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전교조 죽이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실 권력에 의해 전교조 와해 공작이 시작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전교조의 규약 5가지 조항이 교원노조법에 위배된다며 규약시정 명령을 내렸고 전교조가 불응하자 검찰을 통해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 기소를 했다. 전교조가 항고하여 형사재판 1,2심에서 모두 벌금 100만원으로 감형되었고 이 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에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대선후보 유세 때 "전교조는 대한민국 정통성과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는 이념편향 집단"이라고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반전교조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지난 2월에는 고용노동부를 통해 규약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를 전교조가 거부하자 9월에는 “10월 23일까지 부칙 5조를 삭제하지 않을 시 노조설립을 취소하겠다”는 보다 강경하게 ‘노조 결격 사유 시정명령’을 통보해왔다.
이에 전교조는 지난 9월 28일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박근혜정부의 규약 시정 명령에 대한 거부와 수용 여부를 조합원총투표로 결정한다"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간 전교조는 '해고자도 조합원이다'는 것을 민주노조의 원칙으로 일관되게 주장해왔었기에 이 결정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조합원의 거취문제를 정부가 강요하고 이를 빌미로 ‘노조의 설립 여부를 정부가 결정하겠다.’고 전교조 침탈을 예고한 상황에서 최고 활동가단위인 전국대의원대회가 즉각 반격에 나설 것을 주문하지 않고, 싸울지 말지를 조합원대중의 결정(조합원 총투표)에 맡겨버린 꼴이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힘을 합쳐 강도를 물리칠 생각은 않고 ‘쫒아낼 지 가만히 있을 지 의논부터 하자’는 것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또 운동진영 내에서, 학교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실천해왔던 전교조가 사람(조합원)의 거취 문제를 다수결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은 자기모순과도 같은 것이기에 운동진영 내부의 우려는 더욱 더 컸다. (향후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반드시 짚어져야 할 문제다.)
전교조 총투표가 끝났다. 결과는 조합원 대중의 68%가 박근혜정부의 규약 개정 시정명령에 대해 거부를 결의한 것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온 '(노동자)대중은 늘 저간의 상식과 지도부의 판단을 쉽게 넘어선다.'는 진실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조합원대중은 지도부가 떠넘긴 역할에 어깃장 놓지 않고, 오히려 지도부가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보다 확장된 내용으로 의연하고 결기 있게 정권의 전교조 와해 공작에 맞서 투쟁하라면서 지도부의 투쟁에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낸 것이다.
10월 24.25일 예고된 설립취소 통보를 앞두고 전교조가 그 어떤 때보다 총력투쟁의 결의가 드높은 이때, 박근혜정부의 설립취소(법외노조) 강행 시도에 제동을 걸 전교조의 공공연한 대반격 투쟁이 펼쳐져야 할 것이다. 명실상부 전조합원 연가파업투쟁. 그것이 조합원대중이 총투표로 보여준 투쟁의 결의에 화답하는 지도부의 역할이 아닐까.
역사를 잠깐 거슬러 가보자. 87년 민주화투쟁의 막바지인 1989년 전교조가 출범했다. 노태우 정권은 전국의 경찰병력을 총동원해 출범 방해공작을 펼쳤고, 무려 1,500여 조합원이 해고되는 시련을 견디며 한국노동운동사에 유례가 없는 교원노동조합, 전교조가 탄생했다. 전교조는 그뒤 10년의 비합법을 견디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비로소 합법화됐다. 하지만 그것은 전교조에게는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같은 상처를 남겼다. 전교조합법화는 전교조 투쟁의 산물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노동자 구조조정과 빅딜의 결과로 얻어졌기 때문이다.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리며 피눈물을 흘릴 때, 한 켠에선 전교조합법화가 자축되었음을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이제 며칠 뒤면 박근혜정부가 전교조 법외노조를 통보해 올 것이다. 무엇보다 전교조 스스로의 힘으로 이 난제들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어떻게 할지 둘러보지 말기 바란다. 국민 여론이 어떨지 헤아리지도 말기 바란다. 1989년 출범 이후 전교조에 대한 정권의 시선이 고왔던 적이 있었던가. ‘의식화’로 낙인찍힌 전교조야 말로 전교조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모든 이들의 자부심이었다. 쫄지도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당당히 나아가기 바란다. 탄압받는 전교조를 벗어나 ‘정권과 자본에 맞짱 뜨는 전교조, 탄압받는 노동자와 어깨 걸고 투쟁하는 당찬 전교조’가 본래 가야할 제 모습이다. 전 조직의 힘을 모아 박근혜정부의 전교조 와해공작에 맞서 ‘법외노조 철회, 합법전교조 쟁취’를 내걸고 총력투쟁하고, 이를 위해 지부를 중심으로 지회와 분회단위의 조직을 추스르고 소통의 내용과 모임을 점검하고 지원하며 법외노조 시기를 견뎌 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교원.공무원노조법 폐기, 노동조합법 개정 투쟁’을 공무원노조와 같이 힘차고 끈질긴 투쟁을 전개해 나가면서 11월 노동자대투쟁에 결집하고, 동시에 정권과 자본의 침탈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겠다는 각오로 법외노조 시기를 ‘위기에서 기회’로 전교조 제2창립, 전교조 시즌2를 준비해야할 것이다.
전교조의 시즌2는 그것만으로 열리지 않을 것이다. 전교조가 명실상부 교육노동자노조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한시바삐 전교조 규약을 개정해 학교 내 비정규직 교원과 직원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자가 누구인가.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로 양산된 한국사회 노동자들이고 그들은 이미 교육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교육 동지들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자신들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인 그들을 동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아이들과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민주노조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지나간 시기에 피눈물을 삼키며 구조조정 된 노동자들에게 전교조가 진 빚을 조금이나마 상쇄하는 길이 아닐까.
10월 23일을 목전에 둔 작금의 상황을 헤쳐 나갈 돌파구로서 정권의 법외노조 시도에 맞서는 전교조의 강력한 대반격 투쟁 전술이 배치되기를 기대해 본다. 어느 때보다 전교조의 투쟁 결의가 드높은 이때, 공공연한 연가파업투쟁으로 박근혜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강행 정국을 뒤흔들어야 한다. 정권이 던져줄 보따리를 셈하기보다 자신이 조직한 현장 조합원들이 징계를 각오한 연가투쟁으로 나설 수 있을 때, 승리를 담보할 순 없어도 승리를 확신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관성화 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전교조 투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고, 박근혜정권의 노조말살 정책에 파열구가 열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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