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장과 KBS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금수 한노사연 명예이사장이 올해 초 출간한 <세계노동운동사> 1,2,3권 (후마니타스 2013년)은 자신의 표현대로 6년간에 걸친 집단적 노력의 성과임에 틀림없다. 한 때 민주노조운동을 내부적 위기로 몰아넣었던 노사정타협 문제의 한 당사자로서 불가피하게 연루된 정치적 지향과 노선에 대한 침묵은 차치하더라도, 노동운동의 원로가 보여준 세계노동운동사에 대한 열의와 그 성과물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1,800쪽이 넘는 방대한 연구 결과물은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다. 저자의 겸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이 저작을 발제문 요약 또는 연구노트로 규정한다면, 이에 대한 비판이나 서평이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수년간의 노력이 구체적 결과물로서 책의 형식으로 출판된 만큼, 그 형식보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춰 실망스럽거나 우려스런 지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총론적 비평 - 몇 가지 문제점을 중심으로
둘째, 저술 자체의 포괄시기가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는 1945년으로 한정됐다. 그 결과 현재의 국내외 노동(조합)운동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에서 비껴나가, 현실과 유리된 과거사 기술로 머문 한계를 노정했다. 물론 저자는 4권을 준비 중이고, 자료문제로 1970년대까지 다룰 예정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사회주의의 파산과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중투쟁의 실패로 야기된 노동(조합)운동의 해체적 위기 속에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전후 냉전체제 시기의 노동운동과 그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벌어진 노동의 대후퇴 30년의 역사가 빠진 세계노동운동사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고, 현실운동에 대한 함의를 도출하기 힘들다. 비록 저자가 E.H.카를 인용하여 ‘현재와 과거의 대화’로서의 역사를 강조해도, 문제의 핵심은 빠져있다.
셋째, 이 책은 원자료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 포괄한 장구한 시기적 흐름과 전 지구적이라 할 만한 광범한 공간적 범위는 명백히 접근법상의 강점임에 틀림없지만, 원자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냉정한 비판을 결여한 기술적 서사(descriptive narrative) 중심의 접근방식은 의도하지 않게 왜곡으로 귀결된다. 예를 들자면, 특정 시기에 노동조합의 발생에서 시작한 노동운동이 전국적 노조(산별 또는 직업별)나 중앙(총연맹)의 건설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일정한 법칙성이 존재하고, 각 나라별로 또 시기적 특성에 따라 독특한 유형의 조합운동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대부분이 결과로서만 주어지거나,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편의적으로 기술되는 낡은 방법론이 여과 없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가 밝힌 대로, 다른 추가적 서적과 자료를 참조했다고 하지만, 1980년대 소련방 과학아카데미 산하 국제노동운동연구소가 발간한 <국제노동계급운동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20세기 후반의 사회운동론이나 수정주의적 역사기술 등, 보다 진일보한 접근방법론 이전의 이데올로기 편향적 저작에 대한 비판적 분석능력의 부재가 낳은 문제는 이 책의 가치를 현격하게 떨어뜨린다. 차라리 분량은 적더라도, 보다 최신의 연구방법론과 연구결과를 정리한 역사기술이 보다 정확하고 바람직한 방식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저자가 자기의 방법론으로 언급한 맑스주의 자체도 문제다. 저자의 주장대로 노동운동의 역사기술에 맑스주의적 방법론은 불가결하다는 점에는 별달리 이견이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자가 말하는 맑스주의는 엄밀한 비판과 자기비판을 본령으로 하는 맑스주의와는 거리가 아주 먼저 소비에트 맑스주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표현을 빌자면 속류 맑스주의일 뿐이다. 정치적으로는 주류 공산주의(속칭 스탈린주의)의 관점을 지칭하며, 저자가 소련과 스탈린을 합리화하는 과도한 표현을 배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에트 맑스주의에 가해진 여러 가지 비판, 즉 경제결정주의와 계급환원주의, 과도한 정치주의, 모든 것이 공산당의 승리로 귀결되는 승리사관, 타 정파에 대한 배타적 배제와 종파주의 등의 문제가 거의 걸러지지 않았다. <국제노동계급운동사>의 이데올로기적 기조인 네오스탈린주의(브르주네프주의)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 비판이 없다면, 소련 저작과 그 방법론에 대한 의존은 자칭 과학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더라도 유의미한 역사로서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셈이다.
<약사>와 <국제노동계급운동사>에 대하여
<세계노동운동사> 전3권의 이론적 또는 방법론적 토대가 되는 준거저작은 윌리엄 포스터(William Z. Foster: 1881-1961)의 <세계노동조합운동 약사>(Outline History of the World Trade Union Movement, International Publishers, New York 1956)와 소련방 아카데미 산하 국제노동계급운동연구소의 <국제노동계급운동사>(The History of International Working Class Movement)이다. 영국 노동조합운동사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G.D.H. 콜의 페이비언주의적 <영국노동조합운동사>를 제외하면, 총론적 저작이 거의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약사>와 <운동사>는 노동운동에 대한 거시적 접근에서 중요한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두 저작은 정파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저작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고, 특히 공산주의 체제/운동의 몰락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결코 기준저작이 될 수 없다. 실패한 운동의 역사를, 그 이전의 승리주의적 관점에서 기술된 극히 주관적 저작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먼저, 윌리엄 포스터의 <세계 노동조합운동 약사>는 엄밀한 역사서라기보다는 활동가 교양용 대중서에 가깝다. 미국 토양의 노동운동에 뿌리박은 생디칼리스트에서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자로 변신한 포스터의 시각은 한마디로 스탈린주의 그 자체이며, 대중적이고 평이한 서체로 거대한 운동의 역사를 기술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편향적이고 종파적인 저작이다. 따라서 혁명적 생디칼리스트이자 철저한 공산당원으로서, 또 냉전시기 공산당 대선후보로서, 즉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활동가로서 그를 평가하는 것과, 그의 교조적 입장에 따라 기술된 저작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별개이다.
<국제노동계급운동사> 역시 저자의 주장대로 어떤 국제노동운동사의 기술에서도 필수적인 참고문헌이다. 1980년대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산하 국제노동운동운동 연구소 소속 30여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참여해 전 6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저술한 이 책은 자본주의의 발생에서 1980년대까지 포괄하는 노동운동 역사서로 발행됐다. 당시 소련의 국제적 영향력과 소련공산당의 국제운동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등으로 인해 이 저작은 절대적 권위가 됐다.
그러나 이 책은 소련 공산당(CPSU)의 기조, 즉 브레즈네프주의(또는 네오스탈린주의)의 관점에서 기술됐고, 따라서 냉전체제의 평화공존 국면에서 미소대결 중심으로 자본주의와 그 속에서 노동운동을 이해한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 노동운동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왜소화되고, 흐루시초프의 평화공존론을 수용한 상태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간의 평화적 공존과 경쟁 속에서 궁극적으로 비폭력적 세계혁명(즉 소련의 팽창을 통한 사회주의의 모범 확대)을 통해 세계의 사회주의화를 암묵적 전제로 했다.
역사적으로 되돌아볼 때, 1989-1991년 러시아와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로, 소비에트 맑스주의 자체의 몰락과 해체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전제까지 역사적으로 실천적으로 거부당하거나 최소한 정치적 시험으로부터 복원되지 못했다. 따라서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자료이자 그 중에서 그 규모와 범위에서 형식상 중요한 역사적 저술이지만, 연구자의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그 내용에 대한 비판적인 독해와 냉정한 재평가, 또는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자면 해체적 독해가 필요이다.
그러나 저자는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한 과장,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지나친 낙관 등 주변적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근본적인 방법론이나 전제, 특히 일반적으로 맑스주의로 이해되는 속류 맑스주의에 대한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다. 저자의 주장대로 “맑스주의적 역사인식을 배격”할 필요는 없지만, 그 맑스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 문제제기가 없다면, 저자의 노동운동 내 정치적 행보와는 전혀 관계없음에도, 그를 자신의 표현대로 “맑스주의자”, 더 정확하게 (네오)스탈린주의자로 봐야 하는 기이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생디칼리즘에 대하여
노동(조합)운동은 생산/경제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와 사회의 조건에 따라, 수직적으로는 기층현장에서 전국적 또는 국제적 지도부까지, 수평적으로 수도나 주요 공업중심지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다양한 공간에 물리적으로 존재했었다. 동시에 각국의 다양한 전통을 반영했고, 정치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정파들의 경쟁과 내부투쟁으로 점철됐다. 따라서 노동운동사는 역사적 시공간 속에서 자본에 맞선 투쟁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전략과 운동/투쟁의 기록이다.
그러나 속되게 역사는 승자의 손으로 쓰여진다고 했던 것처럼, 맑스주의를 독점한 국제공산주의운동(International Communist Movement), 즉 러시아혁명과 소련에 기반한 주류 공산주의 운동/체제의 주도권이 확립되면서, 주류에 비판적인 많은 비주류/소수파 운동이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그들에 대한 정치적, 물리적 탄압 외에도, 역사에서 그 존재마저 부정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아나코-생디칼리즘 또는 혁명적 생디칼리즘이다.
<운동사>는 전반적으로 맑스-레닌주의라는 이름 아래,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세력이자 경향인 무정부주의와 생디칼리즘에 대해 적대적 태도로 일관한 주류 공산주의의 기조를 여과 없이 유지했다. 이는 에스파냐 내전(1936-39)에 대한 기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추가적 자료를 통해 외형상 균형을 맞춘 듯한 기술이 이어지지만, 사실상 중대한 왜곡을 범한다. 특별한 규정 없이 기술된 전국노동조합(CNT)는 아나코-생디칼리즘 조직으로서 내전 당시 200만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노동조합운동의 주류로서 내전 속의 사회혁명을 주도한 혁명적 세력이었다. 인민전선(Popular Front)의 주력으로서 150만명의 조합원을 가진 사회당계의 노동총동맹(UGT)는 후발 주자로서 사회당의 개량주의와 연결돼 있었다. 그리고 인민전선을 유일하게 지지했던 소련의 권위에 힘입어 소정파에서 핵심정파로 성장한 에스파냐 공산당의 시각을 여과 없이 기술한 것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코민테른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딜레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련공산당은 <국제노동계급운동사>를 하나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제출했지만, 국제공산주의운동사는 정리하지 못한 채 역사의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과연 공산주의운동이 그들의 이상인 공산주의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영역이고, 프랜시스 후쿠야마식 승리주의에는 그 냉정한 평가를 위한 손톱만큼의 틈도 주어지지 않지만, 과거 일정 기간 동안 공산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과 수많은 대중의 희망, 인류미래의 희망이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러시아혁명에서 사회주의체제의 해체에 이르는 거대한 흐름을 포괄하는 엄밀한 공산주의운동사는 개인이나 소집단의 능력범위를 넘어서지만, 주류 공산당이 주도한 <운동사>를 규정하는 당사관(黨史觀)의 맹목적 승리주의가 은폐한 공산주의의 딜레마가 존재하며, 이는 노동운동의 기술에서 반드시 지적되어야할 부분이다. 한마디로, 대문자 공산주의운동은 노동자투쟁의 힘으로 노동(조합)운동을 장악하지 못했다. 냉전시기 공산당계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제1노총(CGIL과 CGT)은 현장투쟁이나 경제투쟁의 성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정치투쟁(또는 무장투쟁)의 조직적 결과였다. 이른바 통합노총 모델의 경우 공산당의 노동운동개입은 소수파운동에 한정됐다.
게다가 냉정히 평가해서, 주류 공산주의 운동은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노동조합에 대한 언급을 모은 훈고주석식 글모음 이외에 노동(조합)운동론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즉 역사적 현실 속에서 노동운동을 급진화시킬 전략을 제대로 마련하지도, 또 실천하지 못했다. 개량주의와 타협주의로부터 노동조합운동을 급진화하려는 공산주의 활동가들의 노력은 결코 폄하해서는 안되겠지만, 오히려 수많은 현장에서 무수한 박해와 탄압 속에서 투쟁한 그들의 투쟁과 노력을 위해서라도, 현장의 투쟁과 활동을 기록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이 바로 주류 공산주의운동의 결정적 취약점임과 동시에, 근본적인 역설이자 딜레마였다.
이런 딜레마를 집약한 것이 바로 코민테른의 해산이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을 체현한 국제혁명조직으로서 코민테른 운동은 수많은 논란과 쟁점을 수반한 과정이었고, 그 해체 역시 그러하다. 1943년 스탈린은 2차 대전 와중에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성숙을 이유로 해체를 지시하고 소련외교의 도구이자 수직적 관료주의로 퇴화한 코민테른 조직은 반파시즘 국제동맹의 희생물로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운동사>는 짤막한 장에서 해산과정을 다루면서, 해산을 둘러싼 상반된 여러 입장의 열거에서 멈췄다. 거기까지다. 코민테른 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 의의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자기비판이 실종된 상태에서 강행된 해산과정이 <운동사>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위하여
노동자투쟁과 노동운동 역사의 기술 역시 노동운동의 위기와 더불어 슬며시 실종되고 있다. 계급형성이 자폭하는 와중에 아무것도 온전할 수 없겠지만, 노동이 근본적으로 거부당하고, 노동조합이 편협한 부문적 이익 외에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은 계급해체와 또 다른 역사적 종말을 재촉하고 있고,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로자 룩셈부르크식 계급적 선택을 존재냐 부재냐의 햄릿식 실존적 선택으로 몰아가는 종말론적 국면이 우울한 현실이다.
<국제노동계급운동사>는 국가적 사업이었다. 아니 국제적 사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소련공산당(CPSU)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역사였다. 당관료들과 관변학자들의 합작품이었다. 따라서 기층에서 현장을 지킨 노동형제자매 활동가들의 투쟁이 당의 노선과 전략의 이름 아래 매장된 위로부터의 역사였다. 거기에는 형이상학적 좌우편향은 존재할지언정, 엄밀한 자기비판과 냉정한 평가는 없었다.
냉혹한 자기비판과 발본적 성찰이 없는 역사기술은 언제나 누군가의 변호론으로 전락한다. 위기에 처한 남한 노동운동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주관적 의도와 무관하게, 또 수년에 걸친 노력과 인적, 재정적 투여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관점과 정치적 과시욕이 결합된 프로젝트의 결과는 노동운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적 네트워크와 우연적 권위의 힘이 없다면, 초보연구자마저 무시해도 좋은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김금수 명예이사장의 <세계노동운동사>가 이룩한 성과(?)는 문제의 핵심에 비껴나 있다.
더불어 저자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침묵 또는 불언급 외에도, 1990년대 초반 민주노조 진영 내에서 한국노총에 반대하는 민주노조 진영의 대안적 노총 설립에 반대, 노사정위원회 참여 등 세칭 개량주의의 행보에 대한 서평자 또는 소개자들의 집단적 침묵 역시 대단히 불편하다. 노사정 계급협조주의에는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 하더라도, 불행하게도 남한의 지배블록이나 자본은 전혀 그럴 의사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과연 그런 접근이 노동운동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노선배의 노력에 대한 찬사로 일관하는 이른바 네트워크 서평은 현재 노동운동의 처한 위기와 아무 연관이 없을까?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 계급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기술되어야 하고, 공산주의 운동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한 역사적 주기가 종결된 지금, 처절한 패배에 대한 냉혹한 자기비판을 통해서 객관적인 기본 관점과 원칙은 재정리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실종된 계급적 원칙과 이론 사상적 지반을 복원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위한 집단적 공동 작업이자 기억을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
사족
개인적으로 25년전 전진출판사에서 일하면서 <국제노동계급운동사>의 번역-출간을 제안했고, 미완으로 끝났지만 일부 번역작업에 참여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노동자교육센터>에서 세계노동운동사 강좌를 맡아 다시 <운동사>를 들여다보면서, 과거의 구좌파적 미몽을 넘어선 새로운 노동운동사(국내와 국외, 국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