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현 형에게 보내는 편지

[기고] 형이 자립해서 우리랑 잘 살길 바랐는데 참 미안하고 미안하다

국현이 형에게.

  지난 17일 세상을 뜬 故 송국현 씨
형 기억나? 형을 처음 본 건 2012년 9월이었어. 꽃동네에 사람들을 만나러 갔을 때였을 거야. 사실 그때는 형을 잘 알지 못했지. 당시엔 형을 보면서 저 사람은 장애등급이 5급이라니까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혼자서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 탈시설 하자고 서로 이야기 나누고, 막상 형이 자립생활을 시작했는데... 현실에서는 밥도 혼자 하지 못하고, 자기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걸 보면서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구나 생각하게 됐어.

등급이 5급이었지만 형의 일상을 보면선 서비스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하려고 장애등급심사센터에 함께 갔어.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장애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이 나왔지. 어이가 없었어. 지체장애 5급과 언어장애 3급… 그 급수로는 현실에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성동센터랑 이음센터를 비롯한 많은 단체가 형과 함께 장애심사센터에 가서 항의했어. 하지만 갈 때마다 엄청난 경찰들이 동원되고 우린 센터사무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했어. 심사센터는 우리를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건물 로비에 간이 탁자와 의자를 두고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장애를 다 드러내라고 했어.

그렇게 비인간적인 취급하는 것들을 보며, 형은 수치심과 비굴함에 몸 둘 바를 몰랐을 거야. 우리 모두 같은 심정이었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굴욕감에 다들 그곳을 떠나기 힘들었어. 하지만 우린 다음 날을 생각하며 일단 철수했지. 그러다 4월 13일 오전 11시경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듣게 됐어. 형 집에 불이 났다고... 우리에게 불이 어떤 건지 우린 다들 알지...

몇 년째일까? 참 많이 싸웠는데, 결국엔 장애등급이 문제였어.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지. 걸을 수는 있지만 일상에서 살아가는 게 너무나 불편한 사람들이 있어도 등급심사 기준에서는 인정되지 않지. 탁상에서 머리로 매기는 심사는 실제 삶을 사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일상을 알 턱이 없지. 사람들이 보기에 형은 보행을 하고 한쪽 손을 쓸 수 있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 하지만 가까이 있는 우리는 알지... 알지... 알지...

박근혜가 대통령 되기 전에 장애등급제 폐지하겠다, 자부담 폐지하겠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막상 당선되고 나니 그 말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권력에 눈이 멀어서 이렇게 국현이 형을 돌아가시게 만들었어.

형 미안해. 형이 나한테 자기 식구가 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자기가 찾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결국 식구들을 찾지도 못했고 생사도 모른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형이 죽고 난 다음에야 경찰이 한 번에 찾아내더라. 형 살아 있을 때 우리가 더 열심히 가족을 찾아주지 못했던 것도 참 미안해.

  19일 보신각에서 열린 '고 송국현 동지 추모결의대회'에서 현장발언 중인 이규식 활동가

또 형이 살아생전에 나에게 고민을 많이 얘기했었는데, 난 또 나대로 고민이 많아서... 그런데 죽고 난 다음에 경찰이 한 번에 찾은 게... 진짜 자기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경찰이나 우리나 가족을 찾아주지 못했던 것도 미안하고...

또 살아생전에 국현이 형이 엄청 고민했던 게, 형 이름으로 된 땅이 있고, 그 땅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하는데 형이 수급자여서 그걸 낼 돈이 없다고... 근데 그걸 밤이고 낮이고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난 또 나대로 고민이 많았는데 형이 그런 걸로 고민을 많이 하니까 나도 힘들었어. 나한테 다른 사람들도 형 관련한 연락을 계속해왔고... 물론 내가 더 많이 신경썼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어. 말만 미안한 게 아니라 진짜 미안하고, 국현이 형한테 뭐라고 해줄 말이 없는 게 또 미안하다.

내가 참 기분이 안 좋다. 왜냐면, 내가 자립생활을 권유해 지역사회에 나왔으면 잘 살 수 있게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줬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 해서 미안하고 돌아가신 것도 그렇고...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내가 형한테 잘해준 것처럼 보이는 것도 미안하고 아무튼 국현이 형한테 미안한 맘뿐이네. 국현이 형한테 너무나 미안하고 말로만 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고... 그동안의 내 책임을 이렇게 회피하는 것처럼 해서 미안하고... 형이 성동센터 체험홈에 있을 때 거기 동거인들이랑 잘 지내지 못해서 처음에 윽박지르고 달래고 했는데 그것도 미안하고...

나는 형이 자립해서 우리랑 잘 살길 바랐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서 미안하네. 어제 18일 오후에 부검했을 때 형의 얼굴을 봤는데, 형이 아니더라. 형이 아니야... 가슴이 너무 아프고 꿈에 형이 나와서 비실비실 웃어서 기분이 참 우울했어. 앞으로 형을 다시는 못 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내가 앞으로 다른 사람을 시설에서 어떻게 데리고 나올지 고민이 된다. 나 혼자서 막 고민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시설에서 죽으나 나와서 죽으나 똑같은데 나와서 살다가 죽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해... 형. 안녕히 가세요. 나 잠 좀 푹 자게 내 꿈에 들어오지 말고… 성동센터 식구들한테 미안하고… 지역에 있는 단체들이 체험홈이 없어서 성동센터에 맡긴 건데 미안하다. 다시는 송국현 형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2014년 4월 19일 밤 11시 10분경. 이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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