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 노동자는 노동권에 대해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업무나 고용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고
노동통제구조에 개입하고 바꿀 권리가 있다.”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자율성을 가질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 발언하고 개입하고 바꿀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 전문성과 노하우가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개입을 하려고 하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단당하기 일쑤입니다. 작업량, 작업방식, 작업시간 등 모든 것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언제 일이 생길지, 업체가 어떻게 바뀔지, 다음 해에 재계약될 수 있는지, 자신의 업무가 바뀌는 지에 대해서도 정보를 제공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문자해고도 횡행하고 업무도 회사 마음대로 바뀝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업무나 고용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자율성을 갖고 함부로 통제하려고 할 때 거부하거나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많은 손이 필요하다. 각각의 손마다 부여되는 임무가 다르고 그에 따라 불리는 이름 또한 다양하지만, 오롯이 자신의 노동을 투여해 책이라는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때문에 그들 각자의 노동에 차별을 두는 건 그 어떠한 이유를 든다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들이 만들어내는 책은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차이는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책은 번번이 이들의 노동을 배반하고 있다. 아니, 정확이 말하면 책 그 자체가 아니라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러하다.
책 만드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칭하여 ‘출판노동자’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손꼽자면, 먼저 출판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정규직 출판인(편집자, 디자이너, 영업자)’이 있고, 출판사에서 외주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비정규직 출판인(외주 편집자, 외주 디자이너)’이 있다. 그리고 문화예술인이라 불리는 ‘작가(글작가, 그림작가(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한편으로 책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유령작가인 ‘대필가’가 있고, 제2의 창작자라 할 수 있는 ‘번역가’가 있다. 여기서 정규직 출판인들을 제외한 모두는 법 제도적으로 노동자로 호명되지 않으며, 그러하기에 노동자로서의 자기 권리 또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다.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출판업은 워낙 영세하니까, 외주자는 원래 프리랜서니까, 창작자는 본래 배고플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내 불안정한 생활에 대한 보상은 신성하기 그지없는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여겨왔다. 여기에 노동자니 노동자의 권리니 하는 말은 그저 불편할 따름이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둘러보니 모두가 그러한데 출판동네는 본디 이런 곳이라 받아들이면 됐다. 어찌 됐건 이 땅의 지식과 문화를 생산해내는데 좀 폼 나지 않는가. 하여 내 불안하고 힘든 현실을 타개할 방안은 더 열심히 책을 만드는 것밖에 없다. 아니, 열심히 해서만은 안 된다. 그 누구보다 잘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아프니까 ‘책’이다”와 다름없다. 실상 프리랜서의 최고 가치인 자율성과 창작자의 본질인 창작성은 제 아무리 노력한들 ‘빨리빨리’ ‘많이많이’ 책을 만들어내야 하는 지금의 출판 시스템 안에서는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외주 편집자와 외주 디자이너에게 책 한 권을 교정교열하고 디자인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정할 자유 따윈 없다. 작업비 또한 출판사가 제시한 대로만 받을 뿐이다. 공간 역시도 마찬가지다. 출판사가 ‘상근외주’를 하라 하면 할 수밖에 없다. 시간도 임금도 공간도 프리하지 않다. 단지 작업비를 지급받는 날짜만 프리할 뿐이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이름 붙인 프리랜서인가.
작가라고 별다르지 않다. 기획사나 에이전시를 끼고 일하는 작가들은 출판사에서 지급받는 책 작업비의 일부를 기획사나 에이전시에 일자리 소개 명목으로 30% 안팎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계약서상에는 ‘갑’일지언정 실지적으론 ‘을’도 못 되는 ‘병’인 것이다. 또한 책의 콘셉트, 분량, 일정 등을 정하는 데 있어 그 어디에도 작가의 창작성이나 자율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출판사가 이미 짜놓은 틀 안에서 쓰고 그리고 할 뿐이다. 그러니 작가들은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보다 더 많은 창작성과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자신을 더 채찍질한다.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스로를 위치 지으려고.
그래서 노동자라는 이름이 필요하다. 외주자든 작가든 책 만드는 노동자로서 함께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외면해왔기에 감춰져 있던 것들을 여실히 드러내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출판노동을 통제하는지, 그 누가 우리의 출판노동권을 빼앗고 있는지를 찾아내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랬을 때에만 출판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책의 꼴을 결정짓고, 일정을 조절하고, 작업비를 책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책에 대한 자율성과 창작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아프니까 책이다 하지 말고, 당당한 노동자로서 내 책을 온전히 만들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