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대응을 보면서 새삼 정몽구 회장의 힘이 세다는 것을 느낍니다. 평소에는 우리의 처절한 싸움에 대해 한 줄도 보도하지 않던 수많은 언론들이 지난 희망버스 투쟁을 두고 하나같이 사건의 본질은 외면하면서 노동자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면 어리둥절하기까지 합니다. 불법파견 현행범인 정몽구 회장을 처벌해 달라는 우리의 목소리에는 철저하게 눈을 감아 왔던 정부가, 경찰이, 검찰이 나서고 있습니다. 그것도 참 빠르게, 약속이라도 한 듯. 조합원들은 말합니다. 그 지독하기로 소문났던 한진중공업 자본도 이렇게 많은 힘을 쓰진 못했는데 역시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은 다르구나.
하긴 차분히 돌아보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10년의 투쟁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돈과 권력, 영향력을 가진 자본, 그 거대한 철옹성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제가 2003년에 월차를 쓰려다가 관리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관리자들이 병원에 찾아와서 저의 아킬레스건을 자른 사태를 계기로 현대자동차 아산, 울산, 전주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이고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숨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화장실 갈 틈도 없었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왜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는지 그 이유라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론 한 여름도 혹한의 겨울 같았던 모진 시련의 세월이었습니다. 목숨을 바친 동지들이 있고 수백 명이 해고당했습니다. 파업 한 번 하기 위해서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쯤은 각오해야 했습니다. 2010년 저희 지회가 파업을 했을 때는 용역깡패와 관리자들에게 두들겨 맞아 60여 명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15일 자결한 지회 사무장 박정식 열사는 아직도 장례를 치루지 못해 10일 넘게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있습니다. 정몽구 회장이 노동부와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고 정규직화를 실시했다면 죽지 않았을 35살의 젊은 노동자가. 그리고 울산의 최병승, 천의봉 동지는 300일 가까이 철탑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돌아보면 차라리 비정규직 노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 우리 모두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불법파견 이전에 비정규직 제도 자체가 너무나 부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매출액 84조4697억 원(자동차 71조3065억 원, 금융 및 기타 13조1천632억 원), 영업이익 8조4369억 원, 경상이익 11조6051억 원, 당기순이익 9조563억 원(비지배지분 포함)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이 짐작하기도 어려운 숫자들. 그런데 이 이익들이 기록되는 시간에 우리 해고자들은 차비가 없어 하염없이 길을 걸어 집회에 나와야 했고 현장에서는 얻어터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땀흘려 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자동차가 거두어들이는 그 순이익의 아주 조금이면 정규직화가 가능하다고 얘기들을 많이 했지만 정몽구 회장이 그 문제를 고민할리는 없겠지요. 2010년엔가 정몽구 회장이 900억짜리 전용기를 도입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들은 참 허탈해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국정원 사건에서 보듯 민주주의라는 게 껍데기고 그 껍데기 민주주의일 뿐인 선거조차도 누군가가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는 사회에서 엄청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못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것도 한국의 최고라 하는 재벌인 현대자동차 회장이. 대법원 판결도 헌신짝처럼 짓밟을 수 있고 순식간에 노동자들을 폭도로 몰 수 있고 수십 명을 잡아들일 수 있고 또 수백 명을 해고할 수 있고.
그러나 단 한 가지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긋지긋한 차별과 가난을 끝내려는 우리 마음을 짓밟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누군가가 죽어야 할지 모르고 박정식 열사의 장례는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고 철탑의 처절한 농성도 또 얼마나 이어가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짓밟히지 않을 것입니다.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외칩니다. 정규직 전환 쟁취하자! 비정규직 철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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