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서한] 금융노조 양병민 위원장과 대의원들에게

"비정규직은 방패막이가 아니라 똑같은 노동자, 다시한번 자각하시길"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공문과 질의서를 보냈지만 의도적인 침묵만이 되돌아오기에 이렇게 공개서한을 보냅니다.

50년 역사의 금융노조는 올해초 규약을 축소변경했습니다. 그동안은 규약에 따라 재직자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에 종사했던 경력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었지만 이번에 변경된 규약은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자’로 그 범위가 축소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비정규직 조합원 45명중 경력자 34명이 아무런 경과조치도 없이 조합원자격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은 소위 회전문 효과에 갇혀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러한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조합원의 가입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노조탄압과 규약개정 요구에 화답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며, 청와대 노사담당비서관이 금융노조 출신인 점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산별노조는 사용자와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없어도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노동조합입니다. 따라서 이번 금융노조의 규약축소는 스스로 산별노조임을 포기한 것이며, 노동자가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양병민 위원장과 대의원들께서는 다시 한 번 숙고하시기 바랍니다.

금융노조의 한 간부는 이번 규약축소 의미가 정규직조합원이 퇴직하면 비조합원이 되는 현실과는 달리 비정규직 조합원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형평을 맞추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치한 변명입니다.

오히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혜택을 조합으로부터 받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정규직 경력자이든 비정규직 경력자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원한다면 퇴직 후에도 조합원으로 남을 수 있어야 산별노조입니다. 2008년 금융노조 위원장 선거때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있었던 점을 굳이 상기시켜 드리지 않아도 비정규직 조합원이 더 많은 혜택을 조합으로부터 받을 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시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들이 많은 금융권의 특성을 무시하고,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비정규직의 특성까지 무시하면서,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위해 ‘노동자는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얼마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으로부터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사용자는 말 할 것도 없고,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조합도 1사 1노조 원칙을 가지고 있는 금속노조의 방침과는 달리 아직까지 이들을 똑같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많겠지만 노동조합운동은 정치와는 달리 그 명분을 잃으면 스스로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다르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운동이 자신을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들과 무차별적으로 함께하자는 전태일적 생각인 것과는 달리 작금의 노동조합운동은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생각하지 말고, 너와 내가 똑같은 노동자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금융노조가 부디 명분을 잃지 말고 우리사회의 거대 노동조합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비정규직지부는 재직자가 살아남기 위해 비정규직 경력자를 버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직도 대화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 편지가 마지막이 아니기를 온몸 온맘으로 전합니다.
덧붙이는 말

차윤석님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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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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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패막이???

    차 지부장님... 조직활동을 안하시나요. 금융권에 비정규직이 꽤 많은데 조직활동 좀 하세요. 조합원이 고작 45명입니까. 제가 지부장이라면, 쪽 팔려서 사퇴하겠습니다. 물로, 사심없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압니다. 그런데, 양병민 금융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과거 금융권에서 노동운동 및 노동조합운동을 했던 분들은 80~90년대 변혁을 고민하며 어용노조를 깼던 장본인들입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합병과정에서 금융노조는 총파업까지 했었죠. 지금 금융노조에는 당시 산별 출범과 총파업의 주역들이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의원들 중에도 많이 남아 있죠.

    좀 더 솔직해 집시다. 남한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답인지 진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지요. 금융노조의 경우 무기계약직 전환, 사실은 반정규직의 방법을 선택했죠. 금융노조가 비정규 노동자를 착취하고 방패막이로 삼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금융자본, 더 넓게는 정권과 자본이 비정규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습니까. 물론, 정규직노조가 비정규노동자의 처우개선에 좀 더 적극적이면 좋겠죠. 그리고 금융노조가 더 적극적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넘어 정규직전환,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까지 가면 좋겠죠. 이를 위해 파업의 배수진을 치고 정권과 자본과 맞짱뜨면 더 좋겠죠. 그런데, 그래도 남한사회에서 양심적인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을 하는 분들이 아직은 금융노조를 중심으로 많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은 없이 자본주의 태내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는 주장이 나이브한 주장이듯이 금융노조 위원장과 대의원들이 규약을 축소한 것을 놓고 방패막이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금융노조에 몸담고 있는 분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금융노조에 몸담고 있는 간부들과 대의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 분들이 비정규 노동자를 방패막이로 삼고 있고 똑같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로 한번 물어보시고 이런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금융노조 양병민 위원장과 대의원들에게 이런 형편없는 공개서한을 띄울게 아니라, 정권과 자본을 향해 부서지더라도 부딪쳐보시길 기원합니다.

    같은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을 하는 사람끼리 서로 논쟁과 토론의 과정은 생략된채, 치고박고 서로 헐뜯는 몹쓸 짓은 이제 그만들 합시다.

    그리고

    과거 은행권의 어용노조를 깨부수고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밤새 자기돈 써가며 영업점 직원들을 조직하고, 해고될 각오를 하고 경영진과 자본을 비판하는 글을 뿌려댔던 그 금융노조 및 대의원동지들입니다.

    차 지부장님이 적어도 금융노동자들의 '동지'라면 이런식의 글은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선배들이 공문과 서한으로 운동을 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꼭 이렇게 공개서한 이란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하소연 할데가 없었다는 변명은 하지 마시고 금융노조 및 대의원동지들과 떳떳하고 자신있게 토론하면서 상황을 돌파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 차윤석

    방패막이님 뼈아픈 조언 잘 들었습니다. 저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노조중에 저처럼 전임자(노조에서 월급나오는) 아니면서 조합원이 45명 넘는 곳이 몇곳이나 되는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조합원수는 제가 지부장된뒤로 2배 늘어난 겁니다. 사실 저 먹고 살기도 바쁘거든요. 떳떳하게 토론하라고요? 아무 대답도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토론하라는 말씀이신지요.
    금융노조에 대해 잘 아시는 분 같습니다. 그렇다면 금융노조규약에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모두 입사와 동시에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그런데 왜 비정규직에게는 그렇게 적용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규약에 대해 금융노조에 물었더니 묵묵부답이더군요.
    저를 잘 아시는 분 같은데요. 연락주세요. 제가 떳떳해지도록 도와주십시요. 저 그렇게 꽉 막힌 사람아닙니다. 혹시 한쪽 이야기만 듣고 댓글을 쓰신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시기바랍니다.
    chabrothers@gmail.com

  • 박완섭

    과거에 어떤 운동을 했던 현재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던 조합은 더 많은 노동자를 노동조합에 참여하게 하는것이지 소수의 노동자를 배제하는 노동정책은
    노동노합이 할일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규약을 변경하면서 까지
    조합원 자격을 배제하는 하는 것은 노동조합으로 있을 수 없는 파렴치범들의 행위일뿐입니다

  • 차윤석

    방패막이님께. 오늘 인권위가 해고자,실업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면서 잘못된 노조법조항들을 삭제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이는 제가 주장한 비정규직퇴직자들도 당연히 조합원이라는 주장과 일치합니다. 레디앙기사를 참고하세요.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309
    원하시는 분은 인권위 결정문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chabrothers@gmail.com

  • 방패막이???

    차윤석 동지께

    제가 17일에 썻던 글에 일부 감정적인 부분이 녹아 있었던 점은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자'로 금융노조 규약이 그 범위가 축소되었다고 말씀하시고 있는바, 이렇게 규약이 되어 있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라도 금융노조에 직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 비정규 노동자들이 금융노조에 직가입하고 금융노조 조직본부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틀어쥐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것도 저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노조 임단협에서 비정규직과 관련한 다양한 의제들을 올려 놓고 교섭하고 투쟁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지요. 금융노조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금융노조에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저는 잘 모릅니다만, 예컨대 비정규노동자를 정규직 대비 몇 퍼센트를 넘어서 고용해서는 안된다거나 하는 등등이 교섭의제가 될 수 있게지요. 그리고 비정규직에게도 똑같이 단협을 확대적용하는 것도 있을 수 있구요. 물론 지금 금융권 노조들이 비정규직 관련, 임금과 복리후생은 별도로 교섭을 하고 있지만요.

    그리고, 제 글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점이었습니다. 첫째, 공개서한이라는 형식밖에 없었는지 하는 점, 둘째,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비정규직노동자들로 노동조합을 자체적으로 구성해서 얼마나 진전을 볼 수 있는지 하는 점 이었습니다.

    요약하면, 핵심고리를 건들고 있지 않다는 아쉬움의 표현이었지요.

    비정규직 퇴직자, 실업자, 해고자 등등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지,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지 등등이 현 국면에서 핵심고리는 아니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아울러, 자본주의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작동되고 있는 부르주아법체계-- 물론, 노조법, 근기법을 포함해서-- 속에서 모색을 하고 해법을 찾고, 잘잘못을 따지고 하는 것이 핵심고리는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그 테두리에서 무슨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진전되는 것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금융노조가 정말 산별노조인지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늘 나오는 말이 무늬만 산별이란 얘기지요. 그만큼 각 지부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금융노조를 향해 산별노조로서 그럴 수 있느냐는 식의 질문은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마디 더 하자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듯한 양상이 실제 있습니다. 심지어 비정규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요.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조가 이를 용인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비정규 노동자를 이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도 많이 받구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핵심은 정권과 자본에 있는 것이지, 그 문제가 정규직 노조,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식으로 정세를 분석하는 것은 잘못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차 지부장님께서 공개서한을 쓰지 안으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구요. 금융노조가 규약을 축소해 단결권을 축소시켰다면 그것 자체로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정규 노동자로 근무를 하다 해고된 뒤에 비정규직지부 조합원으로 있는다고 해서 그 노동자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저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밀린 임금을 수령하고 다시 비정규직으로 복직을 하든지 -- 복직을 한다고 해도 자본은 그 노동자를 가만히 두지 않겠죠-- 또 다른 사업장의 비정규 노동자로 취업을 하겠지요. 복직투쟁, 중요합니다. 노동자의 작은 권익을 찾아주는 것 중요하고 누군가는 해야될 일이지요. 그런데 그 일은 금융노조 조직본부에서도 그리고 각 지부 노동조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보다 더 중요하게는 그 일이 핵심고리는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화살을 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노동조합에 돌리지 마시고 정권과 자본을 향해 칼 끝을 겨누는 것이 정세적으로 옳다는 것이 제가 주장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비정규 노동자를 방패막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정권과 자본의 칼 끝에 벌벌 떨고 있는 똑같은 착취받고 있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숙고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분명한 점은 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노동자들을 방패막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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