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의 본질은 사유화다

[기고] 2014년은 사유화의 원년인가

철도가 민영화 절차를 밟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 등의 문제를 다룰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드는 데 동의한 국토해양부가 다음 날 몰래 수서 발 KTX 법인 면허를 내주었다. 민간 매각을 이중 삼중으로 금지한 정관을 만들었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던 정부는 철도 노동자들을 기만한 채 박근혜 정권의 민영화 수법인 자회사 설립을 통한 민영화 강행을 검 · 경의 힘을 동원해 물리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민간 매각을 금지하는 정관은 법적으로 정관이 될 수 없다는 법적인 판단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 못지않게 야비한 사기를 계속 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민영화라는 용어 문제다. 민영화는 곧 사유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영화 대신에 사유화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민영화 대 공공성의 대립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공공성에 대립하는 말이 민영화일 수 있는가? 민영화 대 공공성이라는 말은 사유화 대 사회화라는 말로 바꾸어야 하지만 일단 사회화라는 말은 차치하고라도 민영화란 용어를 살펴보면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국가 및 공공단체가 특정기업에 대해 갖는 법적 소유권을 주식매각 등의 방법을 통해 민간부문으로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외부계약, 민간의 사회간접자본시설 공급, 공공서비스사업에 대한 민간참여 허용 등을 모두 포함하나, 일반적으로는 외부계약 등과 구분하여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 사회적 공공성, 의료의 공공성 등 공공성에 대한 말들을 수 없이 듣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반대, 의료민영화 저지 등의 말들로 익숙하다.

정부는 민간 매각을 안 하겠다는 거짓말을 말로만 하고 있지만, 민간 매각을 한다면 그것이 곧 민영화인가, 아닌가. 그것은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다. 철도 요금 올리겠다고 하는 직설적인 말을 에둘러 철도 요금 현실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눈속임과 똑같다. “수신료 현실화, 공영방송의 시작”이라는 KBS의 거짓말과 같은 눈속임이다. 상수도 요금 현실화? 물값 올리겠다는 말이다. 민영화란 사유화라는 말을 에둘러 가는 말이다. 사전에 보면 민영화를 사영화라고도 하면서 영어로 PRIVATIZATION이라고 말한다. PRIVATIZATION은 민영화도 사영화도 아니다. PRIVATIZATION은 사유화다. 민영화의 본질은 사유화다. 사유화를 뜻하는 PRIVATIZATION에서 나온 말이 PRIVATE 즉 ‘사적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적인, 사유화, 혹은 사적인 소유(개인 소유와 다른 사적 소유)란 무엇인가


간명한 설명이 요구되는 지면에서 영어 단어를 사용해 참으로 난감하다. 하지만 PRIVATIZATION을 민영화, 사영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점이라는 것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부득불 영어 단어를 사용한다. ‘사적인’ 이라는 말은 PRIVATIZATION이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무엇인가를 박탈했다’는 뜻이다. 조금 쉽게 말하면 프루동이 “소유란 도둑질이다”라고 말했듯이 누군가의 도둑질로 내가 뭔가를 박탈당하고 빼앗긴 것이 ‘사적인’ 이라는 말의 뜻이다.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 빈곤하다는 것은 내가 뭔가를 결핍한 상태인데 이 결핍은 내가 뭔가를 빼앗겼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빈곤은 POVERTY가 아니라 DEPRIVATION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PRIVATIZATION, PRIVATE, DEPRIVATION 모두 “박탈하다, 빼앗다, 훔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RIVO에서 온 말이다.

박탈하고 빼앗는다고 하니 일견 박탈이 부정적인 뜻을 갖는 말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빼앗은 것, 혹은 빼앗아 온 것, 즉 사적인 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뜻이 있었다. 봉건시대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왕(영주)에게 속해 있었기 때문에 왕(영주),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박탈이라는 것이 부정적이겠지만 왕(영주)로부터 박탈해 온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라는 말, 사적인 것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적인 것이라는 말, 박탈이라는 말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아 가는 단어로 둔갑한 시대이다. 참으로 역사의 전도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이 현상이 극을 달리는 시대다.

우리는 오늘날 재벌 기업, 병원, 학교, 교회, 철도, 물, 전기, 가스 등이 사유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도 박근혜 정권은 사유화에 화룡점정을 찍겠다고 민주노총을 침탈하는 야만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2014년 갑오년은 사유화 원년이 될지도 모른다. 1차, 2차, 3차 사업의 모든 부문에서 자본이 노동자 민중의 이익, 권리, 권력을 모조리 박탈해 가겠다는 야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재벌만이 아니라 병원, 학교, 철도, 교회 등이 병원자본, 학교자본, 교회자본, 철도자본 등으로 둔갑하여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도둑질해가며 자신들의 사적 소유를 강화해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이건희 - 이재용만이 아니라 학교든 병원이든 이 땅의 많은 재벌은 막대한 부를 대대로 세습하며 사적 소유를 누리고 있다.

나라 전체를 몽땅 세습하는 무슨 백두혈통도 아니고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훔쳐 그 막대한 사적 소유를 누리고 자식의 성적까지 조작하며 영훈 국제중학교에 보내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말인가.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소유라는 것은 도둑질한 것이다”라는 프루동의 말을 자본주의의 기원에 관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갈파했듯이 자본주의의 본질은 도둑질이고 사유화는 각종 국 내 외 자본들이 노동자 민중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민영화란 말 자체도 사유화라는 말의 뜻을 도둑질해간 것에 불과하다. 대운하 사업을 은폐한 4대강 사업이 재벌들의 호주머니만 두둑하게 채워줬다는 사실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철도, 가스, 물, 전기에까지 손을 대 도둑질을 일삼겠다는 행태를 보면 기가 차지도 않는다.

민주노총 침탈과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억압은 노동자 민중의 고혈을 빨아 자본의 입에 갖다 바치겠다는 전체주의 국가의 선언이다. 이참에 한나 아렌트의 다음과 같은 경구를 음미해보자.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한 사적인 인간은 나타나지 않는다.” 북한 정권 못지않게 버젓이 각종 형태의 부와 신분을 세습하며 사적인 소유를 일삼는 사적인 인간들이 창궐하는 세상이다. 거창한 이야기를 떠나 설국열차가 사유화로 질주하는 2013년 세밑에 한번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얼마나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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