고 그대로 일해야 한다.

MOT를 기준으로 고객에게 만족도를 묻는 삼성전자서비스 ‘해피콜’에서 10점(매우만족)이 아닌 8점(만족) 이하가 하나라도 발생하면 노동자들은 대책서를 쓴다. 노동자들은 진상 고객에 대한 방어권도 없는데다 해피콜을 기준으로 실적을 압박하는 회사의 통제 정책에 시달린다.


일례로, AS기사는 고객미수금을 ‘친절’하게 받아내기 위해 자존심을 누르고 불합리한 것에 반박할 수 없다. 회사는 이를 활용해 고객미수금을 AS기사에게 전가한다. AS기사는 15분 제품설명에 15분 수리해 모두 30분가량 일해도, 손실을 최소하기 위해 제품설명 15분 동안의 무임금을 감수한다. 건당 수수료로 처리하는 부당한 임금체계에 항의할 수 없다. 권력에 순응하는 습성이 구조화된다.

“친절이 몸에 배었어요. 부담스럽습니다. 본사에서 고객 만족(CS)교육할 때 목소리 톤도 ‘솔’ 톤으로 하라고 해요. 평소 말할 때와 고객 응대하는 목소리가 180도 달라지고, 상전 모시듯 전화통화 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한 시간 동안 수리하고, 30분 동안 고객과 실랑이하고, 회사에서 대책서 쓰라고 하면 온 몸에 힘이 쫙 빠져요”


AS기사들은 평가 받을 때마다 ‘기분 더럽다’고 말했다. 강요된 평가는 그 자체로 불편하다. 또한 평가 항목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평가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CS, MOT, 미결율 등 총체적 평가인 TQI수당을 받으려면 모든 항목에서 95~97점 이상 받아야 합니다. 완벽하게 일해도 TQI수당 받기 힘들어요. 불가능한 수당이죠. 사실상 회사가 AS기사에게 부정, 부실을 저지르라고 강요하는 겁니다. 만일 TQI수당을 받았다면, 해당 기사는 매달, 매년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게 됩니다. 숨이 막혀 못 사는 거죠. TQI수당은 월 10~60만 원가량인데, 60만원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특히 회사는 일관되지 않은 평가제도로 노동자를 숨 막히게 한다. 일례로, 회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스(LOSS, 제품 미수리)건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의 월급인 수수료로 책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7월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설립되자 회사는 최근 로스 1건당 7300원으로 건당 수수료를 올렸다.

회사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로스 건을 최대한 줄이라면서도, 고객의 항의가 극심해지면 로스 건으로 처리하라고 한다. 블랙건슈머가 대접받고, 화이트건슈머(선량한 고객을 뜻함)가 손해 보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다.

“회사는 로스 율이 높으면 안 된다며, 고객에게 그때그때 수리비를 받으라고 했요. 하지만 어떤 날은 로스로 처리하라고 해요. AS기사들이 확실하게 정리해달라고 해도 회사는 하지 않아요”

본사 직원 연봉제, 하청 직원 건당수수료...하청 직원이 뒷감당
이중‘위장’도급으로 본사, 협력사 불리하면 빠져...책임은 누가?


AS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 정규직 AS기사와 하청업체 비정규직 AS기사 간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만일 본사 직원이 제품을 미흡하게 수리했다면, 뒷감당은 해당 지역 하청업체 직원이 해야 한다. 본사 직원은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가 아니라 연봉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품 미수리 건에 대한 부담이 적다.

“본사 직원은 고객이 과도한 비용을 부담하는 수리를 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같은 고객 집에 2~3번 방문할 경우, 본사 직원이 먼저 왔다 일처리를 하지 않고 가면, 우리가 제품교환, 수리비용을 고객에게 청구하죠. 그러면 고객은 우리에게 ‘도둑놈’이라고 화내면서 본사 직원을 부르겠다고 합니다. 규정은 삼성전자서비스 본사에서 모두 만들어놓고, 삼성 직원이 아니라고 내쳐진 우리가 고객에게 욕 먹어가며 수리비까지 받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름 성수기에 본사 인력이 들어와요. 우리가 300만원 받으면 본사 직원은 600만원~1천만 원가량 받습니다. 성수기가 지나 본사 직원이 빠지면 협력사 직원이 욕먹으며 뒷감당하죠”


대부분의 고객은 AS기사가 삼정전자 소속인 줄 알지만, 서비스체계를 아는 일부 고객은 본사와 하청업체의 차이를 알고 있단다. 이 고객은 ‘본사 직원이 더 믿음직스럽다’는 근거로 하청업체 직원을 배제한다. AS기사 90%이상이 하청업체 직원이고, 전국 7개 센터만 본사 직원이 일한다고 말하면 고객이 놀란단다.

삼성전자서비스 본사는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하청업체 AS기사 교육 당시, ‘고객 신뢰’를 위해 ‘삼성전자 직원’이라고 말하라고 했단다. 본사 관리자가 직접 내려와 하청업체 직원들은 관리했다. 하청업체 사장도 불리하면 업무에서 빠진다.

“당시 본사 김00 센터장은 천안 쌍용센터 지하 창고로 우리를 모두 불러 30분에서 1시간가량 설교했어요”

“천안센터 이재근 사장은 고객과 마찰로 기사와 전화 통화할 때, ‘사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센터 ‘소장’이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사장이라고 부르면 고객이 협력사로 직접 크레임을 걸기 때문이죠. 자기가 불리하면 쏙 빠지는 거예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거죠”



성격, 모습, 관계 모든 것 변해...무엇이 남았나
삼성 하청노동자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다


그러는 사이 AS기사들은 성격, 모습, 관계 등 모든 것이 변했다고 했다. 삼성전자 직원도 아니면서 삼성 제품을 수리하는 동안,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남았는지 의문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친절한 기사’는 온데간데없다. 가까운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풀고, 뒤돌아서 자학하게 된다.

“어머니에게 짜증을 많이 내요.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심지어 삼성전자 세탁기가 고장 났는데, 고치기 싫어요. 냉장이 안 된다고 하는 데, 결빙 한 번 하기 싫어요. 집에서는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요”

“결혼 초기에 아내와 많이 싸웠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늘 크레임이 많아 상태가 좋지 않다’고 미리 말하고, 아내에게 양해를 구해요. 스트레스 조절이 안 되는 거죠”


사회적인 관계의 폭도 좁아졌다. 삼성전자의 이중하청구조와 AS업무 특성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동료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시간 저임금으로 옛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술값을 감당하기 벅차 일부러 친구들을 피하기도 했단다.

“생활이 일정하지 않잖아요. 언론보도를 보면, AS기사들이 성수기 때 몇 개월 돈 벌어 빚 갚는다고 하는데, 빚을 갚으면 다행이죠. 못 갚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40대 우리 친구들은 회사 간부이거나 장사를 하죠. 우리는 아직도 신입사원 월급을 받아요. 업무성취감이 없죠. 운전 실력과 ‘말빨’만 느는 거예요”

요즘 AS기사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최종범 열사와 함께 투쟁에 나서면서, 삼성전자서비스센터 AS기사의 현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그러면서 ‘딸아이가 아빠 의 직업을 쑥스럽게 생각’하기도 했고, 아내 친구들이 전화해 ‘형부 이제 어떻게?’라며 걱정한단다. 그야말로 홀딱 벗게 되면서, AS기사들은 하청노동자로서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삼성 직원’이라면 대접받는 세상을 의식하기보다, 솔직한 모습으로 AS기사의 삶을 바꾸는 길을 선택했다. 평범한 서민으로 조용히 살긴 글렀다고 너털웃음 지으면서도, 진짜 삶이 무엇인지 깨달은 이들이 벼랑 끝에서 손 내밀고 있다.

“하청 직원이 창피하니까 삼성전자 정규직이라고 말했죠. 이번 일로 장모님이 한걱정 담긴 목소리로 전화했어요. 따뜻한 말에, 떳떳하게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하청직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돌아보면 내 삶에 솔직하지 못했죠. 우리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면, 누가 우리를 돌아보겠습니다. 국민에게도 솔직하게 다가가 반드시 최종범 열사 좋은 곳 보내고, 우리 삶을 바꿀 겁니다”


<연재 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 이 기획은 뉴스민, 뉴스셀, 미디어충청, 울산저널, 참세상, 참소리 공동기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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