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조. 일자리를 구하고자 할 때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민간파견업체에 돈을 내지 않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고용안정센터 등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확충해야 한다.”
4대보험 중에 고용보험이 있습니다. 실업을 당했을 때 실업급여를 주는 것만이 아니라, 취업정보를 알려주거나 직업훈련 등을 통해서 실업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고용서비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고용노동부는 고용안정센터 등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간파견업체를 늘리고 배불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소위 ‘고용서비스 선진화 방안’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직업소개소, 파견업체 등을 대형화하고 이 업체들이 노동자들을 파견해서 돈을 벌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파견업체들이 돈을 버는 방법은 정규직 고용을 없애고 모든 노동자들을 파견으로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노동자들이 떠돌아다니게 되니까, 파견업체들은 노동자들의 불안정함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 정부는 그것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불안정한 일자리마저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려는 정부에 맞서 ‘고용안정의 권리’,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찾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합니다.
뉴스를 보면 정년연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중장년층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최근 3년간 정년을 채우는 퇴직자는 20%도 안 된다고 한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시대에 사는 지금, 정년연장이 중장년층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우리들은 안정된 고용을 보장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 일자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노동자들의 안정된 고용을 보장하는 정규직 일자리는 없다는 표현이 맞겠다.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으로의 취업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설사 안정된 정규직 채용이 있다 하더라도 인맥이나 소규모 채용이 전부일 뿐, 대기업은 위장도급인 사내하청이 자리잡았고 중소기업들도 파견노동자들로 채워져간다. 이런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해고의 위협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도 숨죽이며 일할 수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다.
내가 일했던 안산의 한 업체는 정규직 노동자가 없는 비정규직공장이다. 이곳은 3곳의 사내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있고 그 속에 파견업체 노동자들이 있다. 파견 노동자도 2곳의 업체를 통해서 취업했다. 그리고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라인에 사내도급업체 노동자, 파견업체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가 같이 일을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인 것이다. 파견과 도급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데, 대부분 노동자들은 ‘파견업체’를 통해 공장에 들어온다.
안산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파견업체들은 10년간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지금도 안산의 큰 건물을 보면 대부분 파견업체들이 들어서있고 곳곳의 전봇대에는 파견업체들의 광고지가 붙어있다. 벼룩시장 같은 무가지 고용정보도 파견업체들로 가득하다. 일자리를 구할 때 이런 파견업체에 의지해야 할 때가 많다보니, 파견업도 매우 큰 산업이 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정부가 당연하게 취업정보도 제공하고 고용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이것을 민간에게로 넘기려고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파견업체를 통해서 일을 구하게 되면 단지 소개비만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업체들은 계속 ‘파견’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월급에서 매달 돈을 떼어간다. 그렇다보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또 다른 착취가 생겨나지만 정작 파견노동자들은 파견회사가 얼마의 수수료를 받아가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파견 노동자들이 파견회사에 수수료율을 공개하라고 요구해도 파견회사는 알려줄 의무도 없고 노동자는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분명 도둑놈은 도둑놈인데 내 돈을 얼마를 훔쳐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노동자들은 답답할 뿐이다.
그러나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하기위해서는 파견업체를 통해 취업을 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자리를 구하려고 하더라도 파견업체를 통해야 한다. 내가 일했던 또다른 업체는 정규직이 되려면 파견노동자로 6개월, 계약직으로 1년6개월을 일해야만 했다. 그래야 비로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정규직이 되겠다고 2년을 버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잔업 특근을 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 물량이 없어져서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고, 회사가 불안정하니까 쫓겨나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다. 그리고 고용이 불안해져서 노동자들이 새롭게 취업을 하게 되었을 때 고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정부의 의무이다. 고용보험은 노동자들이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알려주는 역할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그런 의무를 버리고, 취업에 대한 정보를 민간업체에게 모두 떠넘김으로써 불법적인 파견이 횡행하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하락하고 있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 누구나 고용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원하는 직무의 취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는 우리들의 노동권을 보장받고 삶의 질 하락을 방지 하는 최소한의 우리 권리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