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갔다.
뉴스를 보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대통령까지 해도 저렇게 끝이 안 좋으니...... 그냥 변호사까지만 했으면 이런 일은 안 당했을 텐데......"
나도 말했다.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가 봤지만 저렇게 죽었는데...... 저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지금껏 누가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본 적이 한번도 없다. 겨레붙이 몇몇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정이 없어서 그랬을까?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도 없었고 두고두고 떠올릴 만한 추억도 없었다. 조금 우울해졌을 뿐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제삿날이 돌아와도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엎디어 절을 할 뿐이다.
자기 몸을 불살라 버린 노동자와 전경에게 두들겨 맞아 세상을 떠난 농민을 보면서도 나는 화를 냈을지언정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뭔가가 되게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때문에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왈칵 터져 나온 적은 없었다. 저런 일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거듭 곱씹었지만 그 마음은 글을 쓰거나 현장에 간다거나 하는 행동으로만 나타났을 뿐 나를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워낙 그랬던 나였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슴이 뭉클하거나 콧등이 찡했을 리가 없다. 조금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그 정도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숨가쁘게 몰아칠 것이 뻔한 정세를 더듬어 보느라 그저 머릿속만 바쁘게 움직일 따름이었다. 추모 집회가 반정부 집회로 이어질 수 있을지, 곧 다가올 6월에 또 다른 촛불 집회가 열릴 수 있을지, 이명박 정권은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실 내게 굉장히 안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이라크 파병, 목 잘려 죽은 김선일 씨,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한미 FTA, 비정규직법, 허세욱 열사와 하중근 열사,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진보'를 마구잡이로 팔아먹은 열린우리당까지.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서 말 한번 섞어 보지 못했는데 왜 이리 내 기억 속에는 그가 고약하고 못된 사람으로 남아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여당에서 쏟아낸 무시무시한 정책들은 그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분명 밑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가 뭐든지 맨 마지막에 매듭을 짓는 이른바 '최종 결정권자'이기 때문일까? 신자유주의 정부를 대표하는 우두머리이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가 대통령 노릇을 하던 시절 나는 그를 꽤나 미워했고 거리에 나가서도 “정권 퇴진”을 서슴없이 외치고 다녔다.
용산 철거민들이 생목숨을 빼앗긴 지 이제 겨우 계절 하나가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이 목을 매 세상을 등졌다. 용산 철거민 분들 소식을 전하면 신문이 잘 팔리고 TV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 생각했는지 언론들은 무서우리만큼 게걸스럽게 '용산 참사'를 다루고 또 다루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하다가 죽었다더라, 에서 그쳤을 뿐 사람이 죽어 나간 까닭이나 경찰이 저지른 살인 진압에 대해서는 올곧게 입을 닫고 등을 돌렸다. 지금은 몇몇 인터넷 신문들을 빼고 나면 아무도 용산 살인 진압을 다루지 않는다. 박종태 열사는 지금껏 노동 현장에서 죽어 나간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도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언론들에게 송두리째 버림 받았다. 용산 철거민 분들이든 박종태 열사든 누가 어떻게 장례를 치러 주는지 언론도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이번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인터넷 포탈 사이트들은 알록달록하던 첫 화면을 회색으로 바꾸고 국화꽃을 그려 넣었다. 추모 게시판까지 따로 만들어 두었다. TV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분향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푸 보여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한 땅에 이렇게나 많았는지 나는 처음 알았다.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른다고 했다. 국민장이 뭔가 했더니 독재자 박정희가 죽고 나서 있었던 '국장'과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국장은 국가가 모든 장례값을 내고 아흐레동안 치러지며 사람들은 일을 나가지 않고 쉰다고 했다. 국민장은 국가가 장례값을 어느 정도만 내고 이레동안 휴일 없이 치른다고 했다. 아흐레든 이레든 성대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슨 잘못을 했든 목숨 하나가 세상을 버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자살이다. 스스로 몸을 던진 죽음이다. 어느 신문 사설을 보니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데리고 수사를 하면서 그가 마음 상하도록 일부러 얄밉게 대접한 것도 있다 하니 그 사설을 믿고 조금 부풀려 말하자면 검찰이 그가 죽게끔 등을 떠밀어 버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물론 그가 죽기를 바랄 만큼 그를 심하게 미워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를 제대로 미워할 수 있을 만큼 그를 잘 알지도 못했다. 그가 우두머리로 있던 집단이 정책이랍시고 만들어 내놓은 것들을 싫어했을 뿐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인간을 증오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미워하는 것도 그것에 대해 뭘 좀 알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불편했다. '사망'을 '서거'라는 말로 바꾸라고 점잖게 또는 열에 들뜬 듯 나무라는 사람들도(아니 사람 목숨값이 다 똑같지 서거는 무슨 서거야?), 벌건 대낮에 공안 탄압이 버젓이 벌어져도 느긋이 자기 밥벌이만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고 나자 그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치켜세우는 것도(입으로만 민주주의 어쩌고 읊어 대는 거 누가 못하냐?), 돌림병처럼 모든 언론을 집어삼켜 버린 '서거' 소식들도(너네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싸고 돌았냐? 검찰이 흘리는 혐의들을 매일매일 대문짝만 하게 싣더니만!), 여전히 외면 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싸움도(어쩌면 머지 않아 쌍용차 평택 공장에서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과 김대중이 전직 대통령이랍시고 한 마디씩 하는 것도(늬들도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어차피 가난한 사람들의 편은 아니었잖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옛 모습들이 담긴 영상을 얼기설기 급히 편집해 '일대기'라는 딱지를 붙이고 보여주는 것도(얼마 있으면 그의 온 삶을 다룬 두터운 책들이 서점에 쏟아져 나오겠구나!), 대통령이 무슨 지체 높은 귀족 신분이라도 되는지 이레동안 엄청난 돈 들여 가며 호화롭게 장례를 치러 주는 것도(그것도 혹시 일자리 창출이냐? 시골에 내려가 수수하게 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 비싼 장례식을 바라고 죽었을까?), 그를 막다른 곳으로까지 몰아붙인 검찰 위에는 이명박 정권이 버티고 있었다는 것도(전직 대통령 비리 수사인데 과연 청와대가 뒷짐 지고 가만히 있었을까?),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하던 시절에 죽어간 노동자들과 농민들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는 것도(지금 이야기하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추모 분위기 속에서 맞아 죽을 것 같아서 그러지?) 나는 몹시 불편했다.
대통령 노릇하던 시절 제도권 정치라는 틀 안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보다 더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가깝도록 바꾸어 보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애면글면 노력했다는 사실은 나도 안다. 정치 평론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얘기하듯 ‘진보’와 ‘보수’ 사이에 끼어서 그의 지지율이 바닥을 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사람 한 명 죽었다고 이라크에서 군대를 철수합니까?”라고 거리낌 없이 내뱉는 사람을 일꾼으로 썼던 어쩔 수 없는 친미 정권이었고 지금까지의 정권들 가운데 가장 많은 1000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구속해 감방에 처넣은 어쩔 수 없는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다. 한미 FTA를 밀어붙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농민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정권이었고 평택 대추리에 더러운 미군 기지를 옮겨 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살림터를 짓부수어 버린 정권이었다.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부자 신문사들과 맞대거리를 했다거나 남한과 북한 사이가 조금 더 살가워지도록 했다는 점들도 떠오르지만 그런 것들을 헤아린다고 해도 어쨌든 노무현 정권은 지금까지 남한 땅에 들어선 다른 정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편을 들지 않는 정권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세상을 버리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가 쓸쓸히 죽었다고 해서 내 생각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노무현 정권 때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들의 원혼이 무섭기 때문이고, 유가족들이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다 노무현 잘못이야?”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물론 나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전경 하나가 집회 현장에서 농민을 때려죽였다면 그 잘못은 전경에게만 있을까, 아니면 그 위로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너도 나도 이명박 대통령 욕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 버린 요즘에는 남한에서 가장 힘센 권력을 잡고 있는 대통령에게 무작정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것에 사람들이 그리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많고 많은 나랏일을 대통령 혼자서 해 나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모든 일에 마지막 결재 도장을 찍는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버릇처럼 대통령의 이름을 들먹이며 왜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따지는 것이 과연 과녁의 한가운데를 제대로 꿰뚫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새로운 공안 탄압이 풍선처럼 빵빵 터지고 있는 요즈음의 책임을 송두리째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노무현 정권 때 이 땅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누가 목숨을 빼앗겼고 누가 가족을 잃었으며 누가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모든 사실을 알았다면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들이대었던 것과 똑같은 잣대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착잡하다. 속이 꼬인다. 나는 용산 철거민들과 박종태 열사에게도 국민장을 치러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을 위한 국민장을 취소하라는 것도 아니다. 사실 나는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촛불을 훅 불어 끄듯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에 온 나라 사람들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눈물을 흘리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나는 좀 불편할 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불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시작했다. 정말 이명박 정권이 앙갚음을 하려고 죄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누어 수사를 한 것인지 아니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은 뒷돈인 줄 알면서도 가족들을 통해 돈을 받아 챙긴 것인지 나는 모른다. 물론 살살 조롱하듯 질질 끌어 가던 검찰 수사를 견디지 못해 그가 자살한 것이 맞다면 그 지점은 ‘인권 침해’라는 차원에서 다시 수사해 진실을 샅샅이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노무현 정권이 저지른 숱한 잘못들까지 모조리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상황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막말을 좀 더 해 보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박정희와 맞섰던 장준하 역시 산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을 들먹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설레발치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진실이 무언지 밝혀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사람 목숨값이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로 갈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이레동안이나 치르는 국민장이라니.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빈틈없이 가려진 채 쉽게 잊혀지는데...... 이래서 나이 잡술 만큼 잡순 정치인들이 아등바등 대통령을 꼭 한번은 해 먹고 죽으려 할까?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시골로 내려가 살던 노무현 전 대통령. 나는 그때 구멍가게 안에서 허름한 점퍼를 입은 채 담배 물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노동자 농민 다 죽이던 사람이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눈 가리고 아웅이냐고 욕설을 퍼부었다. 봉하 마을에서 흘러나온 사진 몇 장 때문에 순식간에 ‘서민적’인 전직 대통령이 되어 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는 불편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임기 마친 뒤에 얼마나 돈독이 오른 모습을 보여주었길래 그저 자기 고향에 내려가 사는 것뿐인 그를 보고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을까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검찰 수사에 들볶이다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제는 그가 불쌍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민주주의의 죽음’이라 부르겠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또 다시 불편했다. 그렇게 따지면 민주주의는 해방 이후 이 땅에서 수천 번 수만 번은 죽었다. 정말 끝이 나지 않는 이 불편함. 국가 권력이라는 것은 내 입맛에는 통 맞지 않는 모양이다.
‘자연인 노무현’이었다니 그를 보낼 때도 그냥 자연인으로 소박하게 보내 주면 안 되나? 벌써부터 ‘노무현 열사’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도 나는 불편하다.
어찌 되었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기어코 살아가야 한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내게는 그저 현 정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혹만 남긴 답답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오히려 나는 노무현 정권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이 이대로 오래도록 묻혀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더 슬프다.
하지만 이 더러운 세상에 등 돌리고 미움도 다툼도 죽임도 없는 나라에 다다랐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말에 인색한 나일지라도 이 한 마디는 해야겠다. 편히 잠드시라. 나머지는 산 사람들끼리 알아서 할 테니.
이 글에서는 일부러 높임말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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