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보내는 편지

[기고] 밀양 송전탑 할매들의 고통과 희망

송전탑 할머니 살려주세요

산속 움막에서
잠결에도 깜짝깜짝 놀라
식은땀에 젖는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다고
여기 산골에 짐승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으니
76만 5천 볼트 고압 송전탑은 안 된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이 없습니다.

돈 400만원 줄 테니
이제 그만 하라고
마을에 몇 억씩 보상이 나간다고
한전은
돈, 돈, 돈만 말합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울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사람은 죽고 싶게 된다고 합니다.

걱정 마세요
마을과 농토를 피해서 갈게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중화 할게요.
이렇게 따뜻한 말로
눈물을 닦아주세요.

힘없고 약한 시골 노인이라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돈에 눈이 먼 자들
막아야 해요.

약한 자들을 짓밟고 서서
한 덩어리가 된 정치, 권력, 자본.
그런 정부 미련 없이 버려야 해요.

귀 좀 기울여 주세요.
산짐승 소리가 아닙니다.
할머니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제 괜찮다고
우리가 함께 하겠다고
손 좀 내밀어 주세요.
당신, 당신, 우리들은
돈이야 없지만
따스한 가슴은 있잖아요.

이게 제 눈물이에요.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살려 주세요.


형, 잘 지냅니까? 근래 쓴 시 한 편 보내며 안부 전합니다.

아침에 마당에 나서니 빗물 받아 놓은 통이며 강아지 물그릇이 얼어 있네요. 지난 밤 산에서 떨며 보냈을 할매들 걱정이 더럭 앞을 가로막습니다.

밀양 송전탑을 막고 있는 할매 할배들은 지금 밤낮 없이 산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76만 5천 볼트 고압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던 지지난해, 나무를 끌어안고 전기톱에 맞서던 그 겨울부터 산에서 보내더니 이제 세 번째 겨울을 산에서 맞고 있습니다. 움막이 있는 곳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비닐로 하늘을 가리며 산 속의 추위와 싸우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며칠 전 상동면 도곡저수지 농성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75세의 할배가 뇌출혈로 쓰러져 대도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부터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습니다.

밀양의 어른들이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다가 ‘왜 송전탑 문제가 생겨났나?’ 하고 뿌리를 찾아가 보니 출발점이 핵발전소였습니다. 부산 기장군에 고리핵발전소 1~4호기가 있고 그 옆에 신고리 1,2호기가 있습니다. 또 그 옆에는 신고리 3,4호기를 건설하고 있습니다.(지난 여름 전력난의 주범은 제어 케이블 시험 성적서 위조로 인하 가동 중단한 신고리 1,2호기 이었지요. 신고리 3,4호기는 전력·제어·계장 케이블의 시험 성적서 위조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인데, 신고리 3호기에 재시험을 통해 새로 설치해야 하는 케이블은 제어케이블 외에도 전력 케이블, 계장 케이블이 있으며, 총연장 90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기다 신고리 5,6호기까지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신고리 핵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한전은 새로운 송전 선로를 건설하게 되었고, 그 피해는 힘없는 농촌 할매 할배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않고 계획 중이라고 하는 신고리 5,6호기를 건설하지 않으면 기존 선로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송전선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밀양 송전탑 공사는 신고리 5,6호기, 또는 그보다 더 많은 핵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전제를 두고 진행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서도 우리는 겁 없는 아이처럼 핵발전소를 만들고 또 만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형, 이제 할매들은 문제의 실체를 알아버렸습니다. 핵발전소 뒤에는 거대한 자본과 권력이 한 덩이로 뭉쳐 있다는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시골의 할매 할배들이 안중에도 없는 것이지요. 돈 몇 푼 더 얹어주면 그냥 끝나는 걸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밀양의 어른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보상을 원치 않는다. 왜? 보상은 답이 아니니까.”

밀양의 어른들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존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기존의 전선을 교체해서 용량을 늘려 보낼 수 있다, 울산-함양 고속도로 공사를 할 때 지중화하는 방법이 있다.’ 송전선이 마을과 농토만이라도 비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민들은 자료를 구하고, 이미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선 곳을 답사해 피해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형, 이런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주민들은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한전 측에는 ‘보상’ 이외에는 어떤 협의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어요. 주민들은 돈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바라는데, 한전은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민들이 보상금 더 받으려고 그런다는 헛소문까지 퍼뜨렸습니다.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그만 진실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송전탑 문제가 아니구나, 그 위험한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는 말이구나,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문제이구나, 우리 후손들까지 껴안고 가야하는 문제이구나.’

할매 할배들은 태어나서 칠십 팔십 평생에 한 번도 당해 본 적이 없는 수모를 이번 싸움에서 몸소 겪었습니다. 자식보다 어린 공사 인부들에게 온갖 놀림과 모욕을 당하면서, 차오르는 분노를 싸안아야했습니다. 이분들이 원하는 건 인간적인 생존과 자신이 뼈를 묻을 땅을 온전하게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뿐입니다. 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들으면 분명 거짓말이라고 할, 소설 같은 이야기가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형, 만약 그들이 어찌어찌해서 밀양에 송전탑 몇 개를 더 세운다고 해도, 이제는 핵발전소에서 초고압 송전탑을 통한 장거리 송전은 전국 어디에도 불가능해졌어요. 그 일을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해 낸 것이지요.

백화점이나 대기업이 과소비를 부추기듯, 정부와 한전은 우리에게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고압 송전탑이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시선이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문제를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습니다.

형, 지금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정부와 한전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으로부터 포위되어 산 속에서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나요? 어디까지가 대한민국 국민인가요? 11월 30일날 희망버스가 온다는 소식이 들리니 혹 형의 얼굴을 볼지도 모르겠네요. 건강하게 잘 지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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