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삼성전자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분들과 가족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당사자와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5월 28일 삼성전자 이인용 사장을 비롯해 8명, 반올림과 황유미 씨 아버지인 황상기 씨 등 9명이 참석해 첫 교섭이 열렸고, 사과, 보상, 재발방지 등 3가지 의제를 논의했습니다. 다섯 차례의 교섭에서 보상을 먼저 논의하자는 삼성에 대해 반올림은 사과와 재발방지가 우선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8월 13일 6차 교섭을 진행합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세기의 교섭
현대자동차는 지난 7월 29일 22차 불법파견 실무교섭을 열어 휴가기간 동안 진전된 안을 마련해 8월 11일부터 4일 동안 집중교섭을 갖기로 했습니다. 2011년 11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1569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의 선고가 예정된 8월 21~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 이전에 노사 간에 합의를 끌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2차 노사 교섭에는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와 금속노조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가 지난 7월 2일 21차 실무교섭에서 “조합원이 배제되는 교섭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교섭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7월 7일 회사 소식지 <함께 가는 길>에 “지회 조합원만 노동자? 대다수 비조합원 4,000명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것입니까?”라며 “하청직원의 대다수인 비조합원 4,000명에게는 당장 채용 기회마저 주지 말라는 것”이라고 비정규직노조를 공격했습니다.
또 현대차는 7월 29일 <함께 가는 길>에서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가 ‘모든 조합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대다수 사내하청 직원들의 뜻을 짓밟는 행동”이라며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동일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원칙”이라고 밝혔습니다.
비정규직노조는 ‘조합원 전원 정규직화’를 주장하고, 회사는 ‘대다수 사내하청 직원들’을 대변하는듯한 모습이 뭔가 서로가 뒤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서로 뒤바뀐 듯한 현대차 노사교섭
사실 비정규직노조의 주장은 채용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회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신규채용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법파견은 신규채용의 대상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신규 채용 기회는 공장 밖에서 대기업의 채용 공고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청년실업자들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비정규직노조의 6대 요구는 △직접생산하도급 정규직 전환 △해고 손배가압류 철회 원상회복 △대국민사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 금지 △구조조정 중단 △노조활동 보장입니다. 직접생산하도급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 첫 번째 요구였습니다.
회사는 2년 전에 내놓았던 ‘2016년 상반기까지 3500명 신규 채용’에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와도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처럼 대국민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조는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에서 ‘직접생산하도급 정규직 전환’으로 후퇴했다가 노사 간의 교섭이 진행되면서 양보를 거듭하더니 어느새 ‘조합원 배제 없이 우선 정규직 전환’이 최우선의 요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회사는 마치 4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변하고, 노조는 조합원만 정규직으로 채용해달라고 요구하는 ‘기이한 교섭’이 된 것입니다.
모든 사내하청에서 조합원 우선 정규직 전환으로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한 조직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온 조합원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생존 원리상 당연합니다.
더구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갖은 탄압에 맞서 10년 동안 싸워왔습니다. 2003~4년 비정규직 노조 설립, 2005~6년 파업, 2010년 겨울 25일 공장 점거파업, 2012~13년 현장 파업과 296일 철탑농성까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에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100명이 넘는 해고와 267억9000만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손해배상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합원들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싸운 것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노조가 파업할 때 대체인력으로 투입되어 노조의 파업을 방해해왔던 비조합원들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 한 명의 조합원도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지회 1392명의 조합원 중에는 오는 8월 21~22일 법원 판결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조합원도 일부 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공정만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습니다. 2005년 7월 1일 이후 입사자도 불안합니다.
▲ 8.21~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41, 42부 현대차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569명 현황 |
따라서 투쟁과 교섭을 통해 조합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현대자동차를 지켜보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에게 ‘투쟁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쟁하면 정규직 된다’는 결과 중요
하지만 노동조합이 불법을 묵인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주요 생산공정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8월 21~22일 1569명 중 상당수가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이 다시 밝혀집니다. 비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불법을 눈감을 수는 없습니다.
노동조합이 불법을 합의해줄 수는 없습니다. 회사는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 노동자들을 의장공정에 배치하고, 의장라인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서브공정으로 옮겼습니다. 노사 간의 합의에 따라 정규직으로 특별고용된 조합원들도 의장라인으로 배치되고, 그 자리에 있던 비조합원들은 서브공정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른바 공정재배치입니다. 현대차는 노사합의를 통해 불법파견의 시비에서 면죄부를 받고 사내하청 3000명, 촉탁계약직 3000명 등 최소한 생산라인에 6000명 이상의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14년 전인 2000년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정규직 조합원들의 ‘완전고용 보장’을 대가로 생산 공정에 16.9%의 사내하청을 사용하기로 노사 간에 합의해 불법을 묵인 방조했습니다. 이 역사를 비정규직노조가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조합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생산하도급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워야 합니다. 반올림이 삼성전자와의 교섭에서 보상보다 사과와 재발방지를 우선 요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법파견에 대한 사과,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사내하청 사용금지 요구를 먼저 해야 합니다.
불법을 방조하는 노사합의?
▲ 예상 노사합의안에 대한 분석(* 현대차 3,500명 중 2,038명 이미 신규 채용함) |
지금까지 ‘조합원 배제하는 신규채용’을 주장하고 있는 현대차도 정몽구에서 정의선으로 경영권 안정적 승계와 법원 판결이 미칠 파장을 고려해 교섭에 전향적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조합원을 포함하고 근속과 체불임금 문제도 일정하게 해결할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현대차는 20차 실무교섭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5:5로 채용하고 의장부에 가산점을 부여하며 근속을 적용하면 많은 조합원이 정규직 특별채용에 포함된다고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 회사가 내놓은 안은 조합원 1,392명 중 신규채용 인원은 717명으로 51.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8월 11일부터 시작되는 집중교섭에서 회사는 신규채용 인원을 3500명에서 4000명으로 늘리고 의장부와 근속 가산점을 높여 조합원의 정규직 채용 비율을 크게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배제된 조합원은 2016년 이후 정규직 정년퇴직 자리에 채용을 보장하는 합의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합원 우선 정규직화’에 꽂혀있으면 전향적인 양보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회사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입니다. 7~80% 이상의 조합원이 정규직 채용에 포함되면 찬반투표에서 통과될 수도 있습니다. 노사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비롯해 모든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게 됩니다.
조합원들은 단계적으로 정규직이 되고, 비의장 라인은 모두 사내하청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이라는 요구를 내걸고 싸워온 노동조합 10년의 역사에서 최악의 합의가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섭과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는 간명합니다. ‘조합원 포함하는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입니다. 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한 공정은 조합원 비조합원을 막론하고 즉시 정규직을 전환하고,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희생해온 조합원들을 존중해 정규직 전환 대상에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단계별 정규직 전환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노동조합 임기인 2015년 9월까지는 정규직 전환이 완료되어야 합니다. 불법파견에 따라 2년 이상이 지난 시기부터 근속은 인정되어야 하며, 자신이 일한 그 자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를 발판으로 촉탁계약직을 포함해 사내하청 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교섭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관련 주요 일지
- 2000년 현대자동차노조 생산라인에 16.9% 사내하청 사용 합의
- 2003~4년 현대차 아산, 울산, 전주공장 비정규직노조 결성
- 2004년 9월~12월 노동부 127개 업체 1만 여명 불법파견 판정
- 2006년 12월26일 울산지검 현대차 불법파견 무혐의 판정
- 2007년 4월18일 부산고검 현대차 불법파견 무혐의 판정
- 2007년 6월 1일 서울중앙지법 아산조합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4명 승소(2년이상 근무)
- 2009년 경제위기를 이유로 울산, 아산, 전주에서 1000여명 비정규직 우선 해고
- 2010년 7월22일 대법원,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파기환송)
- 2010년 11월12일 서울고등법원 아산조합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4명 승소(2년이상 근무)
- 2010년 11월15일 현대자동차비정규직 3지회 25일 공동파업
- 2012년 2월23일 대법원, 현대차 불법파견 최종 확정 판결(최병승)
- 2012년 4월25일 현대차 원하청 연대회의 불법파견 특별교섭 6대 요구안 확정
- 2012년 10월17일 울산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최병승 철탑농성 돌입
- 2012년 4월22일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 해고조합원 양재동 노숙농성 돌입
- 2012년 5월15일 현대차 불법파견 특별교섭
- 2013년 7월15일 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 사무장 박정식 열사 자결
- 2013년 7월20일 현대차 비정규직 1차 희망버스
- 2013년 8월8일 천의봉 최병승 조합원 296일 철탑농성 해제
- 2013년 8월31일 현대차 비정규직 2차 희망버스
- 2013년 9월10일 현대차 불법파견 특별교섭 중단
- 2014년 4월10일 현대차 불법파견 특별교섭 재개
- 2014년 8월 21~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41, 42부 1606명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