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울한 날씨로 일관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철에 접어들었다. 자본이 쏟은 배설물로 계절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일교차의 폭은 기록이 달성되고 있다. 봄과 가을의 정서와 느낌은 여름과 겨울에 묻혀 가고 있다.
계절에 특별한 의미는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맘때쯤이면 높은 하늘에 아득해지는 꿈과 희망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단풍이 물드는 아늑한 공간에서 감미롭고 잔잔한 선율이 격동하는 음악과 마주하며, 영혼 깊이 젖어오는 감동을 느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의 바람일 것이다. 새로운 계절은 접하며 금새 그 끝자락이 가물거리는 지나버린 여름을 생각하게 한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기억이 상종하는 동안, 생애가 몸부림치는 동안, 계절 속에 과거가 역사 속에 담겨지고, 기억 속에 계절은 잔잔한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난 여름 김종배열사 추모제를 마치고 찾아들어간 북한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진추하’와 ‘아비’가 부르는 ‘한여름 밤’이란 노래가 작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수 십 년 만에 들어보는 노래가 심금을 파고든다. [“한여름 밤 별은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한 여름 밤의 꿈...날 자유롭게 해 주세요..나무 위 새들처럼...”] 이 노래를 들으며 지난 시절 여름에 대한 기억, 추억들이 오버랩 된다.
논바닥 물이 온천수처럼 뜨거워질 만큼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하루 종일 논을 매고 몰려오는 피로를 이웃들과 함께 저녁의 뜨거운 칼국수로 식히며 생쑥으로 피워낸 모깃불 앞에서 진한 연기를 연거푸 부채질하며 모기와 더위를 쫓으며 두런거리는 이웃과의 대화와 함께 풀벌레소리와 영롱한 별들이 마당 멍석위로 내려앉는 한여름 밤. 정겨움이 스쳐간다.
15년 전 여름, 나를 포함 수배자 세 명이 김종배 동지의 안내로 오대산을 찾았다. 마시고 싶도록 맑은 계곡물을 건너 넓게 펼쳐진 배추밭 언저리에서 바라보는 여름 밤하늘은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수배에 찌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풀어주는데 손색이 없었다. 눈이 시리도록 빛나는 별들의 조화와, 가끔씩 획을 긋는 유성과 뿌옇게 펼쳐진 은하수 너머가 우리들의 세상일 수 있다는 환상. 작은 두 팔로 그것을 껴안을 수 없지만 마음은 영롱한 별바다에 묻혀 가는 오대산의 여름밤은 막걸리에 취하기보다 우주와 자연의 오묘한 조화의 한가운데 그렇게 취하고 있었다.
모든 별들은 차츰 광채를 잃어가고 새벽별만이 먼동을 손짓하고 새벽 경운기 소리가 적막을 깰 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재현시키지 못할 추억이기에 그리움이 더하는지 모른다. 삭막함에서 벗어나 잠시 갖게 되는 마음에 풍요는 돌이킬 수 없는 아쉬움 속에 자리하는 짧은 여름밤. 그러나 행복했었다.
그리고 십 수 년이 경과한 여름은 정서와 보편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다. 참과 거짓이 서로 뒤엉켜 뒤죽박죽이 되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여름이다.
노동부는 없어지고 고용부가 생김으로써 노동자는 권리와 인격이 실종되어 물건이 되고 말았다. 타임오프를 앞세워 노동운동은 물론 노동자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있다. 대운하의 기초공사로 4대강은 묻지 마 강으로 흐르고 있다. 생존의 몸부림으로 투쟁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은 이명박 임기동안에 징역에서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용산 망루에 철거민들은 중형을 선고 받고, 전철연의 지도부였다는 이유 때문에 남경남의장이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소위 사회고위층이라는 자들에게 ‘인사검증 기준을 강화하라’는 대통령의 주장에서 ‘나는 빼고’라는 전재를 달고 있다. 가계 빚 증가의 위험성이 제기되는데 DTI완화로 대출이 느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중앙은행 총제의 자질이 골 때린다.
동희오토, 기륭전자, 재능교육을 비롯한 간접고용, 특수고용, 파견노동을 포함한 비정규노동자들은 거리에서 “1000일 이상의 장기투쟁”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의 계급말살정책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상황은 ‘우리는 보이지 않고 너와 나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지난해 여름밤을 달궜던 용산의 여름밤은, 평택의 여름밤은, 그리고 대한민국의 지나간 여름밤은, 자유를 저당잡힌 징역보다 더더욱 답답하고 짜증스럽게 치솟는 분노가 더위를 한층 부채질하는 긴 여름밤이 되어 가을의 중턱에 걸려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여름밤의 꿈을 실현하고 싶다. 잠 못 이루고 밤하늘을 주시하던 오대산에서 김종배 동지와의 한여름 밤을 별들과 함께 다시 그려내고 하반기 투쟁의 열정일 지폈던 그 열정을 되찾고 싶다. 그리고 숨 막히는 여름밤의 희망을 가을이란 계절에서 찾고 싶다. 그 희망이 세익스피어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가 암흑의 중세시대라고 할지라도 세익스피어가 작품으로 표현하고자했던 '한여름 밤의 꿈'을 계급투쟁으로 이루고 싶다.
고전과 예술에 관심을 두고 이성적 중심 사고를 강조하던 중세시대에 전개했던 ‘한 여름밤의 꿈’이 글로벌시대를 앞세우는 21세기의 지루한 여름, 절망의 ‘한여름 밤’ 보다 낫지 않았을까. 반복되는 절망을 딛고 노동자계급의 우렁찬 함성이 구름 없는 가을하늘의 적막을 깨뜨리고, 찬 기운이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노동자, 민중의 길바닥 농성투쟁이 없어지는 계절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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