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에 오른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지친다.
아무리 막아도 헬기는 뜨고, 경찰은 우리만 죽으라 한다.
그래도 우리는 산에 오른다, 뜨거운 희망 가슴에 품고,
손 잡아주는 그들이 있기에, 나의 마음은 지지 않는다.”
지난번 열렸던 밀양 ‘희망 콘서트’ 때 밀양 할매들이 들었던 피켓문구다. 칠팔십 넘은 할매들이 들어 올린 문구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곁에 있어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보잘것없이 작아지는 순간 책 한권이 나에게 왔다.
<밀양을 살다> 표지 속, 환하게 웃는 할매 할배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문다. 첫 장을 넘기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나에게 밀양은 단순히 경상남도 동북부에 있는 흔히 보이는 그런 지역이 아닌 또 다른 용산으로 다가왔다.
평생 농사일을 하며 땅 한마지기 갖는 게 소원이었던 할매 할배들, 그 땅에서 자란 곡식을 자식들 입에 넣어주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힘든 줄도, 고된 줄도 모르게 일하며 내 가족, 내 논 밭, 내 삶을 지키려 했던 할매 할배들. 어릴 적, 어려운 형편 탓에 못 배운 게 아쉽다지만 한순간도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순수하게 살았던 할매 할배들이 어느 날 송전탑이란 거대한 괴물을 만나면서 밀양의 삶을 전쟁이라 말하고 있다.
“6.25때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이렇게 말하는 팔순 넘은 할매의 말에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가슴이 미어져온다. 용역들의 욕지거리는 차라리 참을 수 있다며, 우리를 보호해 줘야 하는 경찰이 한전 편만 들고,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막아서는 건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라며 울분을 토하시는 할매 할배들. 평생을 믿고 살아온 국가에 대한 배신의 분노가 2009년 용산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철거민들을 향해 경찰특공대가 휘둘렀던 곤봉소리처럼 들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대책 없는 개발로 내쫓기던 철거민들이 용역폭력에 못 이겨 최후의 보루인 망루에 올랐지만 단 한 번의 대화조차 없이, 단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그날 경찰은 철거민들이 왜 그곳에 올라갔는지, 무엇 때문에 농성을 하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로지 거대 건설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하수인 노릇에만 전념하였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라면 재개발 지역에서의 분쟁에서 중재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민들은 더 이상 경찰이 지켜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철거민들은 버려지고 치워져야 하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날도 그랬다.
경찰은 망루가 채 지어지기도 전에 용역들과 합심해서 철거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건물아래에서 불을 지르며 옥상에 있는 철거민들을 위협했다. 결국 무리한 진압으로 인해 대형화재가 발생했고 무고한 시민 6명이 죽임을 당했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정부와 경찰의 책임은 하나도 없다고 했고, 농성을 한 철거민들에게만 모든 죄를 덮어씌워 불타는 망루에서 극적으로 살아나온 생존 철거민들에게도 중형이 선고되었다. 그 후 유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355일 동안 장례투쟁을 진행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아내들은 가로막힌 경찰방패 앞에서 점점 투사로 변했고,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은 그동안 알았던 민중의 지팡이(경찰)가 내 아버지를 죽인 것도 모자라 내 어머니를 방패로 찍고, 폭언을 일삼는걸 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려야했다. 355일,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국책사업이나, 개발 사업이나, 그 어떤 사업도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위한 사업은 하나도 없다. 평생을 한마을에서, 한 지역에서 살면서, 어느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집에서 키우던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는지, 농번기에 일손이 모자라면 서로 품앗이를 해주며, 함께 울고, 함께 웃던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국책사업이나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에서는 하나둘 찬성과 반대로 나뉘면서 원수 아닌 원수가 된다. 이윤을 얻는 자들은 찬성할 사람들을 포섭하여 돈 몇 푼 쥐어주며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남아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마치 보상금 더 받으려 떼쓰는 떼쟁이로 만든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라지만, 이런 모습은 용산, 강정, 밀양이 너무도 닮았다. 국책사업이란 명목아래, 원주민들끼리 서로가 패를 나누어 물어뜯게 만들었다. 서로 어우러져 살던 이웃들에게 상처와 원망만을 남기며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든다. 사람들의 선한 마음마저 돈 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곳이 국책사업이나 재개발 지역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삼촌과 조카가 등을 지게 만들고, 조상 제사조차 함께 지내지 못하는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깊은 상처만을 남긴다. 자본의 파렴치한 행동은 단순히 상처와 원망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웃을 적으로 만들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며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전기가 필요해 송전탑 건설이 필요하다면,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지켜주며, 시간적 여유를 두고 건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으면 된다.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평생을 지켜온 그들의 땅을 그냥 빼앗을 수는 없는 거다. 지금 당장 쓰지도 못할 송전탑을 만들기 위해 삶을 짓밟고, 영혼마저도 잃게 만든다. 용산참사 현장을 보라! 그 지역에서 살던 원주민들 다 내쫓고, 공동체 파괴하고, 결국 사람 목숨마저 잃게 만든 결과가 풀만 무성하게 5년이 지나도록 빈 공터로 남아있다. 그들이 얼마나 탐욕에 미쳐 막가파식 개발을 했는지, 자본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겁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거다.
제아무리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세상일지라도 할매 할배들의 삶을 파괴할 수는 없다.
할매 할배들의 뿌리를 흔들 수는 없다. 평생 일궈 놓은 논밭 사이로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리에 이치우 어르신은 차마 송전탑이 세워지는 걸 볼 수 없어 분신을 하셨고, 거짓말투성인 정부와 한전에 분노한 유한숙 어르신이 음독을 하셨다. 그리고 이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할매 할배들의 가슴에 유서가 아닌 희망이 생기길 바래본다. 일흔 넘은 할매의 얼굴에 웃음을 다시 찾아주고 싶다. 헬리콥터의 소리가 아닌 흥겨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농사지을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지키고 싶다. 칠팔십 넘은 할매 할배들이 움막에 무덤을 파고, 목줄을 걸고 지키려고 하는 건 비단 송전탑 공사 현장뿐만이 아니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땅 한 마지기만이 아니다. 할매 할배들이 지키고 싶은 건 수 십년을 지켜온 뿌리, 자식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고향, 그리고 희망이다.
할매 할배들은 우리에게 희망이라 말한다. 우린 결코 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다시 산을 오른다. 주름진 얼굴 속 환한 할매 할배들의 미소 속에서 난 희망을 본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