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쌍용차 평택 공장, 노동자의 절반을 해고해야 경영상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정리해고를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겁박하는 자본과 정부에 맞서 노동자들은 단 한명도 해고할 수 없다며 77일간 공장점거파업을 했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 일상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노사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던 정부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도색하고, 폭력과 폭도로 덧칠하며 공권력을 쏟아냈다.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의 헬기에서 퍼붓는 최루액, 새카맣게 번들거려 바퀴벌레 같았던 경찰들, 십년 이십년 함께 일하며 정들었던 동료들의 차가운 돌변, 쉰내 나는 몸뚱아리와 비슷한 맛을 내던 주먹밥, 모두가 너희를 버렸다며 이제 그만 나오라고 밤낮으로 떠들어대던 선무방송,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렇지만 싸워나가던 이들은 소금기 나는 웃음과 물러 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모두가 휴가를 떠났던 여름의 한 날, 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만약에 회사 놈들하고만 싸웠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었을 거라고 쫓겨나던 노동자들은 울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쫓겨난 6년 동안 해고자들과 가족들 2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혹자들은 생계가 어려워져 비관했다고도 하고, 관계의 단절 때문에 스스로를 못 견뎌 냈다고도 이야기했다. 삶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하나하나의 세계가 그렇게 사라졌다. 살아남은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노동자에서 해고자로 처지가 뒤바뀐 많은 이들은 이혼과 파산 그리고 불법과 폭력의 딱지가 붙었다. 아이들 학원비가, 장모님 생신이, 아버지의 병환이 한숨과 걱정으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그리고 생각이 과거를 쫓아다녔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때 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시키는 대로, 정부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내 삶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꼼짝 않던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처럼, 회사와 정부에 맞서 버티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던 이들의 말을 듣고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닐까 후회가 아른거렸다. 말 잘 듣는 착한 이들만 죽어나가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삶을 지켜내기 위해 서로를 끌어안았던 이들에 대한 가시가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다. 기나긴 싸움은 대체로 분노해야 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함께 부둥킨 이들에 대한 가시만이 남아갔다. 정부가 끼어든 싸움이란 대개 공동체를 좀먹고 서로를 불신하는 것을 유산으로 남겼다.
쌍용차에서 벌어졌던 이해 못할 국가폭력을 겪었던 이들은 국가에 대해, 공권력에 대해, 양보와 타협에 대해, 진실과 정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국가폭력과 맞섰던 이들과 손잡기 시작했다. 무소불위의 국가폭력으로 삶이 뿌리째 흔들린 이들, 용산 유가족과 강정주민들과 밀양주민들은 쌍용차 해고자와 다를 게 없었다. 해고를 철거로, 해군기지로, 송전탑으로 바꾸어도 겪었던 아픔은 다르지 않았고, 겪고 있는 고통도 다르지 않으며, 또한 배제된 이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팔순의 밀양들을 만났다.
2005년 밀양, 가난하지만 정겨운 이웃들이 모인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했다. 송전탑이라고 해봐야 전봇대 정도로 알았고,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에 들어서겠거니 미루어 짐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전의 계획이라는 것이 100미터가 넘는 크기의 철탑이 들어서고, 내가 사는 뒷산에 지나가고, 평생을 일구던 내 논을 지나가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했던 이웃들을 갈라놓을 줄도 몰랐다고 했다. 송전탑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터전이 찢기고 일상이 파괴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고 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단다. 공기업이 주민을 속일 줄, 경찰이 주민들을 막을 줄, 법원이 거짓과 비상식의 판결을 내릴 줄, 돈 몇 푼에 팔려 이웃사촌이 남처럼 등 돌릴 줄 몰랐단다.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과 지난 10년간이나 싸워왔던 이들, 한평생 사는 게 전쟁이었던, 이제는 송전탑투쟁이 삶 자체가 되어버린 밀양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구술집 <밀양을 살다>는 그래서 고통스럽다.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배신과 치 떨림, 분노, 한 서린 마음들이 오롯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배제된 이들이 겪는 고통의 기록과 자신의 삶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과 대답으로 솔직하게 이어진 장단 섞인 울음과 웃음의 이 이야기는 15개의 다른 듯 닮은꼴의 세계를 그려주고 있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어렵지만 한 발짝 내딛는 이들의 목소리는 어린 시절을 통해, 시아버지의 유언을 통해, 가족들에 대한 믿음을 통해, 송전탑 반대싸움을 하며 이웃이 아닌 피붙이가 된 이들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확고해진다. 그리고 싸우고 있는 이들이 이긴다면 혹은 진다면 이라는 자문자답은 그들의 고민이 송전탑 문제를 넘어서 송전탑 싸움 이후의 삶까지 가 닿아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의 지혜란 학식으로 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와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았다.
밀양의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벽이 갈라질 정도의 소음을 내는 헬기소리, 하루가 다르게 세워지는 철탑, 길목을 여전히 막고 있는 경찰들, 언제 그만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스스로의 번민과 갈등 속에서, 찬성과 반대로 나뉜 채 돌이킬 수 없는 사나움만이 가득한 마을에서 싸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철탑이 세워지더라도, 단 한명의 주민이 싸워나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나지 않았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나 같은 쌍용차 해고자나, 강정주민들이나, 용산참사 유가족이 아니어도 누구나, 언제든, 어디서든 배제될 운명에 놓인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싸움은 자신의 생을 걸고 벌이는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불의와 기만에 맞서 스스로의 존엄을 찾는 길이기 때문이다. 싸워나간다는 것이 후회스럽지 않도록, 말 잘 듣는 착한 이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도록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밀양 할매들이 보여주는 삶의 투혼에 대한 화답이어야 한다. 오늘 싸울 수 없다면 내일도 싸울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싸울 수 있도록 우리가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이 싸움은 온전히 밀양주민들에게만 미뤄두는 것이다.
부북면 위영 마을의 단짝 희경(덕촌) 할매가 곽정섭 할매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날 두고 가지 마래이~’라고 이야기 했던 대목에서 2009년 쌍용차가 문득 떠올랐다. 겹겹이 경찰과 구사대와 용역들이 둘러싸고 있던 공장 앞으로 수천여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정문 앞까지 오지 못하고 쫓겨날 때마다 공장안 파업 노동자들은 속울음으로 ‘우릴 두고 가지마!’라고 외쳤다. 희경 할매의 속울음이 이 싸움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날 두고 가지마라, 밀양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싸움이 되도록 함께 싸워나가자.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