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렇게 평소에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한때는 열흘을 넘기지 않고 한번씩 삼겹살과 소주를 먹어야 허기가 가시고 배부른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상추에 마늘과 함께 얹어 쌈 싸먹고 남은 고기에 묵은지 썰어 밥까지 볶아먹어야 터질 것처럼 속이 꽉 차는 것이 뿌듯했었는데, 최근 몸이 고기를 소화하기 어렵다고 신호를 보낸다.
잘 눈치 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소화가 잘 안 돼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 가부다 했고, 그것이 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슬슬 모양이 혐오스럽더니 이제는 냄새도 비리다. 얼마 전에는 맛이 기가 막히다고 일부러 대접해준다는 동지를 따라 오리탕이 유명하다는 집에 갔다가 그 집 입구부터 냄새가 비리더니 전골그릇을 앞에 두고 국물만 떠먹으며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느라 난처한 일을 겪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럴까? 왜 고기냄새가 역하지? 급기야 며칠 전에는 먹음직스럽게 튀겨진 통닭이 느끼하더니 체해서 몽땅 토해버렸다.
삼겹살이라면 무조건 좋고 닭고기, 소고기는 물론 개고기도 없어서 못 먹던 내가 앞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것은 광우병 쇠고기 반대투쟁으로 온 국민이 광화문 거리에서 1박하는 국민엠티 촛불놀이를 하던 때였다. 날마다 하던 촛불집회의 어느날 동영상으로 대량생산된 소들이 도축되는 장면을 보았다. 강제로 물을 먹이고 전기충격에 마지막 죽음을 당하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모두 고문과 학살이었다. 살아있는 몸뚱이가 비참하게 고문당하고 줄서서 컨베이어 벨트타고 죽음을 기다리는 지친 소의 눈빛을 보던 순간, 화면 넘어 나를 보는 소의 눈빛에서 영혼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아, 더 이상 저 슬픈 눈빛의 소를 먹을 수가 없겠구나.’ 생각했다. 죽임을 당하는 소의 영혼이 온전치 못한대 죽이는 노동자의 영혼은 온전할 것이며 그 고기를 먹는 사람의 건강이 온전할 것이며 그로인해 이윤을 벌어들이는 자의 영혼이 청정할 것인가.
대량생산이라는 환경은 고문하듯이 사육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여 동물의 영혼을 병들게 할뿐 아니라 전염병은 재앙이 된다. 살처분이라는 이름의 학살이 그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민 중에 단 한명이라도 감기에 걸린 것이 확인되면 우리 아파트 단지 수천 명의 사람들을 아이부터 젊은이, 노인까지 줄줄이 끌고 가서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한꺼번에 생매장한 다음에 절규하는 소리 울리는 그 구덩이로 가스를 주입해서 죽인다는 거다. 야만적이다. 언론을 통해 이번 구제역 발생이후 살처분 한 동물이 100만 마리를 넘었다는 보도를 들었다. 이정도면 대규모 학살이다.
문제는 대량생산이다. 소와 사람이 더불어 사는 방식이 아니라 중량이 무거운 고깃덩어리로 비대하게 더 빨리 사육되어 최대한 무게가 무거운 채로 죽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문제다. 아무리 인간이 먹어야 산다지만 고기를 먹기 위한 방법이 너무나 비동물적이다. 그렇게 비참한 방법으로 사육하고 죽여하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윤이고 문제는 자본주의다. 내가 먹고 살기위해 먹는 고기가 사람을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생산되는 자본주의 상품이기 때문에 문제다. 이윤만을 생각하는 자본주의 생산은 야만적으로 키워 야만적으로 먹는다. 야만적인 것은 내 입, 내 욕망 외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욕심이다.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 욕망은 소를 학살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 야만적으로 키워 야만적으로 먹는 욕망은 야만적으로 노동현장을 재편한다.
해마다 최고의 이윤을 내는 삼성의 반도체는 꽃다운 20대 여성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지금도 생산된다. 해마다 반도체에 이어 두 번째 이윤을 내는 현대자동차는 생산라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 인간을 차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하며 지금도 이윤을 높이고 있다. 그렇게 건설자본의 이윤을 위해 용산에서는 거치적거리는 철거민들을 죽였다. 이윤이면 장땡이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모든 것이 용서되는 질서, 이것이 야만이다.
법과 공권력과 주요언론이 모두 자본주의 착취질서, 더많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하물며 인간의 말로 소통되지 못하는 짐승의 슬픈 눈빛이야 돌아볼 이유가 없는 세상이다.
야만이 싫다. 내 입과 내 욕망의 순도를 더 높이기 위해 폭력도 학살도 용인하는 철학이 싫다. 그런 철학으로 공장에서 상품이 생산되듯 만들어진 고기가 싫다. 무릇 살아 숨 쉬는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내가 살기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한다 해도 이런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 살기위해 닭과 돼지와 소를 키우는 것과 이윤을 위해 닭과 돼지와 소를 키우는 것은 다르다. 함께 살다가 잡아서 그 고기를 먹고 언젠가는 나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 어느 식물인가의 거름이 된다는 철학은 조화롭고 소박하다. 이제 슬픈 영혼의 고기를 먹어 내 숨을 쉬게 하지는 않기로 한다.
새해에는 고기를 끊어볼 참이다. 새해첫날 비린내 나는 통닭을 먹고 소화시키지 못한 채 토해낸 다음 변기를 붙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나의 위는 고기를 소화하기 싫은가 부다. 그래, 먹지말자. 야만적인 질서에 길들여진 고기 먹지 말고 야만적인 착취질서를 거부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평등하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서로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 청정한 세상을 꿈꾸며 투쟁하는 초식동물이 되기로 한다. 다른 생명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먹으며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부해주는 내 몸과 마음에게 고맙다. 더 이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 마흔이라는 나이는 초식동물로 살자고 결심하기에 좋은 나이다. 그런데 문득 아마도 자장면을 끊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다 웃었다. 새해에는 고기를 끊고 투쟁하는 초식동물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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