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 취재를 하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총파업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었고, ‘하면 된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이도 있었다. 개중에는 ‘공기 반, 소리 반’ 발성을 하듯 한숨 섞인 우려를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수많은 목소리가 모여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란 곳이 만들어졌을 테니, 그만큼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에 너무나 큰 애정이 있어서일까. 다수의 사람들은 행여 노조가 다칠까봐 노심초사했다. 조금 더 큰 노동조합이 앞장서 줬으면, 든든한 가림막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이번에 현대기아차는 파업 한답니까? 철도, 지하철도 파업 못하는 상황 아닙니까? 이러다 우리만 독박 쓰는 거 아닌가요? 이번에 실패하면 민주노총은 끝 모르고 추락할 겁니다.
이런저런 걱정을 늘어놓으면서도 ‘민주노총’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싸우긴 싸워야 하는데, 주변에 쟁쟁한 동료들이 보이질 않아 두렵고 망설이게 되는 모양이었다. 결정적 슈팅 찬스를 앞두고 상대편 수비수는 떼 지어 몰려오는데, 공격 전환 속도가 느린 우리 팀 선수들은 아직 하프라인도 통과하지 못한 상황. ‘유리 몸’인데다 만날 똥볼만 찬다고 욕을 먹는 외로운 스트라이커는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공장은 파업 하나요? 공무원은요? 공공도요?”
지난 20일 속리산 인근에서 열린 민주노총 단위사업장 대표자 결의대회. 당시 민주노총 관계자 A씨는 걱정 섞인 우려를 늘어놓았다. 대공장 노조인 현대기아차가 아직 파업을 결의하지 못했고, 철도, 지하철 같이 규모가 큰 공공부문 노조도 파업이 어려워 전반적으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야기의 요지였다. 그는 “금속노조 소규모 사업장 다 합쳐봐야 현대차지부 하나 규모도 안 되는 것이 사실이지 않느냐. 실질적인 총파업을 위해서는 현대기아차의 파업 여부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에도 뻥파업이 되면 민주노총 지도력이나 내부 투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대표자들이 모인 산별노조 결의시간.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대기아차의 파업 돌입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파업을 할 것’이라는 목소리로 모아졌다. 그 자리에서 만난 자동차 부품사 노조 간부 B씨는 “대공장 파업 여부가 관심거리이긴 하다. 다만 대공장이 파업에 돌입하면 우리도 쉽게 갈 수 있고, 파업을 안 하면 조금 어렵게 갈 수밖에 없다는 차이 정도”라며 “울산에 있는 6개 부품사 노조 약 2,500여 명이 현대기아차 파업 여부와 상관없이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의대회 내내 ‘다른 사업장 의심하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파업을 결의하자’는 호소가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파업을 결의해야 하는 노동자들로서는 어느 사업장이 파업에 돌입하는지, 규모는 어느 정도 될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그렇다면 대공장에 의존하지 않는 총파업은 언제나 ‘뻥파업’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민주노총 관계자 C씨는 “대공장이 참여하지 않는 총파업은 위력적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 D씨 역시 “민주노총 조직 상태로 보면, 대공장이 참여하지 않는 총파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현장 활동가 E씨는 “질문 자체가 정규직-비정규직을 갈라치기하는 자본의 논리와 뭐가 다르냐. 대공장 정규직이 발목 잡는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이들을 다시 조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악과 관련한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공무원노조가 4.24총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전교조도 연가투쟁을 결의했고, 건설기계와 플랜트노조, 학교비정규직 등도 민주노총 총파업에 복무한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언제나 노동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현대기아차 노조는 오는 31일, 총파업 동참 여부를 결정짓는 투표를 진행한다. 이들은 지난해 민주노총의 2.25국민파업 당시 파업 찬반투표를 부결시킨 전례가 있다. 그러니 노동계에서 ‘현대, 기아차는 투표 결과를 봐야 안다’는 의심이 나올 만하다.
지난 26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 그리고 금속노조 임원 및 사무처 활동가들은 총파업 현장순회 차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총파업을 둘러싼 기아차 현장 분위는 어땠을까? 기아차 광주공장 대의원 F씨는 “아직 현장에서 분위기는 많이 오르지 않았는데, 그래도 (투표)가결이 될 것 같다”고 예측하며 “연차별로 반응이 조금씩 다르다. 연차가 낮은 사람들은 총파업에 관심 없는 듯 보이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반응이 많다. 반면 연차가 높은 선배들 중 ‘정치파업’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차원의 총파업 선전 및 홍보, 조합원 교육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의원 G씨는 “아직 현장에서 분위기가 오르지 않고 있다”며 “위원장 현장순회가 끝나면 또 다시 나른한 현장으로 돌아가게 될 거다. 집행부가 의욕적으로 총파업을 조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대의원 H씨는 “꼭 필요할 때만 (대공장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아니냐. 사실 4.24총파업이 잘 와 닿지 않는다. 노조에서 총파업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홍보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금속노조 관계자 I씨는 “현대, 기아차 노조의 분위기가 작년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며 “기업노조에서 총파업 분위기가 더디게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투표가 부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규모’의 크기가 투쟁의 바로미터가 됐다”
공무원과 전교조를 비롯해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대공장의 행보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개운치가 않다. ‘의지’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르다. 얼마 전, D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주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인데, 그날은 꽤 진지한 내용의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권 박탈 문제인데, 이것은 국민들에게 자기 문제로 와 닿지 않아요” 꽤 고민이 많은 듯 했다. 그는 “대공장인 현대기아차가 4시간 파업을 돌입한다는 것은 그 자체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다. 정규직이 4시간 파업했다는 언론 보도 외에 위력을 발휘할 수 있나”며 “우리는 25년간 치열하게 투쟁했고 쟁취했다. 하지만 우리들 것만 쟁취했고, 후세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대중과 함께하는 투쟁이 가장 절실하다”고 털어놨다.
‘규모’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다보니, 내용보다 결과물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 열심히 투쟁에 나섰던 절박한 사업장들의 노력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패배감으로 동력은 떨어진다.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한 사업장 간부 J씨는 “많은 사업장이 대공장 노조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당사자들이 파업에 선뜻 나서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대기아차 핑계 좀 안 댔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는 조직부터 나와서 해야, 그 힘과 분위기로 그들(대공장)도 나올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왜 먼저 움직이지 않고 지레짐작만 하고 있을까요?”
민주노총 임원 출신인 K씨. 그도 관성화 된 조직화 방식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싸움을 하면 내부에서는 어디는 하고, 어디는 못한다는 내용만이 평가의 바로미터처럼 이야기 됩니다. 투쟁의 과정이 공유되는 싸움이 돼야 하는데 너무 결과에만 집착하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분명 조직화 과정에서 여러 성과들이 나타날 테고, 이는 향후 투쟁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하지만 모범 사례는 늘 ‘규모의 논쟁’에 밀려 저평가된다.
한 지역본부 활동가 L씨도 “너무 완성차 파업여부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4.24총파업이 ‘총력투쟁’ 수준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총파업을 준비하는 디딤돌이지 않을까요. 우리 지역에 3천 명 정도 되는 꽤 큰 사업장이 있어요. 거기는 자기들 임단협 가지고도 파업을 못하는 곳 이예요. 근데 최근 집행부가 의지를 갖고 총파업 관련 준비를 열심히 하더라고요. 아마 이번 4.24총파업 결합은 불가능 할 거예요. 그래도 현장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4.24 총파업은 이후 투쟁을 위한 워밍업이지 않을까요.”
이번 총파업 조직화 과정이 노동조합의 ‘체질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제조업 하청노조 간부 M씨는 “그동안 금속노조 조합원들도 대공장 눈치를 보는 방식으로 점점 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조 간부들 수준에서도 ‘이번에 제대로 못 싸우면 위험하겠구나’하는 불안감도 공존하고 있다”며 “그동안의 관성과 정세적인 조건이 부딪히고 있는 만큼, 오히려 지금이 기회가 아닐까 본다. 대공장 영향을 중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기풍을 만드는 것으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사업장 별 모범사례들을 발굴해 알려나가면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는 과정도 필요한 점으로 꼽았다.
‘닥공’이 필요한 시대, ‘총파업’으로 광장을 연다면
아무리 팀플레이라 하더라도 선수들이 대중없이 우르르 몰려 다기니 만 한다면 백전백패다. 때로는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한 유효슈팅 한 개가 분위기 반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규모의 싸움이 아닌,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내는 싸움이 중요할 때가 있다. 한 청년활동가 N씨는 “‘4월 총파업이 위력적이어서 경제가 휘청거렸다’는 내용이 보도자료의 핵심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4월 총파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힘’이라고 강조했다. “정규직 노조가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제 생산현장을 멈추는 파업이 위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4월 총파업은 완결이 아닌 기화점이 될 수 있습니다. 4월 총파업은 어떻게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브레이크를 걸 것인가, 라는 희망과 전망을 여는 투쟁이 돼야 합니다. 건강한 노동조합과 비정규직들이 민주노총의 물음에 화답하게 해야죠.”
[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
그렇다면 4월 총파업이 11월 ‘민중총궐기 투쟁’의 발화지점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L씨는 ‘공간’을 꼽았다. 집회와 시위가 형식에 묶여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측면이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소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들을 열어줘야 합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다음 투쟁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이후에도 피드백이 가능해요.”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 O씨도 시민들의 분노와 맞닿을 수 있는 공간을 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최근 자발적으로 박근혜 정부 퇴진 삐라가 뿌려지는 현상 역시 서민들의 분노를 반증한다고 본다”며 “민주노총만의 파업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중들의 요구를 담아 이후에 박근혜 퇴진 투쟁을 위한 공간을 여는 투쟁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N씨 역시 ‘광장을 열수 있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는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철도파업 당시 거리로 뛰어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올 수 있는 광장이 열릴 것인가이다”라며 “정해진 파업 집회 매뉴얼을 넘어서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 D씨도, 전 민주노총 간부 K씨도, 그리고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한 여러 노동자와 활동가들도, 민주노총의 4.24총파업이 국민과의 ‘만남’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 못할지라도, 스트라이커의 슈팅은 게임의 흐름을 반전시킨다. 하다못해 코너킥이라도 얻어내면 팀플레이로 또 한 번 상대의 골문을 위협할 수도 있다. 29일 앞으로 다가온 4.24 총파업, 공격 기회를 갖게 된 노동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