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있다. 무릇 하나의 사태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때로는 장점이 곧 단점으로 작용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다르다면? 논리적으로 이 말의 전제부터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복수노조의 경우는 어떨까.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 확대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나 실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창구단일화 법제화라는 독소조항으로 인해 결사의 자유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은 여러 제한에 가로막히게 되었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기에는 시작부터 저울추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저들이 정한 ‘게임의 법칙’을 공정하게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인 것은 분명하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재개정 투쟁이 민주노총의 당면 핵심 과제로 상정된 이유다. 언제나 그렇지만 문제는 세력 관계다. 정부와 자본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제도와 복수노조 제도를 활용하여 민주노조 자체를 와해시키려고 덤벼들고 있다. 반면 ‘악법은 어겨서라도 깨뜨린다’는 민주노조 운동의 기세는 이미 크게 꺾인 상황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민주노총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노조법이 날치기로 통과될 때에도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한 민주노조 운동의 현실에 비춰볼 때, 누가 어떻게 노조법 재개정 투쟁에 나설 것인지가 당장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이런 사정을 반영한 듯, 민주노총은 지난 달 27일 열린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올 상반기 노조법 재개정 투쟁을 ‘최저임금 국민 임금 투쟁’과 결합해서 진행한다는 일종의 우회 전술을 채택했다.
민주노총 자체 진단에 따르면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수세적이다.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하려는 자본의 공세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가세로 현장에서는 기존 노조라도 지키자는 위기감과 조직 방어 논리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작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제도 투쟁에서 확인했듯이, 개별 현장 단위의 미시적 대응으로는 ‘법과 원칙’을 앞세우는 정부 행정 지도에 무력할 따름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총노동 전선도 현장 싸움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보니, 민주노총의 복수노조 대응 사업계획의 한 축은 ‘야5당 연석회의’가 차지하고 있다. 법을 개정하려면 국회 대응이 필수고 국회 대응을 위해서는 야5당과의 공조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올해 내로 법 개정이 불가능한 만큼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적극 개입하여 본격적인 법 개정 투쟁을 진행하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이라 하기에는 민주노총 사업계획 전반이 반MB 프레임에 꽁꽁 갇혀 있다. 노조법뿐만 아니라 한미FTA나 국가고용전략2020 투쟁에서도 야5당 공조는 필수 사항이 되어버렸다. 범야권의 왼쪽 날개를 담당하는 것이 민주노조 운동의 활로라는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현장 투쟁 동력이 없다는 객관적 현실, 다시 말해서 민주노조 운동이 극복해야 할 현실적 조건이 도리어 주체적 투쟁에 대한 고민을 머뭇거리게 하는 알리바이로 작동하는 형국이다.
주체적 투쟁 계획이 관건
이에 대해 원칙만 따질 때가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상황이라는 반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푸라기는 지푸라기일 뿐이다. 단적으로, 야5당 연석회의 내에서도 노조법 재개정을 둘러싼 이견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김칫국 마시기’일 공산이 큰 셈이다. 설사 노조법이 재개정된다 하더라도 그 최대치는 합헌을 전제한 가운데 부분 수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노조법 제정 이후 여러 번 유예기간을 거치며 법제화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분간 폐기 또는 전면 개정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경쟁과 경제위기라는 제약 속에서 노동유연화만이 살 길이라는 지배계급 전반의 ‘컨센서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민주노조 운동은 주동적인 자세로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야 한다.
우선 개정 노조법의 의도가 민주노조 탄압과 노동기본권 제한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제기하면서 ‘민주노조 사수, 노동기본권 쟁취’를 핵심 기조로 현장 동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금속노조의 현대차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을 비롯한 간접고용 철폐 투쟁, 총연맹 차원의 최저임금 투쟁, 노조탄압 사업장의 지역적 연대투쟁을 확산하면서 6월 말 동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공동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의 경험을 축적하고 민주노총의 통합력을 높이는 것이 조직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리한 법, 제도적 환경은 결국 노동자 투쟁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는 민주노조 운동의 기본 정신을 복원해야 한다. 운수노조 버스본부 사례와 같은 노조 민주화 흐름을 확산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자신감과 기세를 올려 나가야 한다. 공공노조 서경지부의 대학 비정규직 사례처럼, 연쇄적인 노조 조직화와 초기업단위 교섭을 성사시킴으로써 산별노조의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노조 건설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복수노조 시행을 앞둔 노자 간 힘겨루기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민주노조 혁신과 강화로 접근해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복수노조 대응은 곧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과 강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복수노조 병존 시 개개 노동조합은 조합원에게 누가 더 많은 실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경향이 복수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지배개입이나 부당노동행위와 맞물린다면 노동조합의 정체성 자체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즉, 단기적 이해와 조합원의 배타적 권익에 몰두하는 실리적 노조주의는 복수노조 시대에서 자멸의 지름길일 뿐이다. 민주노조 운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격차를 축소해 나감으로써 노동자 전체의 통일적 이익을 창출한다’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이념적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주노조 운동은 공세적 조직화를 통해서 대중적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미조직 조직화는 고사하고 기존 노조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것이 사실이지만, 굴렁쇠는 일단 멈추는 순간 넘어지기 마련이다.
우선 기왕의 산별노조 전환이 조직 형식에 머물지 않고 비정규직 조직화와 정규직과의 격차 축소로 이어지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전자 철강 조선 등 무노조 업종 신규 조직화 △공단 중소 영세사업장 초기업단위 조직화 △어용노조 민주화를 다차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노조 경영’ 사업장에서는, 사측의 엄격한 노무관리로 인해 신규 조직화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사회적 차원의 반재벌 투쟁과 지역 차원의 조직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단 조직화의 경우, 초기업단위 교섭이 더욱 난망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서 당장 교섭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전념하기보다는 지역 차원의 공동 투쟁 경험을 쌓아 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 어용노조 민주화의 경우, 개정법이 사실상 자율교섭을 가로막고 있어서 소수 민주노조가 생존할 가능성이 높지 않으므로 상급단체의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노조 단결의 원칙을 되새겨야
그밖에도 민주노조 운동 내에서 정파적 갈등과 노조 운영의 비민주성이 결합하여 파괴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와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고용 직무 형태별 분할 가능성이나 노조 간 관할권 분쟁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 방침’을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복수의 진보정당 간 (재)통합이 난항에 빠질 경우, 정파 간 정치적 분화가 심화되어 이것이 노동조합의 분할을 촉진할 가능성이 잠재한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계급적, 정치적 단결을 추구함으로써 정치적 분화 가능성을 전진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상으로 노동자운동연구소의 ‘복수노조 시대의 대응과제’ 기획연재를 마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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