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세계는 에볼라에 무심했다. 자본주의 ‘재앙 보존의 법칙’ 이라도 있는 것 같은,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발생한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에볼라를 위한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이윤 밖에는 어떠한 동기도 없는 제약회사들에게 아프리카 지역 전염병의 치료제는 수익 종목이 되지 못했다. 제약회사들에게는 구매력 없는 아프리카의 고객보다는 암, 심장병, 비만 등 ‘선진국형’ 질병 고객이 우선이다. 이게 포춘 500대 기업 중에서도 제약기업이 가장 높은 순이익을 내는 이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인이 감염된 이후 에볼라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지난 40년 동안 아무런 진전도 없던 에볼라 치료제 개발에 미국 정부가 나섰다. 단 며칠 만에 아직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미국 제약기업의 약물 지맵(ZMapp)은 기적의 치료제로 등장했다.
▲ 가나 여성들이 병원 입구에서 손을 씻고 있다. [출처: http://www.vox.com/ 화면캡처] |
CNN보도에 이어 국내 언론들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직원 9명의 소규모 바이오벤처기업이 죽음의 바이러스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에볼라 테마주’가 상종가를 쳤다. 미국 이노비오사의 자회사인 (주)진원생명과학의 주식은 급등했다. 제약회사에 임상시험용 동물을 내다파는 기업들까지 에볼라 테마주로 오인돼 거래 주가가 폭등했다. 모바일 게임인 ‘전염병 주식회사’는 에볼라로 인류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을 추가해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나오미 클라인은 <쇼크 독트린>에서 재난이 당사자에게는 고통이지만 시장에게는 기회가 되는 역설을 ‘재난자본주의’라 명명한 바 있다. 대중에게 쇼크를 주고 패닉에 빠진 대중을 활용해 더 많은 시장을 창출하고 이윤을 올리는 기괴한 셈법말이다. 이번에도 ‘재난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는 정확히 작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바랄 것이다. 누가 어떤 약물을 만들었든지, 일단 그 약물이 안전한 약물이고 또한 효과를 발휘하기를 말이다. 그래서 서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의 감염과 죽음을 멈출 수 있기를. 더 이상 국경을 넘어 전파되지 않기를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간절한 마음이 이루어지려면 간과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지맵(ZMapp)에 대한 의학적 정보는, 직원이 9명이라는 영세한 바이오제약사회가 제공하고 있는 것 외에는 아직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 시스템 형성을 도와주는 일종의 '칵테일 치료제' 라는 정보 정도. 쥐에게서 얻은 항체와 담배잎에서 추출한 무엇을 혼합한 것이라는 것 정도.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지맵의 생산은 담배회사인 레이놀즈 아메리칸의 자회사가 맡고 있다.
사실 지맵(ZMapp)을 만든 맵 바이오제약기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세업체는 아니다. 이 회사는 2003년 조지부시의 ‘바이오실드 프로젝트(Biodhield Project) 실행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다.
기억을 회복하기 위해 조금 더 덧붙이자면, 2001년 9월 ‘공격 무기로 개조된’ 탄저균은 부시를 향해 있었다. 이 탄저균은 DNA 판독 결과 메릴랜드 주 포트 테트릭 육군 연구소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내부 범죄였던 것이다. 이후 2002년 말 조지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생물 테러에 맞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주요 연구 및 생산 계획’ 이라는 부시의 ‘바이오실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리고 10년동안 공중보건에 쓰일 연구 예산을 떼어 엄청난 돈을 생물 테러 방어 계획이라는 프로젝트에 투여했다.
바이오실드 프로젝트는 사담 후세인이 미국을 상대로 생물 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조장함으로서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맵 바이오제약기업은 미국립보건원(NIH)의 공공지원을 통해 연구를 지속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의 보호아래 있던 세균전을 위한 군사전략연구기업의 일부이기도 한 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세균전과 군사전략 때문에 그나마 제 3세계 풍토병으로 알려진, 그러나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질병들에 연구가 지속된다. 파나마 운하 건설 때문에 황열병이 연구되었고 한국의 유행성 출혈열에 대한 연구도 한국전쟁 때부터 미군이 시작했다. UN은 새천년개발목표를 달성을 위해 2015년까지 이렇게 소외된 질병(neglected disease)에 각 국가마다 일정 후원금을 내는 공공펀드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말라리아를 비롯해 수많은 가난한 나라 특히 열대지역의 질병들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 연구는 소외돼 있다.
실험용 치료제 지맵(ZMapp) 투여 후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소식들은 미 의학계와 세계보건기구 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내 의학계 일부는 8월 6일 자로 성명을 발표해, 실험용 치료제는 지금 당장 아프리카의 의료 노동자들에게도 투여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와 관련해 다음 주 의료윤리학자들을 긴급 소집해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실험용 치료제들의 인체 사용에 대한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은 이유가 어찌되었든 다행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에볼라 치료제 개발이 인류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윤을 향해 이루어질 때 이는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당장 9월부터 이루어질 서아프리카지역에서의 임상시험의 과정에서의 윤리문제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미국립보건원 등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치료제가 고가의 가격이 매겨지고 특허가 걸린다면, 이는 서아프리카 수백만 명의 주민들에게는 높은 가격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약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담배기업인 레이놀즈 아메리칸이 담뱃잎에서 추출한 방법에 특허라도 내면 어떻게 될까?
국경없는의사회는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창궐한 각종 전염병을 무상으로 치료해 왔다. 그리고 아직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료진과 활동가들의 감염과 사망은 보고된 바 없다. 아직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안전성이 확정되지 않은 실험용 치료제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다만 1만 원이면 의료진이 환자치료를 위해 안전한 장갑을 구입할 수 있고, 2만 원이면 의료진이 감염방지를 위한 장화를 신을 수 있으며, 7만 원의 후원금이 있다면 에볼라 감염을 보호하는 여러 겹의 보호복 1세트를 입을 수 있다며 후원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감염된 환자라도 안전한 식수와 격리병동 그리고 위생시설만 갖춰진다면 공기 감염이 아닌 에볼라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에볼라 치료제 개발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류의 생명을 이윤과 맞바꾸는 방식으로 개발될 때, 재앙은 국경을 넘어 바로 우리 앞에 와 있을 것이고, 그 때는 이미 늦어 버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