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원합의체 판례는 종전 대법원 판례를 후퇴시키면서 현재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인 대부분의 통상임금 소송을 일거에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노동현장의 임금지급실태 및 관련 규정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대법원이 이번에 정한 기준에 따를 경우 향후 통상임금 소송(정기상여금 포함)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즉, 이번 전원합의체 판례는 자본 진영의 이해를 100% 이상 수용한 것이다. 이하에서 핵심적인 문제점을 정기상여금, 복리후생비 그리고 고정성요건(재직요건)으로 나누어 검토한다.
▲ 자료사진 [출처: 미디어충청] |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이번 판결에 대한 자본진영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법원이 마치 ‘모든’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인정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이를 전제로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진영이 판결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이를 왜곡하여 향후 진행될 임금체계 개편에서 자본 측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근로의 대가로서의 임금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모두 구비해야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그 중 고정성과 관련해 “특정시점에서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 임금”은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아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는데, 이는 복리후생비 뿐만 아니라 정기상여금에도 해당한다.
즉 대법원은 ‘모든’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한 것이 결코 아니다. 특정시점(상여금 지급일을 말한다)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은 고정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보면서 “단, 특정시점 이전에 퇴직하더라도 그 근무일수에 비례한 만큼의 임금이 지급되는 경우에는 근무일수에 비례하여 지급되는 한도에서 고정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제1판결 정기상여금사건”의 경우 “상여금 지급 대상기간 중에 퇴직한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무일수에 따라 일할 계산하여 지급”한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위와 같은 판시는 노동현장의 단체협약이나 임금지급 관행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사실상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각 사업장의 소송제기 여부를 불문하고 “특정시점 이전에 퇴직하더라도 그 근무일수에 비례한 만큼의 임금이 지급되는 경우에는 근무일수에 비례하여 지급”되는 것으로 단체협약에서 정하고 있거나 노동관행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중 이에 해당하는 케이스는 거의 전무하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에 대해 위와 같은 기준을 설정하면서 현재 계류 중인 사건의 현황 및 노동현장의 단체협약 및 임금지급 관행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오로지 법리적인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선해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결국 대법원의 위와 같은 고정성과 관련된 해석기준은 노동현장의 단체협약 및 임금지급 관행에 비추어 아주 이례적인 정기상여금의 경우에만 통상임금이라고 인정해 정기상여금 관련 현재의 통상임금 소송을 일거에 진압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소송도 사실상 어렵게 했다.
신의칙에 의해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에 기초한 추가임금 청구제한
다수의견(덧붙임(1), 아래 덧붙임 참고)은 "이번 판결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가 무효임이 명백하게 선언하기 이전에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등을 정하였는데, 근로자가 그 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임금을 청구할 경우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될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사정이 인정된다면, 추가임금의 청구는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신의칙에 의하여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추가임금소송을 사실상 어렵게 했다.
이에 대하여 대법관 이인복, 이상훈, 김신의 반대의견(이하 ‘반대의견’)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으로 당혹감마저 든다. 그러나 거듭 살펴보아도 그 논리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사용자의 경제적 어려움도 근로자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사용자의 경제적 어려움은 근로조건의 설정과정에서 근로자의 이해와 양보를 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언정 이미 정해진 근로조건에 따라 사용자가 이행하여야 할 법적의무를 면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한다.
다수의견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무효를 주장함으로써 근로자가 얻는 것이 ‘예상외의 이익’이라고 하면서 이를 신의칙 위반의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지적하듯이 근로자가 초과근로를 함으로써 얻는 초과근로수당청구권은 근로기준법이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근로자의 권리이다. 예상외의 이익, 즉 뜻밖의 횡재가 아니다. 근로자가 과거에 마땅히 받았어야 할 것을 이제 와서 받으려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근로기준법이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서도 박탈하지 못하도록 굳이 강행규정을 두어 보장한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이다. 근로자가 받았어야 할 임금을 예상외의 이익으로 취급하여 이를 되찾는 것을 정의와 형평관념에 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의 관념에 반한 것이다.
한편 다수의견은 ‘법정수당의 추가 지급으로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함으로써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신의칙 위반의 또 다른 요건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지적하듯이 이러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는 모두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도대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그러한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이처럼 모호하고 불명확한 기준을 신의칙의 적용 요건으로 보게 되면 근로기준법상 보장되는 권리가 사업장이나 개개 소송마다 달라질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이는 곧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에게 고루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가 형평에 맞지 않게 인정되거나 부정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혹자는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신의칙 요건을 검토해 그 허점을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하나, 현실적으로 그 요건을 통과할 수 있는 사업장이 몇 개나 존재할 지 의문이다. 결국 정기상여금과 관련해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더욱 문제인 것은 대법원이 정한 고정성 요건을 겨우 통과한 극소수의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 시점의 초과근로수당 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는 해당하나 일정요건을 갖추면 신의칙상 청구가 기각될 수 있어 사실상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추가임금소송은 완벽하게 진압했다.
▲ 참세상 자료사진 |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 통상임금 범위에서 제외
노동자에게 휴가비를 일할 계산해 지급하는 사업장이 몇 개나 되겠는가
금아리무진 사건(일정요건 하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인정한 사례) 이전의 대부분의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연단위 또는 1월 단위로 지급되는 복리후생적 성격의 임금항목(휴가비, 김장보너스, 단체보험료, 연금보험료, 식대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법정수당 또는 퇴직금을 청구하는 경우였다.
그런데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복리후생비적 명목의 급여가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일 것을 지급조건으로 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리하지 아니한 채 해당 급여가 단체협약 등에 의하여 일률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2007.6.15.선고 2006다13070판결 등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판결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은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가 특정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정해져 있는 임금은 고정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아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보면서 단, 특정시점 이전에 퇴직하더라도 그 근무일수에 비례한 만큼의 임금이 지급되는 경우에는 근무일수에 비례하여 지급되는 한도에서 고정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특정시점(가령 휴가비의 경우 휴가시) 이전에 퇴직하는 노동자에게 휴가비를 일할 계산하여 지급하도록 규정된 단체협약이나 노동관행이 있는 사업장이 몇 개나 되겠는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를 통상임금의 범위에서 제외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사용자는 파업참여 노동자에 대해 근로제공에 대한 교환적 부분과 근로제공과 무관한 생활보장적 부분(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사용하는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와 같은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을 구분하는 임금이분설을 폐기하면서 생활보장적 부분도 임금에 해당한다고 하여 이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통상임금을 계산함에 있어서는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는 사실상 제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제기되는 통상임금 소송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일 것을 지급요건으로 고려하는 것의 부당성
대법원은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일 것을 지급요건(이하 ‘재직요건’)으로 하는 경우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상여금과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를 통상임금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대법원의 논리에 대해 이번 전원합의체변론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진행되고 있던 임금제도개선위원회에서 비판적 견해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으나 대법원은 단 한명의 반대의견도 없이 이를 묵살했다.
이번 판례가 고려하고 있는 재직요건은 고정성이 아닌 일률성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이철수 교수는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재직요건은 상여금이나 수당을 지급하기 전에 미리 퇴사한 자를 대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현재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정근로에 대하여 그 지급내용이 사전적으로 확정되어 있으면 그것으로 고정성의 요건은 충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상여금의 1임금지급기는 예컨대 400%인 경우 3개월로 해석되고 3개월 간 소정근로를 제공한 자에게 임금액의 변동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족하지 제3자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 고정성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재직 중인 자에게 지급하는 지의 여부는 일률성의 요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률성의 요건은 누구에게(to whom)지급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고 고정성의 요건은 무엇을 어느 정도(what and how) 지급할 것인가의 물음이다. 일률성 심사를 통해 적용범위가 정해지면 그 인적범위 내의 근로자 개개인의 임금 변동성 여부를 묻는 것이 고정성의 문제라고 해석하는 것이 통상임금의 기능과 필요성에 부합하는 해석이라 할 것이다”(덧붙임(2))
그럼에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률성과 고정성의 문제를 혼돈한 것이다.
또한 중도퇴직자에게 근무기간을 묻지 않고 상여금 등을 아예 지급하지 않는 약정이 현행법상 효력이 있는가에 대해 이철수 교수는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상여금이나 수당을 예컨대 3월, 6월, 9월, 12월 지급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당해 달에 제공한 근로의 대가가 아니고 3달치 근로의 대가가 쌓인 것이고 다만 그 지급방식을 3달에 한 번꼴로 한다는 것이다. 상여금이나 수당의 임금성이 인정된다면, 중도퇴직자에게는 최소한 재직기간 또는 근무기간에 상응하여 비례적으로 수당이 지급되어야 하는 바, 이를 무시하고 수당청구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약정은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로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점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러한 약정을 계기로 고정성이 결여된다는 이유를 들어 통상임금에의 해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임금제도의 취지, 통상임금의 기능과 필요성, 통상임금의 기본원리에 반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덧붙임(3))
결국 중도퇴직자에게 근무기간을 묻지 않고 상여금 등을 아예 지급하지 않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 또는 관행이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약정이나 관행을 근거로 고정성이 결여된다는 이유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를 통상임금의 범위에서 사실상 제외시키고 있다.
자본진영의 이해를 100% 이상 대변한 사법부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위 판결의 취지에 관해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그간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과 혼선이 있었던 통상임금의 개념과 요건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적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근로현장에서 통상임금 산정과 관련된 분쟁의 소지를 없애고자 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재직조건이라는 개념도구를 사용하여 종전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던 복리후생적 명목의 급여를 사실상 통상임금에서 제외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될 수 있는 경우를 극히 일부 케이스로 제한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정기상여금의 경우 이번 판례 이전 시기의 추가임금소송을 신의칙에 의하여 봉쇄해 결국 대법원은 사법부의 임무를 망각한 채 자본진영의 이해를 100% 이상 반영하면서 노동진영의 이해를 철저히 묵살하는 방식으로 근로현장에서 통상임금 산정과 관련된 분쟁의 소지를 없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