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는 불안을 먹고 자라난다

[기획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3)

[편집자주] 프로젝트 <그날들>은 60여 개 단체들이 참여하여 2013년 기억해야 할 인권의 날들을 모은 프로젝트입니다. 모두 89개의 날들이 모여 소책자와 인터넷 타임라인(hrnet.jinbo.net/thedays2013)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민중언론 <참세상>과 함께 기획하는 연재 [인권의 날들을 기억하라]는 위와 같이 모인 인권의 날들에서 출발합니다. 흩어진 날들에 대한 기억을 넘어 2013년 인권 현실을 되돌아보며 주목해야 할 흐름을 5회에 걸쳐 짚어보고자 합니다.

"서교동주민자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5월 31일 불법행사를 성소수자들이 감행한데 대해 놀라웠다'며...마포구청에 제출한 건의서에 따르면 '지난 5월 31일 성소수자 행사 이후 자식들 버린다고 주거지를 옮기겠다는 학부모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지난번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성소수자 현수막 설치를 마포구에 이행하도록 했는데 두번다시 이같은 권고를 한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은 인정할 수 없고 성소수자만의 인권이 있고 마포 40만 구민들은 인권이 없는지 인권위원회에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이에 마포구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는 성소수자 단체 행사 반대 건의서에서 '마포구청 관내 성소수자 단체의 홍보를 위한 행사 장소 사용을 절대로 허가해서는 안될 것이라'라고 밝힌 바 있다"_2013.12.16일자 마포신문에서 인용

지난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2013년 한 해의 주요 인권 이슈들을 모아 <프로젝트 그날들>을 진행했던 인권 활동가들은 올해의 중요한 인권 키워드로 '종북'과 '혐오'를 꼽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종북', '종북 빨갱이', '좌좀(좌빨좀비) 같은 단어들이 무수히 언론에 오르내렸고, 우리는 '동성애 반대', '다문화 반대', '김치년', '홍어', '전라디언' 같은 언사들을 곳곳에서 접해야 했다. 심지어 '종북'과 '동성애 혐오'가 하나된 '종북게이' 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제 혐오는 더 이상 온라인 공간이나 개인들의 불만에 머물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욱 조직화되며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자회견이나 일인시위, 거리캠페인, 단체행동은 물론이고 대대적인 온라인 서명운동과 신문광고도 열심히 활용한다. '동성애', '다문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바탕으로 이들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법 제정이나 정책 시행을 막고, 더 나아가 일부 단체에서는 이주민이나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법 제정까지 준비하고 있다.

  자료사진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이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무시하면 그만이었던 존재들이 점차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동등한 권리를 획득하게 될수록 혐오 또한 더욱 가시화되고 조직화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비단 개인들이나 특정 집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혐오가 조직되고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정치적, 사회적 배경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달았다는 댓글들의 내용과 지만원의 시스템 클럽, 일베 게이(일베 용어, '게시판 이용자'의 줄임말)들의 글, 거리나 지하철, 버스에서 만나게 되는 할아버지들의 대화가 똑같은 논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 조갑제가 박근혜의 대통령 선거 승리 공신 중 하나로 일베를 꼽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종북 좌빨놈들'과 함께 '~녀/년들', '동성애자', '다문화', '조선족', '병신', '전라도 놈들'은 이들에게 일맥상통하는 공통의 혐오대상, 척결대상이다.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종북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이제 '사회적 소수자'들은 이들의 개념장 안에서 새롭게 '불법적 존재들'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현재 한국사회의 혐오를 그저 두고볼 수만은 없게 만드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혐오들은 무엇으로 작동되고, 조직화되고 있나.

혐오 속에 내재된 신자유주의 가부장 사회의 불안들

혐오의 가장 중요한 뿌리는 '불안'이다. 현재 한국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극단적인 혐오들 역시 결국 궁극적으로는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불안들은 '남성의 불안', '윤리의 불안', '민족 정체성의 불안', '내 일자리에 대한 불안' 등 여러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그 내용을 모아 보면 결국 이는 '가부장적 질서와 윤리에 대한 불안'이 '삶에 대한 집단적인 불안'과 연결되어 형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다문화'를 혐오하는 이들은 이주노동자, 결혼이주 여성들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며 '빨갱이에 나라를 빼앗기는 것이나 동남아 외국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것이나 그것이 그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으로는 '기왕이면 양질의 외국인들을 수입해야 한다'고도 한다. '민족의 혈통'을 내세우는 다분히 우생학적인 이 논리는 '해외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즉, '동남아'나 '조선족' 이주민들과 결혼해 '혼혈종'을 낳으면 민족의 혈통이 무너지는데 그나마 한국 여성들은 해외로 성매매를 나가 '혈통을 잇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나라망신이나 시킨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민족'을 내세워 이주민과 여성들을 혐오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는 '한국 남자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불안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즉, 이들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여자를 소유하는 이주노동자 남성, 한국 여자들과의 결혼시장에서 실패해 동남아 여성들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 한국 남성들 두고 외국 가서 성매매하는 여성들은 '한국 여성의 소유자로서의 한국 남성'이 그 지위를 박탈당하고 있는 상징처럼 여겨져 이에 대한 불안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 혐오와 여성 혐오는 이 지점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남성연대'와 '일베'에서는 남성 지위에 대한 불안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김치년'들을 욕하는 게 일상인 '일베'에서도 고민상담 게시판에는 자신의 스펙이 여자들에게 먹힐지 평가해 달라는 글이 수두룩하다. '김치년'을 욕하는 속내에는 돈과 스펙을 갖추지 못하면 여자들과 연애조차 할 수 없다는 자기비하와 낮은 자존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화살은 '김치년' 혐오로 향한다. 그런가 하면, '남성연대'를 지지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연대'와 성재기 전 대표는 여성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힘없는 남성들을 대변하는 '강한 남성'으로 추앙된다. 성재기 전 대표의 한강 투신 퍼포먼스는 후원을 조직하기 위해 이 추앙받는 남성성을 가장 극대화해서 보여 주어야 했던 이들의 불안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한편 언뜻 보기에 전혀 다른 맥락인 것 같아도, '내 아들 ~되면 책임져라', '며느리가 남자라니'와 같이 알고 보면 동성애 반대 단체의 피켓 문구에서도 90%이상이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로 채워져 있다. 이 역시 남성성, 남성 지위에 대한 위기와 이를 통해 유지되어 온 가부장적 가족 질서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 가부장적 절대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는 보수 기독교는 이 위기의식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위기와 불안을 초래하고 있는 원인이 사실은 '동성애자', '다문화', '김치년', '전라도 것들'이 아니라 정작 그들이 기반하고 있는 보수 기득권과 정치권, 자본가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이윤 중심, 무한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의 질서는 이제 이 가부장 사회 내의 남성들조차 끊임없이 경쟁하지 않으면 기존의 권위와 사회적 위치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기득권층 남성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권력과 시스템을 탓하는 순간, 자신은 이 무한경쟁 사회에서 홀로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도 아니고 시스템도 아닌, '윤리'와 '국가'와 '민족'을 내세워 이 불안과 분노를 쏟아낼 혐오의 대상을 찾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권위 있는 자들과 기득권층,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 역시 이들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는 대신 끊임없이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다른 세력들'을 향하게 만든다. 그 세력들이란 바로,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 억울함에 맞서 싸우는 이들,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다. 사회적 위기감과 불안이 심화될수록 위정자들은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에 맞서 함께 싸우는 대신, 사회적 소수자들이 비로소 쟁취해낸 권리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투쟁을 자신의 불안이나 불행과 견주어 혐오하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조직화된 혐오'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인 것이다.

혐오의 조직화를 넘어서기 위한 인사를 서로에게 건네자

물론 각각의 대상에 대한 혐오는 하나의 맥락으로만 뭉뚱그릴 수 없는 각기 다른 불안과 윤리적, 사회적 맥락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혐오의 맥락은 각기 달라도 혐오의 조직화는 매우 정치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나치 시대의 인종 청소와 동성애자 학살이 그러했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최근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을 제정해 동성애를 탄압, 처벌하고 있는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경제적 위기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강력한 가부장적 권력에 기대게 될 때,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조직화된 혐오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대의 보수 세력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 공안기구가 이 가부장적 절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는 이제 극단화된 혐오의 시대를 맞이할 것인지 혹은 혐오로 표출된 불안들을 다른 곳을 향해 분출시킬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확산되고 있는 '안녕들 하신가요'라는 안부의 인사가 개인들의 불안이나 정치적 호소를 넘어, 차별과 혐오 속에 존재해 왔던 서로를 확인하는 더 세심한 인사로 확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비혼모, 노인, 청소년, 어린이, 성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안녕하지 못한 이유가 더 다양하게,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를 바란다. 혐오의 조직화와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정치적 시도들을 넘어서는 일은, 타인의 삶 속에서 자기 삶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연재순서>

- 박근혜 정부 1년, 한국사회의 인권현실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 ‘종북’, 공안기구가 만들어낸 억압과 자유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 차별과 혐오에 맞서 평등을 예감하라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 대자본의 권력 아래 짓밟히는 노동의 권리 :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 연대, 오래된 말 속에 담긴 새로운 기운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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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 동성애 ,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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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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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이보시오. 나영 씨, 알지도 못하는 사실 함부로 왜곡하지 맙시다.

    성재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남성연대'를 지지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연대'와 성재기 전 대표는 여성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힘없는 남성들을 대변하는 '강한 남성'으로 추앙된다." 가 아니라

    힘없는 남자들의 목소리를 유일하게 대변하는 사람이라서 추앙받는 것입니다. 사실관계 똑바로 확인하고 기사를 쓰세요. 성재기가 남자다워서 존경하거나 추앙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성재기가 남자다워서, 마초적이라서 추앙하는게 아닙니다.

  • 지나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성재기가 언제 가부장제 옹호한 줄 아십니까? 성재기가 언제 마초주의를 옹호한 줄 아십니까? 성재기가 쓴 글 한번이라도 읽어본 적은 있나요?

    남자들도 눈물흘릴 수 있어야 된다, 남자들도 아프고 힘들다고 말한게 마초주의나 가부장제입니까? 남자들에게만 책임감과 희생을 강요하고 남자들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요구한다는 지적이 가부장제나 마초이즘입니까? 비난을 하려면 뭐좀 똑바로 알아보고 나서 비난하시던가. 이런 식의 기사를 쓰는 그대들이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기독교인들과 다른 점이 뭐요?

    당신들이 성재기나 남성연대에 대해서 편견을 갖는 것과, 보수 기독교 세력이 편견을 갖는게 다른 점이 뭡니까? 다른점이 뭔데?

    그런식으로 당신들도 누군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들만의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사람들이 과연 상대방의 색안경을 비난할 자격은 됩니까?

    성재기씨가 평소 성 소수자들도 부당하게 탄압받는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게 죄취급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을 알기는 합니까? 남탓하지 마세요. 당신들이 성재기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이상 당신들은 보수세력과 기독교의 편견을 비난할 자격 없습니다. 이념 사상 지향점만 다르지, 당신들도 그들과 똑같습니다.

  • 지나가다

    네. 동성애자나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이민자들을 이유없이 미워하고 따돌리는 것은 죄악 맞지. 그런데 말입니다.

    자칭 진보라는 분들도 머리속에 지식이 든 것을 이용, 서민이나 중산층들, 빈민들을 은연중에 멸시하고 무시하면서 왜 서민, 빈민, 중산층들이 당신들을 혐오하는 것만 잘못이라고 우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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