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 열사의 의지를 기억하자

[기고] 10월26일, 이용석 열사 10주기를 맞아

10월 26일은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 열사 분신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설령 2003년 10월 26일이라는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이었던 이용석 열사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눈물과 의지 위에서 투쟁을 시작하고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용석 열사는 투쟁의 힘으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에 살아있다. 그러나 가끔은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너무 힘들어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 열사들을 기억하며, 그 동지들의 뜻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닐까?

이용석 열사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의 간부였다. 2000년대 초반 공공부문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해고되었고, 이에 저항하여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이 517일간 파업을 했었다. 그러나 그 투쟁이 패배로 끝난 후 공공부문에서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더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게 되었고, 기간제가 상시적으로 채용되었다. 이렇게 늘어난 비정규직은 예산절감을 이유로 형편없는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솟아오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결의했다. 그 첫 집회가 2003년 10월 26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였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는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대회였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월차를 쓰겠다고 했다가 식칼로 테러를 당한 것에 분노하여 라인을 세웠고, 청소노동자들과 민간위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돌려내라면서 투쟁했고, 레미콘 노동자들이 여의도에 세워둔 레미콘 트럭을 도끼로 부수고 진압한 경찰 특공대에 맞서 투쟁하면서 분노의 눈물을 뿌리기도 했었다. 이렇게 전국 곳곳에서 투쟁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알리기로 하고 모여서 직접 준비한 집회였다. 이 자리에는 이주노동자들, 정규직 노동자들도 참여했다. 손배가압류로 여기저기에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던 열사정국이었다.

2003년 10월 26일 첫 번째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린 종묘공원에서 노동자들은 그날 첫 선을 보인 ‘비정규직 철폐연대가’를 배웠다. 언제나 투쟁에 함께해왔던 노동가수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노동자들은 처음 들은 노래지만 힘차게 따라불렀다. 그러던 중에 집회 대오 중간에서 불길이 솟았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의 간부였던 이용석 열사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 인간적 모멸감을 이겨내고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요구하며 이용석 열사는 몸에 불을 붙였다. 이용석 열사를 황급히 구급차에 실어보낸 후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주노동자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거리로 뛰쳐나가 격렬하게 저항하고 항의하면서 투쟁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잠겨진 문을 뚫고 담장을 넘어 근로복지공단 안으로 들어가 ‘이용석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1박2일을 예정하고 전국에서 모인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앞에 농성장을 차리고 49일간의 긴 파업 투쟁에 돌입한다. 파업 투쟁 과정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졌고 정부의 구조조정이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폭력적이었는지 폭로되었다. 정부는 황급히 대응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정규직 T/O를 확보하고 정규직 전환시험을 통해 대다수가 정규직으로 전환함으로써 파업 투쟁을 마무리했다. 정부는 2004년 공무원 확대와 정규직 전환을 골자로 하는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내놓게 되었다.

이용석 열사 분신 후 10년, 비정규노동자들은 권리를 찾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자본의 탐욕은 강해지고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차별하고 위계화하는 비정규직은 더 확대되고 노동자들을 갈라놓으면서 기승을 부린다. 특수고용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간접고용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인정되지 않아서, 기간제는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권도 보장되지 못한다. 임금은 최저임금으로 고착되었고, 무기력해지는 노동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공공부문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에서 2006년에 내놓은 2차 비정규대책은 외주화를 합법화하고,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고용도 불안하고 차별적 처우도 유지되는 무기계약 전환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도 양산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후퇴하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도 확장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자신만의 투쟁을 넘어 제도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가슴 속에 불만과 분노를 가득 안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깨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수없이 목숨을 걸었던 이들, 이름을 부르기에도 가슴이 먹먹한 수많은 비정규열사들과 그 열사들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 투쟁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만큼 와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로 노조탄압은 더 기승을 부리고 승리하는 사업장도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지치고 때로는 무기력해지고, 때로는 우회로를 찾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절벽만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생각해보자. 자신의 몸에 불을 살라가며 우리에게 ‘좌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촉구했던 그 의지를, 그리고 그 의지의 길을 따른 수많은 비정규직 열사들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의지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투쟁해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억하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하자. 좌절하지 말고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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