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기자는 아니구요. 참세상에 글을 쓰고 있는데요.”
“글을 쓰신다구요? 긴급 특종이 있는데, 취재하러 와주셨으면 해서요.”
지난주 토요일 자정을 한 시간 정도 남겨둔 시간 전화를 받았다. 용산경찰서 앞으로 취재를 와달라는 노동해방철거민연대(이하 ‘철거민연대’) 간부의 전화였다. 약간의 고민 후 길을 나선다. 취재를 간 것이 ‘긴급 특종’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투쟁현장에서 생기는 ‘특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곳에서 발생하는 특종의 많은 부분이 위험하거나 참혹한 것이기 때문이다.
▲ 9월15일밤 용산경찰서 앞 |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용산경찰서 앞에 도착하니 엠블런스 두 대와 경찰차 한 대가 경찰서 앞에 세워져 있었다. 경찰서 입구에는 이들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트가 쳐져있고, 그 너머에 전경들이 서있다. 전화로 간략한 설명을 들었으나 상황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에서 철거민 분들을 종종 뵙는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한 번도 이들의 투쟁 현장에 취재를 간적도, 진심으로 상황을 듣고자 한 적도 없없다.
엠블런스와 경찰차 안에는 단식 22일 째인 용산동 5가 세입자 3분이 타고 계시다 한다. 세 분 모두 환갑이 지난 분들이다. 개발구역 앞 공원 천막을 강제철거 당하고, 올해 1월 1일부터 용산구청 앞에서 노숙투쟁을 시작했다. 추운 겨울에 시작한 노숙투쟁이 250일을 넘기고, 그 사이 계절은 3번 바뀌었다. 그러나 용산구청 측은 60대 노인들의 주거대책은커녕 생필품과 시위용품, 덮고 자는 비닐을 빼앗아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지난 8월 24일에는 취사도구와 쌀마저 빼앗아가 세입자들은 타의에 의한 단식노숙농성을 하게 된 것이다.
▲ 구급차 안에 누워있는 단식중인 세입자 |
구청 측에서는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이주비를 받고 이주를 완료한 상태에서 현재 농성 중인 세입자들이 임대아파트를 거부하며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단식농성중인 세입자들은 이주비를 받고 떠난 세입자들의 경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고, 임대아파트를 약속 받고 투쟁을 정리한 세입자들의 경우도 이를 공문화 하지 않아 법률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살고 있지 못한 현실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농성 중인 세입자들은 임대주택 입주 문제의 공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이에 관한 논의를 위해 5자 협상(구청, 재개발조합, 시행사. 경찰서, 세입자 측)을 요구하고 있다. 세입자들은 대화라도 한 번 해보았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거라며 무엇보다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8월 24일 이후, 용산구청 측이 용역들을 동원해 단식 노숙농성 중인 세입자들을 인근에 집어던지고, 세입자들이 다시 구청 앞으로 오는 일이 이십여 차례나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엠블런스에 태워 청량리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려했는가 하면, 용산구청 직원들의 지휘 하에 ‘고엽제전우회’ 옷을 입은 이들과 수십 명의 용역들이 단식 중인 세입자들을 도로에 패대기치자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세입자들을 연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석방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유현미 용산동5가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다시 구속되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토요일(9월 15일)에는 용산경찰서에서 3명의 세입자를 부랑자를 수용하는 시설에 넣으려했다. 이를 확인한 철거민연대의 대응으로 세입자를 실은 차량이 다시 용산경찰서로 오게 된 거라 한다.
철거민연대 간부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사이, 오창익 인권실천연대 사무국장이 용산경찰서 측과 협의를 하고 나왔다. 철거민연대 회원들은 경찰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고, 상황실장이 나와서 공개사과 하기로 했단다. 잠시 후, 상황실장과 경찰 1명이 밖으로 나왔다.
▲ 용산경찰서 측에서 사과하는 장면 |
“부랑자 수용소인지 모르고 보냈습니까?”
“우린 그런 뜻이 없었습니다.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용산구청에서 협조가 없어 시청 당직실에 하루라도 편히 쉴 수 있는 데가 어디냐고 물어봐서 가게된 겁니다.”
“여기 있는 동지들이 보호자인줄 알죠? 그런데도 병력을 동원해서 우리를 분리시키려고 했잖아요.”
용산경찰서 상황실장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고, 오창익 사무국장이 속내는 모르겠으나 나름 하려고는 했는데, 당사자가 모멸감을 느꼈으니 사과하라고 이야기 한다.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유감이 뭐요? 정치인이요?”
“실수한 것 같습니다.”
“죄송하면 죄송한 거지.”
“김○○씨나 다친 분들에 대해 미안합니다.”
상황실장의 사과로 이 날 용산경찰서 건이 마무리되고, 세 명의 단식자를 태운 차량은 다시 용산구청 앞으로 이동했다.
용산구청 주변은 정말이지 심란하기 이를 데 없다.
“세입자가 아무리 떼를 써도 구청은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는 현수막에 집회와 노숙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용산구청 앞과 인도에까지 화분들을 갖다놓고 길에다가 말뚝까지 박아놓았다. 구청에서 갖다놓은 화분 때문에 인도는 사람 1명이 겨우 오고갈 수 있는 공간 밖에 되지 않는다.
용산구청은 편히 쉴 방 한 칸 없는 세입자들이 구청에 들어올 때마다 10만 원 씩의 벌금을 물린다. 엄연히 용산구 구민인 세입자들에게 말이다. 지난해, 박장규 용산구청장이 재개발 관련 18억 뇌물수수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되었는데, 용산구청은 이 사실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세입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저건 집 한 채 값이래요.”
한 회원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커다란 광고판이 보인다.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하오니 제발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용산구”
얼마 전, 용산구청에서 달았다는 그 광고판은 수 천 만원은 될 거라 한다.
“구청 앞이 편해.”
맨바닥에 요 한 장 깔고 자리를 잡은 세입자 한분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처음으로 입을 연다.
“아무래도 구청장이 구청 옆에다 뭘 지어줘야겠어.”
“오늘 밤에 비 온다던데.”
최소 인원만 남기고, 용산구청 앞을 떠나는 이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