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연재를 시작하며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1)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네트워크(이하 비없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고, 기업의 이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법적인 권리를 뛰어넘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는 길에 함께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훼손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함부로 해고당하고, 죽거나 다치기 쉬운 일자리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시간에 대한 권리도, 공간에 대한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고 있고, 4대 보험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데 사회의 법과 제도와 공권력과 언론이 이것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때문에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가 권리를 대신해서 찾아줄 수는 없습니다. 법과 제도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합니다. 그러니 오로지 노동자들은 스스로 단결하고 투쟁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면 회사는 하청업체를 통째로 계약해지하고,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심지어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도 박탈합니다.

이런 현실의 한계가 노동자들을 가로막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치지 않고 투쟁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투쟁의 힘으로 조금씩 권리를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 숨죽이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나서야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을 만듭니다. 이 기획연재는 현장에서부터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해왔던 이들의 목소리입니다. 각 조항마다 그 조항에 대한 해설과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해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오늘 우리는 더 이상 침해될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를 선언한다.

더 많은 착취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없애려는 자본의 욕망을 부추기는 비정규직 체제로 인해 모든 노동자는 불행하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차별과 고용불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해고되어서 이전의 관계로부터 강제로 단절되어버린 노동자, 일자리를 구하면서 불안정한 노동을 반복하는 노동자,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빼앗겨버린 이주노동자, 그리고 영세한 자본구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 모든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은 점차로 힘들어진다.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불안정한 노동이 확산되는 현실에서는 계속 해고위협과 노동조건의 하락 압박,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경쟁으로 인해서 마찬가지로 불안하고 힘들다.

경쟁으로 관계는 파괴되고, 차별로 노동자의 자부심은 무너지며,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간 존엄성이 훼손된다. 이런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나서는 순간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해고되고 생존의 위협에 시달린다.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하거나 침묵한다. 이런 침묵 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너져갔다.

비정규직 체제 안에서 우리가 노동자의 권리를 선언하는 것은 이윤보다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일하는 이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선언함으로써, 큰 힘을 갖고 있지만 침묵과 순응으로 비정규직 체제를 용인해왔던 우리의 비겁을 벗어버리고자 한다. 자신만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나서며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는 이들을 우리는 믿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는 스스로의 투쟁으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자의 길을 연 전태일 열사의 정신과, 죽음의 길 끝에서도 비정규직 철폐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비정규직 열사들의 의지를 따르겠다는 선언이다.

오늘 우리가 선언하는 안정된 노동의 권리,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나갈 권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유지하고 공동체의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자 모두의 권리이며 함부로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이다. 비록 비정규직 체제로 인해 갈라지고 때로는 반목하기도 하지만 모든 노동자는 권리를 향한 도정에서 단결하고 연대할 수 있음을 안다. 일하는 모든 이들이 연대할 수 있다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단지 일부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권리가 존중되고,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노동하며, 자율적인 노동과 타인과의 협력을 만드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1. 안정된 고용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파괴한다.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면 누구라도 계약해지 당하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2. 차별은 노동자의 존엄을 파괴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직무나 고용형태, 성별과 국적, 연령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되며, 특정한 성과 연령을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아서도 안 된다.

3.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이유로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의 자율성을 빼앗아 시키는 대로만 하게 하거나, 보조업무만 하게 하거나 다른 이들의 일을 함부로 떠넘겨서도 안 된다.

4. 진짜 사용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얻으려는 자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들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5.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노동자, 문화예술노동자, 가사노동자, 실업자와 구직자, 해고자 모두 노동자로서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가 있다.

6. 누구나 생활할만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최저임금이 생활할만한 임금으로 인상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

7.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가 있어야 한다. 적정한 휴가와 휴식시간을 누리고,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살 수는 없다.

8. 노동자는 죽지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는 안전장치를 해야지 비정규직을 투입하면 안 된다.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언제라도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9.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장시간 노동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죽음을 부르는 야간노동과 24시간 노동, 강제잔업과 특근은 없어져야 한다.

10. 공간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업무에 필요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쉴 공간도 있어야 하며 밥 먹을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 공간에서 노조 활동도 할 수 있어야 한다.

11. 호칭은 그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반말을 하거나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된다.

12. 노동자는 노동권에 대해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업무와 고용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고 노동통제구조에 개입하고 바꿀 권리가 있다.

13.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다.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험 적용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실업을 당했을 때 실업부조도 제공되어야 한다.

14. 일자리를 구하고자 할 때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민간파견업체에 돈을 내지 않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고용안정센터 등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확충해야 한다.

15. 고의가 아닌 모든 손실비용은 사용자가 책임져야 한다. 과적벌금, 손해비용을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대납제도도 없어져야 한다.

16. 노동자는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17. 비정규직도 스스로를 대표할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의 향상을 요구하고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교섭하는 모든 권한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에게 있다.

18. 노동자들은 위계와 경쟁을 거부하고,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정치적으로 나설 권리가 있다. 이것은 어떤 이유로도 제한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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