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어느 날,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154kV 송전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문기주, 한상균, 복기성 세 노동자들을 올려다보며 마이크를 붙잡은 밀양 할매는 오래도록 흐느꼈다. 함성과 노래와 구호와 덕담들이 오고간 뒤 끝내 서로 사랑의 하트를 그려주며 헤어졌지만, 다들 빨개진 눈가들이 젖어 있었다.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밀양 어르신들은 큰 실의에 빠져 있었다. 겨우 버텨오던 동아줄이 툭 끊어진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 한진중공업 최강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이운남... 안타깝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희망순례를 제안했다. 우리도 힘들지만, 더 힘들어하는 젊은 사람들 위로하러 다니자고, 죽지 말고 살아서 싸우자고, 서로 등 두드려 주고, 우리도 젊은 기운 좀 받고 오자고 했다. 하다 하다 안 되니 높은 곳으로 올라가 칼바람 맞으며 버티는 고공농성이 마치 ‘시대정신’처럼 번져가던 시절이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은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아산 유성기업, 서울 대한문 앞 ‘함께 살자 농성촌’, 평택 쌍용차 공장을 돌았다. 그때 우리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만났고, 손배가압류 협박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선배들을 만나 함께 눈물지었고,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국도변 굴다리 위 새집 같은 작은 움막 안에서 목줄을 걸고 있던 유성기업 홍종인 지회장과 함께 ‘흔들리지 않게’를 불렀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 가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평화 올 때까지 평화 외쳐라~”
빨간색 ‘송전탑 반대’ 조끼를 입은 70대 노인들과 푸른 작업복을 입은 30대, 40대 젊은 노동자들이 함께 부르는 이 노래는 특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노랫가락 사이사이로 맥박치는 기운들이 물결쳐 흘렀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언정, 그 맥박치는 기운 따라 함께 흘러가고 싶었다. ‘저 작은 데서 사람이 우예 있노. 우리가 저 막 뜯고, 새로 지어주면 좋겠구만’ 이미 열 곳이 넘는 마을별 농성장을 직접 지어 본 움막 농성의 백전노장들은 꺽다리 노조 지회장이 다리도 펴지 못하는 좁은 농성장에서 목줄을 매고 앉은 모습을 보며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르신들은 자신들이 저주해 마지않는 철탑 위에서 몇 달을 버티고 있던 이들을 보며 눈물부터 흘렸다. 고난을 겪는 이들이 서로의 사정들에 화살처럼 감정이입되고, 같은 정(情)으로 맺어지는 놀라운 화학변화를 그 순례를 통해 확인했다. 그때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함께 살자 농성촌’의 식구들이 밀양의 투쟁에 연대하고, 밀양에 공사가 재개되었을 때는 곳곳의 노동자들이 이미 ‘별’이 주렁주렁 달려 있음에도 위험을 마다않고 할매, 할배들과 함께 싸우기 위해 달려와 주었다.
2014년은 밀양 어르신들에게도 특별한 해가 되었다. 그 사이 한 분의 어르신이 세상을 또 버렸고, 6.11행정대집행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겼었다. 마을공동체는 분열되었고, 이제는 속절없이 거대한 철탑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이런 때에 밀양 주민들은 순례를 떠난다. 어르신들은 그저 ‘바람 쐬러 간다’고 표현한다. 우리도 마음 휑하고 속상한데, 이럴 때 우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남’을 생각한다.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고공농성하는 젊은 노동자들, 노점상, 장애인, 그리고 국가에 의해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까지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휑하고 속 터지는 마음을 달래려 ‘바람 쐬러’ 떠나는 길이지만, 다른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눈물지으며 힘을 나누는 그 마음, 72시간 송년회는 이렇게 제안되었다. 이번 순례에는 올해 밀양만큼이나 고통스러운 투쟁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 청도 삼평리의 어르신들도 함께 떠난다.
우리 어르신들의 발걸음으로 지금 전국 곳곳에서 고통스럽게 싸우고 있는 이들이 하나로 만나는 마당이 펼쳐질 것이다. 아픈 곳에 진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미디어를 온통 채색하는 정치와 경제, 권모와 술수, 화려한 욕망의 풍광들은 실체가 아니라 ‘환영(幻影)’인 것만 같다. 진실이 그런 것들에 깃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아픈 자리에서 가장 힘들게 뒤척이는 이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 자리, 72시간의 송년회에 함께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이 어이없는 시절, 진실과 정의는 이제 공허한 소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시절에 맞잡은 손이 늘어나고 커지는 것이 바로 희망, 아니겠는가. 밀양에겐 너무나 힘들었던 2014년, 우리는 이 노래로써 한 해를 닫고 싶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 가 심은 나무들 같이, 흔들리지 않게”
밀양 '72시간 송년회' 관련 영상 <밀양에서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