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국가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

[기고]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던 송전탑이 보인다

“순사 온다.” 밀양 백마산 자락 평리 농성장 입구, 새벽 어스름이 사라질 무렵 경찰들이 교대를 위해 산으로 올라오면, 할머니들은 이렇게 신호를 보내며 경찰에 맞설 채비를 하신다. 경찰이 가까이 오면 할머니들은 지팡이를 무기 삼아 휘저으며 소리친다. “이 나라가 왜 내 땅을 빼앗을라 하노? 왜적이 따로 없구마!”, “대통령이 나라 세웠나? 국민들이 나라 세웠지! 국민 죽이는 나라가 어딨더노?”, “너희들 보다 내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50년은 더 했다. 근데, 나한테 이 나라가 왜 이러노?” 곧 경찰들 여러 명이 달라들어 할머니를 끌어내고, 할머니들은 피를 토하듯 울부짖으신다. “나는 이 나라 국민 아이가!”

평생을 단 한 번도 이 나라 국민이 아니라 여긴 적 없건만, 어느 날 갑자기 국가로부터 버림당했다는 사실을 밀양 어르신들은 지금 매일 몸으로 확인하고 계신다.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 당신의 가슴을 내리치며 울부짖으신다. 10월 1일부터 시작된 이 싸움은 벌써 20일을 넘어,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들이 경찰들에게 끌려나오는 과정이 평리, 바드리, 여수마을, 도곡마을, 금곡리, 밀양 곳곳에서 벌어진다. 경찰3천 병력들이 있다지만, 할머니들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국가를 향해, 국가의 본질을 묻는 이 질문에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답해준 적이 없다. 밀양 경찰서장도, 전국에서 온 중대장들도, 그들의 입에서는 오로지 “비키세요. 경고합니다. 연행합니다. 불법입니다.”를 기계처럼 반복할 따름이다. 밀양 송전탑 투쟁에서 국가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정당성이 없다.”

3주 전 이 싸움이 처음 시작되던 날, 많은 사람들은 ‘10일을 버텨보자’고 말했다. 지난 5월의 경험이 그러했고, 눈에 띄게 쇠약해진 어르신들을 보며 이 엄청난 경찰병력에 맞서 10일을 넘게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런데 20일이 훌쩍 지난 지금, 어느 누구도 이 싸움의 끝을 짐작할 수 없게 되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이 싸움의 끝을 결정하는 것은 한전도 경찰도 정부도 아닌, 바로 할머니들이란 사실이다. ‘외부 세력’이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투쟁의 중심에 할머니들이 있다는 것을 한전과 경찰도 모르진 않는다. 할머니들과 단 하루라도 함께 있어본 사람들은 알 수 있다. 이 분들이 당신의 ‘목숨’을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을. 190~200을 넘는 고혈압에 쓰러졌음에도 병원에 실려 가길 거부하며 투쟁하신 할머니, 태풍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에도 비닐 하나 뒤집어쓰고 산에서 내려오길 거부하던 할머니들, 무덤을 파놓고 그 속에 묻히겠다는 할머니들, 목에 쇠사슬을 걸고 온 몸을 던지시는 할머니들. ‘이분들은 정!말! 죽지 않는 한, 이 싸움을 끝내지 않겠구나.’ 지난 20일 동안 우리가 목격한 사실이다. 국가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이다.

밀양 송전탑 투쟁이 길어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송전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직접 고통을 겪고 있던 사람들만이 아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던 송전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전국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놀라운 감각의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전 국민이 동시에 신체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대 문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에너지를 둘러싸고 어떻게 심각한 수탈과 착취가 벌어지고 있는지, ‘공공의 이익’이란 허울을 덮어쓰고 실제로는 누구의 잇속을 채우고 있는지,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과 재산권을 어떻게 강탈할 수 있는지,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공론은 이미 시작되었고, 전 국민은 지금 학습 중이다. 최소한 이 투쟁이 끝나지 않는 한, 한국 사회 곳곳에서의 배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질 수밖에 없는 세 번째 이유이다.

바드리 마을, 경찰들에게 끌려나온 열여덟 살 미래가 대추밭 한 가운데서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 날 밤 미래가 기타 치며 노래 부른다. “경찰들은 놉니다. 쉬지 않고 놉니다. 경찰 3천 명 밀양 산골짜기에서 놉니다. 쉬지 않고 놉니다. 할머니들은 핫팩 붙이고 차가운 길바닥에서 밤 새는데, 경찰들은 8천만 원, 일류 펜션에서 놉니다. 쉬지 않고 놉니다.” 언제 울었나 싶게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열여덟 살 미래에게 밀양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땅이다. 이것이 밀양 송전탑 투쟁에서 국가가 꼭 질 수밖에 없는 네 번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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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냐 이건

    읽어봐도 국가가 패배할 것 같진 않은데? 신체적 변화 운운하는데선 좀 웃었다.

    뭘 위한 글이고 누굴 향한 글일까. 한 줌끼리 제 정당성에 취해 이런 식으로 자가발전한다고, 국가가 저절로 물러가진 않겠지. 정의는 언젠간 승리하리라~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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