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오후 3시 76만5000볼트 109번과 110번 송전탑이 지나가는 도곡저수지에 도착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불을 피워놓고 흥겨운 목소리로 ‘뽕짝’을 부르는 할매들의 웃음소리에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자줏빛 조끼에 털모자를 둘러쓰고, 작대기를 두드리며 옛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은 여느 시골마을 풍경 그대로였다.
희망버스가 하나 둘 도착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합원들도 보인다. 모르는 얼굴들이 더 많다.
할매들 뒤에서 뒷짐 지고 계시던 할배들이 트럭에 올라타라고 하신다. 예닐곱 대의 트럭 짐칸에 마을 주민들과 희망버스 승객들이 함께 오른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고불고불 시골길을 오르자 경찰이 보이기 시작한다. 경찰버스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름 잡아도 30여대는 되는 것 같다.
어느 마을 주민이 손짓한다. “경찰들이 새벽에 저 산으로 억수로 올라갔대이. 저그가 송전탑 세울라카는 곳이래이. 우리는 막혀서 한 번도 올라가보지 못했다니까.”
할매들 노랫소리에 긴장은 사라지고
할배들이 어서 가야 해가 떨어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다고 말한다.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뒤섞여 바쁜 걸음을 옮긴다. 70은 넘어 보이는 할매들도 지팡이를 짚고 산길을 오른다. 300여명 가량 되어 보인다. 경찰들은 훨씬 많을 텐데, 마음 한 켠에 걱정이 내려앉는다.
연세가 많으신 주민들은 뒤처지고, 희망버스 승객들이 선두에 선다. 30분 쯤 걸었을까, 경찰이 방패로 가로막는다. 대여섯 명이나 지날까 싶은 좁은 길, 오른쪽은 산등성이이고, 왼편은 낭떠러지다.
위험하니까 길을 비키라는 소리와 경찰의 구호소리, 비탈길로 미끄러진 사람의 비명소리가 뒤섞인다. 산등성이를 기어오르고, 나무와 바위를 넘고 비탈길을 내려갔다고 오르고…. 한참 만에 다시 산에 오른다. 경찰도 우리들 뒤에서 함께 오른다. 산꼬배기를 오르는 힘겨운 등산에 구호소리가 힘차다.
“송전탑을 짓지 마라.” “핵발전을 중단하라.”
한 시간 남짓 지나자 다시 경찰들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숫자가 무척 많다. 큰 바위를 중심으로 비탈길 위에 빙 둘러서서 승객들을 가로막는다.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씩씩한 이들이 앞장선다. 경찰이 가로막고 있지 않은 곳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허겁지겁 경찰이 막으려고 달려간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오른다. 경찰과 희망버스 승객, 주민들이 뒤섞인다. 우리들과 경찰이 같이 산에 오른다.
▲ 밀양 상동면 도곡마을 110번 송전탑 건설 현장에 오르고 있는 희망버스 승객들과 그 뒤에서 함께 오르는 경찰들 |
경찰과 뒤섞여 산을 오르고
정상이 가까워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경찰이 훨씬 더 많아졌다. 여경들도 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산골에는 해가 일찍 떨어지고, 산속은 더 위험하기 때문에 5시 전에는 산을 내려와야 한다고 했는데 걱정이었다.
이 때였다. 마을주민 한 분이 소리쳤다. 바로 이곳만 넘으면 송전탑 공사장이란다. 경찰에 막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단다. 두 눈으로 보기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마지막 힘을 낸다. 여경들에게 잡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젊은 여성을 마을 주민들이 가서 구해온다. 숫자가 훨씬 많은 경찰들이 한 명씩 에워싸고, 풀려나기를 반복한다. 경찰을 피해 산등성이까지 올라간 이들이 송전탑 공사장 철조망에 도착해 소리친다. 마침내 경찰이 철조망 앞까지 밀려났다.
눈앞에 참혹한 공사 현장이 펼쳐졌다. 110번 공사장이다. 아름다운 산마루에 시멘트 덩어리들을 흉물스럽게 자리하고 있었고, 철근 덩어리들이 널 부러져 있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온 네 명의 아주머니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먹인다. 정부와 경찰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통곡한다. 곁에 있던 희망버스 승객들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참혹한 공사현장을 목격한 두 눈에는 눈물이
너무나 고맙다고, 희망버스가 아니었으면 이 참담한 공사 현장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오늘 우리들의 소원을 풀었다고, 이제 더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자고 밀양 어머니가 말한다.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한다. 다음에는 이 공사현장을 꼭 되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송전탑 공사를 반드시 중단시키겠다고 결의한다.
이미 산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산꼭대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앉아계신 할매들의 손을 잡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을 향한다. 110번 현장으로 올라오던 경찰이 산 중턱에 앉아있다. 최루액 발사기가 보인다. 이 순박한 밀양 주민들에게 경찰은 최루액을 쏘고 싶었나보다.
산을 미처 내려오기 전에 완전히 어두워졌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골마을, 앞 사람을 따라 마을에 다다랐다. 분주히 생사(?)를 확인하고 버스를 타고 문화제가 열리는 밀양역으로 향한다. 일흔이 넘은 주민들도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에서 행복한 미소가 퍼진다.
▲ 경찰들 뒤로 110번 송전탑 건설 현장 |
최루액을 들고 산을 오르던 경찰
밀양역은 말 그대로 축제 현장이었다. 열차를 이용하시라는 요청을 뿌리치고 팔순 노구를 이끌고 희망버스를 타신 백기완 선생님의 말씀과 현대차 비정규직을 비롯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감동이었다.
한전과 경찰은 잠자고 밥 먹는 것만 빼고 다 거짓말이라며 송전탑을 죽어도 막을 것이라는 밀양 할매의 절규가 가슴에 오래 사무쳤다. 밀양 어머니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야”는 문화제의 백미였다.
122번 송전탑 여수마을에서, 110번 송전탑 도곡마을에서, 96번 송전탑 동화전 마을에서 밀양 주민들과 희망버스 승객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올랐다는 소식에 밀양역은 떠나갈 듯 환호했다. 저녁식사가 모자라 밥을 쫄쫄 굶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문화제를 마치고 돌아간 마을마다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주민들이 돈을 모아 돼지를 잡아, 김장김치를 내오고,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와 마을회관마다 승객들을 맞았다. 여수 마을회관을 비롯해 12개 마을에서 주민들과 희망버스 승객들이 명절 고향집에 온 것처럼 떠들썩한 밤을 보냈다.
밀양역은 축제 현장, 마을마다 마을잔치
12월 1일 도곡저수지 농성장에는 1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110번 공사 현장을 보고 온 이야기, 지난 밤 마을회관에서 벌어진 잔치 이야기, 경찰들을 골탕 먹인 이야기들이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경찰들과의 실랑이는 아침부터 계속됐다. 한 할매는 밥을 싣고 가는 경찰을 막으면서, “느들도 우리가 밥을 가져가는 것을 막지 않았느냐”며 소리쳤다. 마을에서 내려가는 차는 보내자는 말에 내려가는 놈들도 “애를 멕여야 한다”고 했다.
희망버스가 오기 전에 할매들이 당했던 설움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침식사 중에도, 노래자랑 시간에도 전쟁은 그치지 않았다.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시면서 송전탑을 막으려고 했던 보라마을 결의대회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다. 마을 주민들이 전날 현장까지 올랐기 때문에 오늘은 산에 가지 말자고 하신다. 아무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 즉석에서 마이크를 준비하고 희망버스 승객들과 4개 마을 주민들의 노래 한마당 잔치를 벌인다.
마을 이장님과 어르신들의 고맙다는 말씀과 다시 찾아오겠다는 희망버스 승객들의 다짐이 이어진다. 공사가 본격화되는 내년 봄에 더 큰 희망버스를 타고, 반드시 공사를 막아내기 위해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다.
▲ 12월 1일 아침 도곡저수지에서 마을 주민들과 희망버스 승객들의 노래한마당(1) |
“내년 봄에 밀양 희망버스 다시 올게요.”
전날 송전탑까지 오르신 고답마을 조복년 어머님의 신나는 뽕짝 노랫가락에 함께 모인 300여명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희망버스 승객들은 하모니카와 태평소 연주로 화답했다.
스물에 시집 와서 아흔이 되도록 밀양에서 살고 계신 할머니가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시더니 말씀을 하신다. 마이크를 잡기도 힘든 할머니는 내가 죽었으면 이 꼴을 보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아름다운 마을을 제발 그냥 놔두라고 절규하신다.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또 다른 할머니도 나오신다. 열일곱에 시집와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더니 노래를 한 자락 하신다.
‘도곡 노래자랑’의 절정은 마을의 조용필로 불리는 할매의 단독 콘서트였다. 할매는 내리 다섯 곳을 불러 마을 전체를 ‘들었다 놨다’를 계속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할머니 옆에서 춤까지 추며 앵콜을 외쳤다. 뒷짐 지고 할머니들의 노래자랑을 보는 할아버지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즉석에서 도곡 4개 마을과 희망버스의 자매결연이 이뤄졌다. 서울, 경기, 충남, 충북, 강원 희망버스 승객들은 2차 희망버스가 오기 전에라도 마을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낭독한 후 희망버스 승객들은 주민들에게 “우리가 밀양이다”라고 쓰인 손수건을 목에 걸어드렸다.
희망버스와 마을 자매결연
마을의 젊은이(?)들은 버스를 타고 보라마을로 향하고,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이 농성장을 지킨다. 두 손을 꼭 잡고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고향에 온 자식과 손주들을 떠나보내시듯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안아주신다.
어느 어머니께서 부르시더니 먹을 거라며 비닐 하나를 건넨다. 노래자랑 끝나고 급히 집에 다녀오신 모양이었다. 보라마을에서 마지막 결의대회를 마치고 눈물을 훔치는 할매들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술안주를 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비닐을 꺼냈더니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흑마늘이라며, 고생 많이 했으니까 힘내라고 하신다. 흑마늘은 금세 동이 나고,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희망버스는 가슴 아프지만 행복했던 1박 2일 이야기꽃을 피운다.
▲ 12월 1일 아침 도곡저수지에서 마을 주민들과 희망버스 승객들의 노래한마당(2) |
고향에 온 손주들을 떠나보내듯
2011년 6월 11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살리고,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희망버스는 쌍용차와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로 이어졌고, 밀양 희망버스를 만들어냈다.
밀양에서 만난 어느 환경운동가는 노동과 환경이 처음으로 만나는 희망버스가 너무 설레고 가슴이 뛴다고 했다. 후쿠시마 사고 때문에 환경 문제에 대한 노동자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고등어와 생태, 해산물은 사먹지 않으면서 핵발전소와 송전탑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온몸으로 송전탑 공사를 막아내면서 현대차 울산공장, 쌍용차 평택공장을 찾았던 밀양 주민들이 없었다면 노동자들이 참여한 희망버스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밀양이 아니었다면 노동자들도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 환경 문제로 희망버스에 오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오작교가 되어 노동자와 환경을 이어준 것이다.
지난 11월 1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선거에 출마한 다섯 명의 후보들은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밀양 송전탑 저지를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하며 “환경과 노동을 함께 실천하는 노동운동 풍토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했다. 이들은 △핵발전소 추가건설 반대 △밀양 주민들의 생존권 사수 투쟁지지 △핵 없는 세상을 위해 적극 연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밀양 희망버스에 현대차 비정규직, 쌍용차 노동자들을 비롯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했고,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 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관심은 공장 담벼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밀양은 노동과 환경을 이어준 오작교
부산, 울산, 창원, 경주, 포항 등 노동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들은 핵발전소에서 100km 내에 있는 곳이다. 후쿠시마의 갑상샘 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7배 높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250㎞ 가량 떨어진 도쿄만 하구에서도 고농도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을 정도다.
밀양 희망버스를 계기로 노동자들이 핵발전과 송전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노동조합 간부들 수련회를 밀양 마을회관에서 하고, 주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핵발전소에 인접해있는 노동자 도시에서부터 핵발전소와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노동자 선언을 받고 이를 전국으로 확산해보면 어떨까? 공장에 핵발전과 송전탑에 반대하는 현수막도 붙이고, 노조 소식지에 알리는 것도 좋다.
조합원들에게 모금을 해서 밀양을 방문해 전달하고, 마을별로 자매결연을 맺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런 마음들이 모인다면 얼음이 녹고 송전탑 공사가 본격화될 때 다시 출발할 밀양 희망버스는 훨씬 풍성하고 아름다운 버스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