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마스는 휴전 협정안에 도장을 찍지 않나

[기고] 먼저 깬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누구보다 평화협정을 원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한지 3주에 접어들면서 사망자 수는 이미 1200명을 훌쩍 넘어섰고, 부상자 수도 6500명을 넘어섰으며 21만 5천 명이 갈 곳 없는 국내 실향민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는 서안지구에서 가자 공습을 규탄하며 행진하던 사람들에게 까지 이스라엘 군이 실탄을 발포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 또한 53명의 군인과 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면서, 연일 미디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피 튀기는 살육전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왜, 서로가 증오를 거두지 않냐고. 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내민 휴전 협정안을 거부하냐고. 정말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하는 게 아니냐고.

문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이다

15일 이집트가 중재하고 이스라엘이 찬성한 휴전 협정안을 하마스가 거부했다. 언뜻 보기에는 당장의 학살을 중단시킬 수 있는 기회를 하마스 스스로가 저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하마스는 협정안을 거부했을까. 바로 이 협정안이 팔레스타인 가자인들의 현재와 미래를 전혀 바꾸지 못하는 기만적인 페이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가자 지역에서 집권하게 되자 이듬해 가자지구를 모두 봉쇄한다. 물론 가자지구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이스라엘의 돈독한 파트너인 이집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봉쇄는 서서히 가자 주민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360km²로 서울 면적의 60% 정도의 작은 지역에 180만 명이 밀집해서 사는 가자 지구 안에서는 외부로의 물자 반입이 금지되어, 봉쇄 이후 이집트로 연결되는 땅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금 이스라엘이 공습의 명분으로 삼는 땅굴은 일부 이스라엘 쪽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대다수는 식료품, 의약품, 공산품과 같은 기본적인 물자공급을 위한 통로이며, 가자인들은 여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생명줄을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주기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1300여 개의 땅굴이 이미 파괴되었다.

이러한 봉쇄 속에서 심각한 물의 오염(95%가 식수로 부적합), 빈곤화(가자 인구의 60%가 빈곤선 이하), 만성질환의 노출, 기본적인 인프라 부족 등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삶의 질은 현격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이 현실을 반영하듯 하마스는 얼마 전 휴전협정에 앞서 이스라엘에게 가자 봉쇄를 풀어, 기본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 조건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응수하며, 7월 29일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대국민 연설에서 임무를 완성할 때까지 폭격을 계속 퍼붓겠다고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장기전에 대비해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가 말하는 장기전에는 학교, 병원, 모스크, 놀이터와 그 안에 있는 어린이와 장애인을 포함한 민간인이라는 ‘부수적 피해’가 포함될 것은 자명하다.

하마스 휴전 10대 요구 조건

1. 상호 전쟁 중지, 국경지역에서 탱크 철수, 국경지역의 농민들이 자기 땅에서 농사지을 수 있도록 (보장할 것).
2. 2014년 6월 23일 (이스라엘 소년들의 실종) 이후 구금된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석방할 것. 특히 예루살렘과 가자, 이스라엘 내의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들을 석방할 것.
3. 가자 봉쇄를 완전히 해제하여 물자와 사람들에게 국경을 개방할 것, 모든 식료품과 공산품 공급, 가자 전 지역 전력수급에 충분한 발전시설 건설을 허용할 것.
4. 유엔과 중립적인 국가들이 감독하는 국제항 및 국제공항의 건설(을 보장할 것).
5. 해양 어로지역을 10Km까지 확대하고 어부들에게 보다 큰 어선과 화물선 공급(을 허용할 것).
6. 라파Rafah 국경검문소를 유엔과 아랍국가 및 기타 우호 국가들의 감독을 받는 국제관리 국경검문소로 전환할 것.
7. 10년 휴전 협정에 조인하고 국제 감독관을 국경에 배치할 것.
8. 팔레스타인 영공을 침범하지 않고, 알아크사 사원에 예배드리러 갈 수 있는 조건을 완화해 줄 것.
9.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정부의 업무에 간섭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통합정부 논의를 방해하지 말 것.
10. 국경지역의 산업지구를 재건하고 가자 지구의 경제 발전을 증진할 것.

휴전 협정을 먼저 깬 것은 이스라엘

실제로 2012년 양측간 휴전협정 후 올 해 7월까지의 공격 양상 및 사망자, 부상자에 관한 데이터와 패턴을 보면 이스라엘의 휴전에 대한 위선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협정 이후 이스라엘의 협정 위반(공격)은 총 191회인데, 공격을 받은 서안지구를 포함한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 중 10%가 사망했으며 42%가 부상을 입었다. 반대로 하마스의 협정 위반은 총 75회인데, 이 중 4%가 부상을 입었으며, 사망자 수는 없다. 당시 사망한 사람들은 가자 해안에서 일을 하고 있던 어부들도 포함된다. 특히 휴전 협정 후 3개월 동안 가자에서 발포된 미사일은 없으며, 2번의 박격포 공격이 있었으나, 반대로 이스라엘에서는 수십 번의 공격으로 4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와 91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이렇듯 양측이 협정 위반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이 훨씬 더 빈번하고 치명적으로 자행됨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가자 침공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가한 미사일 공격에 대한 시점과 패턴을 보면 이스라엘이 자국의 소년 3명을 납치해 살해한 배후를 하마스에 두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대대적 탄압 이후 혹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에 대한 응수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수사 당국은 25일 납치살해의 범행이 하마스가 아니라고 밝혔는데, 이스라엘의 주기적인 가자 공습의 명분을 어디에서 찾는지 실소를 금치 못할 뿐이다. (참고: https://pbs.twimg.com/media/BtVqkA-CMAEfddE.png:large)

팔레스타인은 누구보다 평화협정을 원한다

팔레스타인인 누구도 지금의 학살이 계속되길 원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오늘의 학살이 내년, 후년에도 계속되고,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까지 말하는 절망적인 삶이 이스라엘의 점령과 봉쇄 속에서 계속된다면, 과연 우리가 굴욕적인 협정문에 도장을 찍기를 강요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과 무능한 UN은 평화를 운운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협정을 촉구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협정이 오히려 자신들의 미래를 더 옭아매왔음을 지켜보았다.

20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회담의 실상을 보라. 93년, 95년의 오슬로 1, 2차 협정을 통해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대했던 협상의 실상은 난민의 귀환권, 불법 정착촌, 예루살렘의 문제를 쏙 뺀 후, 오히려 서안지구를 반투스탄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미 힘의 관계가 명확해진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지도부는 자신들의 국기를 이스라엘에게 받은 대신 팔레스타인을 감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던 셈이다. 그 동안 팔레스타인 내의 불법 정착촌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들은 2배로 늘어났고, 예루살렘에서는 끊임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이 강제 축출당하고 있으며, 440km의 분리장벽이 서안지구의 그린 라인 안으로 건설되었으며, 522개의 검문소와 장벽이 생겨났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길 기다리는 난민은 720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7년 동안 가자 지구는 봉쇄되어 왔다. 여러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만 공고히 해 주었을 뿐이다.

2008-09년 약 2주간 1400여명의 희생자를 낸 가자 공습 이후 가자 지구를 방문해 이 사태가 국제사회의 공동의 정치적 실패라며, 당시의 방문의 결과를 미 대통령과 더불어 각국의 지도자들과 공유하겠다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측이 모두 교전을 멈추어야 한다는 성명만 발표할 뿐 이스라엘에 대한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또한 양비론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듯 하지만,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한다면서 23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 21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이스라엘 공격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에 당당하게 거부권을 행사하는 비열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역시 기권을 하면서 암묵적으로 이스라엘의 학살에 동조한 셈이다.

이러한 풍경은 너무나 익숙하게 반복되어 왔음을 우리 역시 보아왔다. 더 이상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는 것을 목도할 수 없다. 지금의 학살의 멈추는 일은 평화 회담이나 휴전 협정안 따위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점령의 악순환을 끊도록 국제 사회에서 이스라엘을 다각도로 압박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연대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연루된 기업에 대한 강한 규탄과 투자철회를, 점령지에서 생산된 물건을 보이콧을, 국가와 국제기구 차원에서는 강한 재제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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